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흩어진 사람들

용문산 전투

by Peregrine

1951년 5월


북한강과 홍천강이 만나는 곳!
강 너머로 산줄기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북한강 쪽에서 연기가 올라온다는 전언이 있었다.
중공군이 청평댐을 타고 강을 건너왔다고 하였고,
누군가는 이미 울업산 아래까지 내려왔다고 하였다.

주방어선인 용문산을 등지고

427 고지와 나산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며
수호와 현식은 지게를 다시 고쳐 맸다.

어린 시절부터 산에 올라 나무를 하며

몸이 기억하는 지게였지만

포탄 상자를 어깨에 얹는 순간

수호는 숨이 막혀왔다.

“이걸 몇 번이나 오르내려야 한다니?”

현식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모르지.”
앞에서 걷던 수호가 짧게 말했다.

“중공군이 밀려오면, 밤새도록일 수도 있어.”


일렬로 쭉 늘어서

산을 오르는 지게부대원들은 말이 없었다.

산길은 며칠 전 내린 비에 질척거렸다.
흙은 신발에 들러붙어 무게를 더했고,
비탈에서는 한 발 잘못 디디면

그대로 미끄러질 것 같았다.
지게가 흔들릴 때마다,
포탄 상자 안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지게부대는 쉬지 않았다.
식량을 나르고,

포탄상자를 나르고,
무전기 배터리를 나르고,
내려왔다가

또다시 올랐다.
하루 세끼가 지나갔고,
다리는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다 와 간다아!”
앞에서 기운 내라고 외치는 소리에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발을 떼었다.


“다 왔다아!”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수호는 기합을 넣듯 그렇게 발악을 하였다.



제27포병대대가 있는 427 고지에서는

계속해서 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좌표 ○○, 고각 ○○, 장약 둘! 발사!”

“발사!”


포구에서 불꽃이 튀었고,
땅이 울렸다.
포탄은 산 너머 골짜기로 날아갔다.

곧이어 폭발음이 터졌다.

이틀 연속된 발포에

포신은 점점 뜨거워졌다.

가까이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포신이 너무 뜨겁습니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지금 그런 소리 할 때야!”

포반장이 고함쳤다.

“장전, 발사!”


“발사!”

그 순간이었다.

포탄은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퍽’ 소리와 함께
바로 아래에서 터졌다.


“어…?”

폭연이 일었고,
흙과 돌, 나무토막이

사방으로 튀었다.

“으악악!” 비명이 이어졌다.


“근탄이다!”

“포탄이 아군 엄폐호에 떨어졌습니다!”

근처에 있던 지게부대도

갑작스러운 폭음에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포탄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간 사람들은

엄폐호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진 사람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허벅지가,
누군가는 어깨와 옆구리가 찢어져 있었다.

피 냄새와 흙냄새,
포연이 뒤섞여 숨이 막혔다.




중대장은 포병대대원들과

지게부대원 몇 명을 함께 불러 세웠다.
피곤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근탄 사고는 과열된
포신이 버텨내지 못한 탓이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중대장은 잠시 산 아래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한창인데
지금 상황에서 병력을 빼낼 수가 없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천천히 지게부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수호 앞에서 멈췄다.

“오수호 이등병.”
“네, 이등병 오수호.”

“지게부대에서 너,
상황 판단 빠르고

손도 야무지다 들었다.

후방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자네가 부상자 호송을 맡아라.”


중대장의 명령을 받고,
수호는 지게를 내려놓고 현식을 찾았다.
현식은 포진지 아래에서
손에 묻은 흙을 털고 있었다.


“나, 내일 아침 일찍 부상자들을 호송해서

부산 후방병원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어.”
수호가 먼저 말했다.


현식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후방이라 안전하니까 다행이다.”

“같이 못 가게 돼서….”
수호가 말했다.


“야, 어디서든 살아만 있으라우.”
현식은 수호의 어깨를 툭 쳤다.

“어디든, 전쟁 끝나면 다시 보자우.”

그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귀를 먹먹하게 하던

전선의 포성이 멀어지고,
중상자들을 실은 열차는
부산으로 향했다.

열차 안에서는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


“붕대를 감은 곳이 너무 가려워요.”
“예.”

수호는 자연스럽게 간호병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부산에 도착하자, 학교를 개조한

서전병원으로 부상자들을 옮겼다.

임시로 만든 조립병동도

학교 공터에 세워져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병원에 도착하여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병실에서는

신체 일부를 잃은 고통으로

파편 등 이물질이 뚫고 들어온 염증으로

인내가 바닥난 앓는 소리만 들끓었다.


여름이 다가오자,

병원에는 이질이 돌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명씩

고열과 설사로 쓰러졌다.


“약은요? 약은 없습니까?”
수호가 군의관에게 물었다.

군의관이 고개를 저었다.

“약은 이미 바닥났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물을 끓여 먹이고,
설사하다 탈수 오지 않게 해주는 정도야.”


간호병들이 분주히 침상을 오가도,
환자들은 결국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끙끙 앓으며

외롭게 병마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기면 살아남았고,

지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였다.


수호는 병실을 빠져나와

운동장을 걸었다.

교정을 벗어나 아무런 생각 없이 걷다 보니

골목 끝에 이르렀다.

눈을 드니 바다가 들어왔다.

아수라장 같은 병원과는 달리

고요한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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