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1981년
기선은 수호를 위한 식사가 들어오자, 테이블을 조정하고
식판을 차려 놓은 뒤, 침상에서 잠이 든 수호를 조용히
깨우려고 다가갔다.
아직 곤히 잠든 수호는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인상을 찌푸리니 양미간에 주름이 굵게 잡혔다.
수호는 고개를 저으며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완석아!”
기선은 처음에 ‘원석아!’라고 들었다.
“완석아….” 하고 입가에 맴도는 듯싶더니
“흐흐흑….” 이내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기선은 수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용히
이름을 부르며 깨웠다.
“원석아버지, 원석아버지?”
기선의 부름에 눈을 뜬 수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기선의 눈과 마주치자, 안도하는 듯 다시 눈을 감았다.
이내 다시 눈을 뜬 수호는 주위를 둘러보고
기선과 눈을 마주쳤다.
“꿈을 꿨는 게 비 여, 울면서 완석이를 찾등마!”
수호가 별말을 할 기미가 안보이자,
기선은 수호의 등 뒤로 손을 넣어 수호를 일으켜 세우며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입으로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완석이를 찾든 원석이를 찾든, 얼른 먹고 기운을 내야제라.”
수호는 머리가 무거워 그냥 계속 누워 있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등뒤로 손을 넣어 수호를 일으키는
기선의 손길에도 어지러워 동작을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말도 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짜증에 별로 먹고 싶지도 않지만,
기선이 부지런히 떠주는 죽을 인내심을 갖고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기계적으로 먹으면서도 마음은 꿈에서 본 완석의 모습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분명 다 자란 모습의 완석이었는데,
완석 뒤로 불빛이 비쳐 얼굴은 그늘이 져 완석의 표정을
볼 수 없었는데, 한없이 고독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무런 원망도 비난도 없이 그저 찾아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에 완석을 불렀다.
‘완석아, 잘 사는 거니, 너에게는 해 준 게 없다.
미안하다… 보고 싶다.’
완석은 수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몸에 새기듯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끝내 아무런 말도 없이
천천히 뒤돌아 불빛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수호는 다급한 마음에 완석을 불러 세우려 했지만,
완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쉬지 않고 달려온 삶에서 멈춰 서니,
완석이가 또렷한 인상으로 나타났다.
오원석: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이모가 나를 맞아 주셨다.
아버지가 어지럼증이 있어서 동네 성남의원에
가셨다가 병원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으면서
뒤로 넘어져서 머리를 크게 다치셨다.
시내에 있는 큰 종합병원에 입원하셨단다.
엄마는 아버지 곁에서 병간호해야 하니,
나는 이모 집에서 며칠 지내야 한다며
나를 데리러 오셨다.
나에게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엄마와 나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여러 밤을 이모집에서
잠을 자고 학교에 갔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뭔가 내가 알 일이 생기면 알려 주겠지.
하루는 이모가 나에게 아버지와 엄마가 계신 병원에
데려다주신다고 하여 따라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버스 멀미도 하고 더욱이 차 냄새가 싫어서
버스를 타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엄마와 아버지에게는 꼭 가고 싶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내리는 문이 있는 뒷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가능한 버스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코를 손으로 쥐락펴락하면서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려
하염없이 뒤로만 가는 동네를 놓쳤다.
병원에서 나는 냄새는 버스가 뿜어내는 기름진 냄새
보다는 참을 만하였다. 깨끗하지만 차가운 소독약 냄새도
그리 유쾌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원래 지방으로 공사를 다니셔서
집에 자주 없으셨지만, 엄마와 이렇게 오래도록 떨어져
있었던 건 처음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병원에는 아버지보다는 엄마를 보러 오려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엄마를 보자 꼭 껴안았다.
엄마 냄새는 역한 버스 냄새와 차가운 병원 냄새를
견디고 한달음에 달려올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엄마 옆에 꼭 붙어있었다.
아버지는 머리 뒤에 거즈를 대고 붕대로 이마까지
감고 있으셨지만 괜찮아 보이셨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시더니
나를 향해 양팔을 벌리셨다.
나는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가 낯설어 머뭇거렸다.
엄마가 나를 떼어내어 아버지 쪽으로 밀어내어
할 수 없이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1983년
‘이산가족 찾기’
수호는 방송국에서 온 전화라며 기선이 건네주는
수화기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였다.
“여보세요? 오수호입니다만.”
“네, 저 KBS 이산가족 찾기 작가 이혜정이라고 하는데요.
방송에서 발표하신 내용을 보고 오수호 님을 찾는 연락이 와서요.”
수호는 침을 꼴깍 삼켰다.
“누, 누가 연락을 했던 가요?”
“저 박한동 씨라고, 찾으시는 박한나분의 동생 되는
분이라고 하던데요?”
“아, 네, 네! 박한동 압니다. 제 처남 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아, 그럼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수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한동이가 연락을 했다니, 수호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세월이 가면 잊혀지는 아픔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수호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아픔의 근거를 찾았다.
마음의 빚으로 남은 한나와 완석이를 찾기 위해,
고심 끝에 결국 방송에 출연하여 가족 찾기에 나섰다.
‘부인: 박한나 1929년생
아들: 오완석 1950년생
누님: 오정애 1922년생.
황해도 연안군 자현리.
강원도 맹현봉에서 살다가
해방 후 황해도로 이사 와서
1951년 1.4 후퇴 때
남하한 후 소식이 끊어짐.’
한동이와 상봉하기로 약속한 날,
수호가 조심스럽게 방송국에서 마련한 방에 들어가니,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만약 제작팀에서 원하면 촬영한 부분이 방송될 수도 있다는
안내를 받고 동의한 참이었다.
모습을 나타낸 한동이는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어릴 적 친구였던 한동이의 눈과 입매가 한나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반갑지만 삼 십 년을 훌쩍 뛰어넘은 세월에
조심스러웠다. 서로 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눈을 마주치자,
예전의 익숙했던 친숙함에 용기를 내어 포옹하였다.
카메라가 있어서 울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며 버티다
한동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는 다독임이었는 지도 모른다.
한동이가 꼭 끌어안는 힘에 수호는 안심이 되었다.
편하게 서로 질문을 해도 된다는 말에,
수호와 한동이는 마음이 바빴다.
“장모님은 어드러케…?”
“얼추 10년도 더 됐지, 73년에 돌아가셔으니까네.
끝까지 누이 생사를 모르고 가셨으이…”
“맹현봉에서는 계속 살고 있는 거야?”
“아니, 누님이 자리 잡았다카는 연락을 받고 나오는데,
마,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일단 부산으로 갔다가,
거서 자리를 잡았다 아이가.
…, 누이랑 도대체 와 그리됐노?”
“6.25 때 한번 혼이 나서, 할머니도 연로하시고,
완석이도 갓난쟁이라, 겨울이기도 하고,
1.4 후퇴 때는 잠시 피해 있는다는 게 이렇게 될지 몰랐지.”
“그럼, 여적지 혼자가?”
“아니, 재혼해서 아들도 하나 있어.”
“그란데, 누이랑 완석이를 찾아 머할라꼬?”
“2년 전에 앓아누운 적이 있었어.
거의 사경을 헤매다 완석이 꿈에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왜 그리 황망하던지.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서…”
“안 그래도 내도 누이를 찾아야 안 되겠나 싶어가.
근데 니 소식 보고 을매나 놀랐든지.
게다가 누이캉 태어난지도 몰랐던 조카를 찾는다카이….
엄니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누이 생사를 몰라가 눈도
못 감으셨는데.
재혼을 했겠지, 여적지 혼자 겄나 싶어가 안 볼라 했는데,
마, 그래도 어찌 된 사정인지는 알아야 않겄나.”
“진짜 면목이 없네!”
“마, 세상이 험한기지, 누이한테 연락 오모, 알려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