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그리고 집단이주
1953년
용문산 전투 이후 총성은 잦아들었고,
휴전을 둘러싼 협상이 이어지면서
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마침내 휴전이 되고 소집해제가 되어,
수호는 인천으로 찾아갔다.
황해도에서 온 실향민들이 인천에 모여 산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소래포구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생선 좌판을 벌여 놓고 소리를 높이는 상인들,
막 도착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다가 서둘러 짐을 낚아채
가격을 흥정하는 짐꾼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호는 짐을 차지하지 못하고
서 있던 짐꾼 하나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 혹시 황해도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이 어디 모여 사는지 아시오?”
“황해도? 황해도 어디요?”
“연백에서 나왔어요.”
“오, 그럼 강화도 교동에 있는
시장으로 가보쇼.”
수호는 인천 강화군 교동면에 도착했다.
대룡시장은 연백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모여 살면서 시장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성기태의 소식을 들었고,
떡 좌판을 벌이고 있는
정하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아이고, 정하할아버지! 무고하셌어요.”
“아니, 이게 누구야?”
“네, 수호예요. 정하는요?”
“요 장 어디서 놀고 있을 게다.”
“매형이랑 우태는요?”
“정하애비랑 우태는 포구에 짐 부리러 갔어.
밤에나 돌아올 게야.”
“누님은요?”
“정하에미는 썰물 때 집에 가서 먹거리
가지러 갔다가, 휴전선이 쳐지는 바람에
여적지 못 나왔어.”
“네에? 누님이 집에 가서 못 나왔어요?”
“인민군 눈 피해서 네댓 번은 오갔는데,
이번엔 막혀버렸지.”
“저희 집사람이랑 할머님은
어드러캐 지낸데요?”
“다들 무고하다고는 하더라.
토지조사로 땅은 다 뺏겼어도
숨겨둔 식량은 건사했다는데…
이제 그것도 소식이 끊기게 생겼어.”
정하할아버지의 말소리는
점점 잦아들면서,
수호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하네 네 식구는 대룡시장과
멀지 않은 곳에서
사글세로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살고 있었다.
조촐한 저녁을 마친 뒤,
수호는 마당에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뒤 정하가 방에서 나와
수호 곁에 섰다.
“오삼촌.”
“왜?”
“아버지가 엄마 보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나도 이제 많이 커서
배고픈 건 참을 수 있는데….”
수호는 정하를 내려다보았다.
“정하, 올해 몇 살이지?”
“열두 살이요.”
“강원도 들어가기 전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논밭 나가시면
네 엄마가 오삼촌을 돌봐줬어.”
정하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가 오삼촌 오기를 기다렸어요.
꼭 살아 있을 거라고…
엄마도 꼭 돌아오갔지요?”
수호는 대답하고 싶었다.
금방 올 수 있다고.
하지만 정애를 떠올리자
한나와 완석이,
할머님도 눈에 선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호의 대답을 꼭 들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길어지는 수호의 침묵에
정하는 초조 해졌다.
수호가 정하의 눈과 마주쳤다.
“그래야지. 꼭 그래야 하고 말고.”
휴전 이후, 이북 지역에서는
토지개혁이 단행되었다.
토지는 인민공화국의 것이 되었다.
최대의 곡창지대로서 쌀농사도
공동작업으로 하였다.
이남으로 자진하여
내려간 사람이 있는 집은
‘월남자 가족’으로 분류되었다.
수호가 월남을 하여
한나는 3급 지위를 받았다.
한나와 정애는 작업이 시작되기 전,
작업단장을 맡고 있는 두식이를
만나기 위해 읍사무소를 찾았다.
두식이는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한나는 평산댁이 빚은 막걸리를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할머님이 노고가 많으시다고
한 잔 드시라네요.”
두식은 술병을 보자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할머님은 잘 지내시죠?”
“네. 오늘 작업 전에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무슨?”
“실은 형님이 집에 돌아왔어요.”
”형님이라면?”
“오정애라고, 완석아버지 누님입니다.
땅과 집은 이미 공화국에 헌납되었고,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내면 되는데,
3급 지위를 주시고 작업을 할 수 있게
힘을 보태주세요”
“뭐,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닌데…
그럼 일단은 인명부에 이름을 넣고
주소지는 박동무 집으로
등록하도록 하지요.”
“그럼 오늘부터 작업을 해도 될까요?”
“그러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평산댁이 집에서 완석이를 돌보고
한나와 정애는 이른 아침부터 밭에서
공동작업으로 고추를 수확하였다.
그리고 순번이 되어 점심참을 만들러
조장의 집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쌀과 보리를 섞어서 지은 밥을 저어서
한 풀 식기를 기다린 다음,
주먹밥을 만들어
소쿠리에 담는 손길들이 바빴다.
조장인 김동무가 서서 점심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원들을 격려하였다.
“우리 조원들은 모두 손들이 빨라서
인민혁명에 큰 일꾼들인데…
아이고 다음에도 이렇게 훌륭한
일꾼들로 채워져야 할 텐데!”
“아, 왜요, 당에서 일꾼들을 더 보내준데요?”
“아니, 월남자 가족들은 혹시나
남쪽에 있는 가족들하고 연락이 닿을까 봐
압록강 근처로 이주시킨다쟎아.”
“네에?”
한나와 정애는 놀라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래요?
이남에 있는 가족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연락을 한다구요?”
“아, 박동무는 오수호동무 생사를
알 길이 없지만,
정애동무만 하더래도
가족들이 어디 있는지 뻔드롬히 알고,
또 알아? 가끔 소식 전하는 지도 모르지.”
“김동무, 휴전선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고,
인민군이 떡하니 지키고 섰는데
무슨 수로 소식을 전한다고...”
정애는 억울하여 작정을 하고
말문을 열었지만
시선을 끄는 것은 께름칙하여
말꼬리가 끊어졌다.
조장인 김동무의 말이라면
그냥 떠도는 소문처럼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한나는 가슴이 쿵하고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비좁게 지내는 정하네서
수호는 더 이상 신세를 질 수도 없었다.
수호는 기태와 우태를 따라서 포구에
나가 짐을 나르는 일을 하다가,
손님의 소개로 산을 깎는 일을 시작하였다.
서울에 포장도로를 내기 위해 도로 공사를
하기 전에 산을 깎는 일이었다.
별다른 장비도 없이 곡괭이로 암반을
부수는 일이었다. 일당은 삼십 원이었다.
밤이 되어 숙소에 돌아온 수호는
퉁퉁 붓고 화끈거리는
손바닥에 어렵게 구한 돼지기름을 발랐다.
배는 고팠지만, 입맛은 없었다.
그저 깊은 잠을 자고 싶을 뿐이었다.
아침이 되면 수호는 손에 무언가 닿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지만
어김없이 목장갑을 끼고 곡괭이를 들었다.
김 씨와 박 씨는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고된 작업이라 오래 버티는 사람이 드물었다.
먹고살기 위해서도 일은 해야 했지만,
육체적으로 극한에 치닫지 않으면
한나와 완석이,
정애와 할머니,
오매불망 엄마를 그리워하는 정하를
뇌리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
수호는 고장 난 기계처럼
이를 악물고 바위를 찍어 내렸다.
정반장이 수호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봐.”
수호는 돌아보다 정반장을 발견하고는
일손을 멈추고 곡괭이를 내려놓고
목례를 하였다.
“예!”
“자네 곡괭이질은 마치 화가 난 사람 같아.”
“네?”
“힘이 좋다고. 자네 여기 나온 지
얼마나 됐지?”
“한 달 넘었지요?”
“보통은 일주일 버티기도 힘든데,
자네도 대단하구먼.”
“이번 작업 끝나면, 삼양동에 있는
공사현장에서 목수 시다를 구하는데
한번 따라가 볼 텐가?
오야가 있고 오야한테서 일은 배우면 되고,
산을 깎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니까.
보수도 낫고.”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다른 대안도 없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주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새벽녘, 인민군이 들이닥쳐
최소한의 짐만 챙기라고 했다.
모든 것이 잘 갖춰진 마을로 간다는
말만 남겼다.
갑작스러운 이주 명령에 평산댁은
“아니, 압록강이 어디라고 그 먼 곳까지…?”
물어보려고 하였지만,
정애가 평산댁의 손을 꼭 쥐며 제지하였다.
정애와 한나는 급한 대로
가장 필요한 옷가지를 챙겼다.
정애는 숨겨놓았던 쌀주머니를
허리에 꽁꽁 감았다.
한나는 잠에서 덜 깬 완석이를
달래어 업고 집을 나섰다.
‘집을 떠나면, 완석아버지한테 연락이 와도
소식을 전해줄 사람이 없는데.
우리가 가는 곳이라도 알려줄 사람이…
아, 완석아버지, 살아는 있는지…
천주시여, 내가 완석이를,
오 주님, 완석이를 지켜 주소서,
내가…내가, 완석이를 지킬 수 있게 하소서.‘
잠시 수호의 빈자리를 채우며 기다리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며 버텨왔다.
이제 서로의 소식이 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흩어진다면,
다음은 기약할 수 있는가?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어지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정애는 평산댁의 손을 잡고 앞장서서
인민군의 뒤를 따랐고,
평산댁은 어린아이처럼
정애에게 의지하여 순순히 따라나섰다.
정애는 뒤에서 들려오는
한나의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에
위로하고 싶었지만,
정하 곁을 떠나올 생각을 했던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고
스스로를 원망하느라
자신의 시야도 흐려져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