(소설) 흩어진 사람들

외아들

by Peregrine

1976년


소중한 늦둥이


불혹을 넘기며 얻은 늦둥이라고 아버지는 나를

귀애하셨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분은 아니셨다.

오히려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는 봄, 여름과 가을에는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주로 아파트, 도서관, 박물관 등을

지으러 서울이고 지방이고 공사가 시작되면

집에는 잘 올 수 없으셨다.


하지만 날씨가 추워서 공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겨울에는 아버지는 밤이고 낮이고 집에 계셨다.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친구 성수네 집 대문으로

들어가서 전날 밤 아버지가 마분지 한 장을 넣고

신문지 두 장으로 말아 만들어 주신 딴딴한 딱지로

마당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곧바로 구슬치기를 하였다.


점심으로 성수엄마가 밥에 간장, 참기름, 계란 프라이를

넣고 비벼서 나눠 주어서 성수와 먹고,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서는 한약도 지으시는 성수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방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 학교에서 돌아온 형아들하고

편을 갈라서 말뚝박기를 하였다.


성수랑 나는 어려서 깍두기라 말뚝은 안 서고

대신 가뿐하게 맨 안쪽까지 빠르게 등을 타고 들어가

뒤를 돌아보았다.


수비들은 등을 타는 녀석들 중 한 놈이라도 떨어뜨리려고

밑에서 마구 흔들어 댔다. 흔들다 혹여 말뚝이 끊어지면

반대로 말뚝을 대야 하니까 두 팔을 뻗어 앞 말뚝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손깍지를 단단히 쥐었다.


아무 탈 없이 모두 말 등에 올라타면,

나는 왼손바닥을 하늘로 쳐들고

오른손 검지로 점을 쳐 본 뒤, 외쳤다.


“가위, 바위, 보!”

나는 주먹을 냈다.


말뚝기둥인 정구형이 소리를 질렀다.

“야아, 이겼다!”


허리를 굽히고 있던 형아들이 우르르 들고 일어서자

등 위의 형들은 무너져 내렸다.


“와하!”

소리를 지르며 정구형을 따르는 형아들도 있었다.




한참을 놀다가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셨다.


“성수엄마, 호빵 좀 쪄 왔는데,

성수랑 성숙이 간식으로 주실랑가?

원석이는 어여 저녁 먹으러 가드라고.”


아쉬운 마음으로 엄마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는 밥을 한 술 떠서 놓으면,

아버지는 가시를 발라낸 갈치조림을

내 밥숟가락 위에 얹어 주었다.


나는 입을 벌릴 수 있는 만큼 크게 벌여서

숟가락을 입안에 쏙 넣고 천천히 씹었다.

갈치의 향긋한 고소함이 입안 가득 전해졌다.


“꼭꼭 씹어서 먹어!”

아버지가 물을 컵에 따라주면서 말하였다.

밤이 되어 이부자리를 깔아 잠자리가 만들어지면,

나와 아버지는 서로 엉켜서 뒹굴뒹굴 몸싸움을 하였다.

규칙이 있는 씨름도 아니고 대충 끌어안고 있다가

레슬링 김일 선수처럼 내가 아버지 배에 대고 박치기를 하면

아버지는 뒤로 나가 자빠지며 뻗었다.

그러면 나는 재빨리 바닥을 두드리며 숫자를 크게 세었다.


“하나, 두울, 세엣!”


그때까지 아버지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만세, 만세!!!”


나는 두 팔을 번쩍 들고 방 안을 뛰어다녔다.

방안을 돌고 있는 나를 아버지가 번쩍 들어 올려

내 얼굴을 쳐다보며 그 자리에서 한 바퀴를 휘돌고는

나를 내려놓았다.


내 얼굴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쓸면서

“무슨 땀을 이렇게 흘려? 흐허허허!” 하고 웃으셨다.


그렇게 두 번 또는 세 번의 레슬링을 치르고 나서야,

나는 꿈도 꾸지 않고 잠이 들었다.




하나뿐인 아들


노동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군 복무는 필수적이었다.

1972년까지 7년 동안 완석은 혜산에 있는 인민 9군단에서

근로동원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작전지도와 퇴색한 구호문이 걸린 사무실의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창문을 통해 제법 쌀쌀한 바람이

몰려들어와도 묶은 담배 냄새를 쫓아내지는 못하였다.


완석은 전용진 특무상사 앞에 서 있었다.

전 상사는 말없이 완석의 인적기록부를 넘겼다.
전 상사가 종이를 넘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완석에게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군 복무는 흠잡을 데가 없구만.

제대하고 나서 무슨 계획이라도 있나?”


완석은 허리를 더 꼿꼿이 세웠다.

“인민군 혁명전사로서 자격도 갖추었고,

꼭 노동당원이 돼 갔으면 합네다.

무엇을 해야 갔는지는 잘 모르갔습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 상사는 담배를 비벼 끄며 완석을 올려다보았다.


“노동당원이라, 동무 근성이면 한 번 노려볼만하지.

평양에 대규모로 주택건설을 하는데 말이지,

거기 후보당원으로 추천해 주면, 자원로동을 해 볼 텐가?”


“아, 그래 주시면야 3년이 걸리던

5년이 걸리던 해 보갔습네다.”


“적어도 3년은 바라보고,

동무가 잘못했다간 추천자인 나도

비판 대상인건 알고 있지?”


“네, 누가 되지 않게 하갔습네다.”


완석은 후보당원에서 정식 노동당원이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다.




평양에서 주택건설에 자원하여 일을 한지도 3년이 지났다.

평양은 혜산에 비해 건설도 많이 이루어지고

기회를 잡기에도 수월해 보였다.


당원이 된다면 평양에서 계속 지내고 싶었다.

전용진 상사가 연결시켜 준 김남용 건설사업부장은

기꺼이 추천을 하여 정식으로 노동당원이 되는

서류심사를 거쳤다.


완석을 포함한 후보당원 다섯 명이 당세포 회의에

참석하였지만, 회의 내용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당세포 비서이자 건설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김남용 비서가 결과를 발표하였다.


“박현진동무를 조선노동당원으로 승인합니다.”

자랑스러워하는 박동무를 위해 모두들 박수를 쳤다.


완석의 이름은 끝까지 불리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고 다들 자리를 떠난 회의실에 남아,

완석은 김남용 비서에게 말을 건넸다.


“추천을 해 주셨는데,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합네다.”


김 비서는 담담하게 말하였다.

“그 동무가 정성껏 준비한 것도 잘 전달했는데…,

동무 사상, 군복무 기록이나 10만 호 건설사업 자원로동

경력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데,

거 동무 아버지 성분이 좀… 그렇다는 기야.”


“아, 기맇군요. 감사합네다.”


발표 전에 슬슬 완석의 눈을 피하던 김 비서는

이제는 오히려 후련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완석을 남기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적대계층의 자식은 안 돼 갔나?’

완석은 지난 10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현장에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차분해졌다.

어차피 완석도 짐작했던 결과였다.




그날 밤, 완석은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다가
며칠 전에 혜산에서 도착한 편지를 꺼냈다.

오마니의 손글씨는 비뚤었지만 꼭꼭 눌러써서 또렷했다.


‘완석아,
군에 있을 때에는 그래도 같은 혜산에 있어서

든든했는데 평양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궁금하구나.

오마니는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지는 그게 전부였다.

여기서 더 버틴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오마니는 늘 혼자였다.

아니 오마니한테는 자신이 전부였다.

완석은 창밖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평양의 거리는

빛나는 것만 같았다.

빛이 쏟아지고

남겨진 그림자의 어둠만이

완석에게 허락된 설움에

이내 완석은 몸서리를 쳤다.


“혜산으로 가자.

오마니가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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