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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Aug 31. 2022

독서의 시간.








1. 마크 트웨인의 편지.




일본에 있을 때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일본에서 발간되는 책들은 하드커버로 되어있는 '단행본'과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종이책인 '문고본' 두 종류가 있는데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나는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작은 사이즈의 문고본 책들을 백 엔 이백 엔에 사서 모으곤 했다. 그래서 메지로에 있던 나의 좁은 일본식 다다미 방에는 헌책들이 방을 삥 둘려가며 쌓여 있었고 나를 방문하는 지인들은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인지 책이 사는 곳인지 묻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로부터 십 년도 훨씬 더 지났기 때문에 무슨 책들을 그렇게나 많이 읽었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한 권의 책을 소중하게 오랫동안 간직했던 것만큼은 기억하고 있는데 시모키타자와의 헌책방에서 구입한 노란색 표지의 책이었다. 작가가 누구였는지 책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에 대한 책이었다. 그의 지인인지 누군가가 짧은 문장으로 그의 웃긴 에피소드나 유머 같은 것을 기록한 책이었는데 마크 트웨인이 얼마나 웃기고 괴짜였는지가 쓰여 있었다.


나는 그 책이 너무 좋아서 일본을 떠날 때 모든 책들을 헌 책방에 팔아 버리고 노란색의 트웨인의 책 만을 품에 꼭 쥐고 한국으로 귀국했고 책에 대한 모든 사랑을 저버리고 죽은 시체처럼 살 때도, 집을 떠나 직장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상경할 때도 그 책만큼은 꼭 갖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고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리던 트웨인의 모습들이 나를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트웨인의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해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잠에 들 수가 있었는데 그녀가 아침 새소리 때문에 자는 걸 힘겨워 하자 트웨인이 마당의 나무에 새들을 향해 이런 편지를 붙여 놓았다고 한다.


"너무 큰 소리로 울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해서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몇 번이고 하며 내가 할머니가 되어 병상에 들면 꼭 새들에게 편지를 써서 나무에 붙여 달라고 부탁했을 때 남편은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꼭 편지를 써서 붙여 놓겠다고 약속했다.







2. 하루키의 한 줄.




매번 셀 때마다 숫자가 바뀌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나는 살면서 여덟, 아홉 권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은 것 같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권을 꼽으라면 단연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다.


사실 나는 하루키식의 초현실 세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그의 초창기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나 '1973년의 핀볼'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칸다의 헌책방에서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펼치자마자 이 책과 사랑에 빠져 버렸고 집에 돌아와 단숨에 읽어 버리고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습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 키치죠지에 사는 작가 지망생 '스미레'라는 설정이 나의 가슴속을 후비고 들어왔었다. 겨우 그게 다야?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게 다였다. 그 당시 나는 잘 다니던 모 대학의 일본 문학과를 자퇴하고는 일본에 패션을 공부하러 와서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는 헛바람이 잔뜩 든 이십 대의 몽상가였는데 키치죠지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고 괜히 그와 한번 스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할 일 없는 주말이면 그의 집 근처를 서성이곤 했었다. 그리고 제비꽃이라는 의미를 지닌 스미레라는 이름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하루키의 인터뷰를 묶은 책을 읽다가 그가 이 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키치죠지에 사는 작가 지망생 스미레'라는 설정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그 한 줄을 써 놓고 글이 흘러가는 대로 써 내려간 책이 이 소설이라고 말했고 나는 그의 인터뷰를 읽어 내려가며 그의 그 한 줄이 내가 작가 하루키와 사랑에 빠질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혼잣말을 하며 그때의 짝사랑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일본에 무작정 패션을 배우겠다고 부모님의 피 같은 돈을 다 끌어모아 유학을 갔던 나는 유명 패션잡지의 인턴 일을 겨우 조금 해보고는 '패션'이라는 세계에 환멸을 느껴 나의 정체성과 꿈을 방황하던 철없는 이십 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황망한 나의 가슴을 위로해 주는 건 오직 책들 뿐이었는데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며 괜히 키치죠지의 이노가시라 공원까지 가서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는 했다. 그리고 나의 외로움을 알아본 어떤 잘생긴 남자에게 헌팅을 당했다.


그날 나는 가죽 재킷에 빨간색 하이힐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목걸이를 한, 누가 봐도 책과는 거리가 먼 복장을 하고는 지나가는 연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한없이 까만 머리카락의 하얀 얼굴을 한 잘생긴 남자아이가 내 옆에 앉더니 갑자기 말을 걸었다. 그는 한 손에는 맥주 캔을 들고 있었는데 약간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술 취한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단번에 밀어버리고 일생일대 첫 헌팅을 반갑게 맞이하며 나는 너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차가운 면상을 몇 초 정도 유지하다 실패하고는 바로 웃으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그날 그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한 뒤, 벚꽃 흩날리는 날 데이트도 하고 후타고타마가와에서 The Blue Heart의 노래를 듣는 디제이 파티에도 같이 가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와 연락이 닿지를 않았다.


정말 이때다 싶었는데, 이 멋진 동경에서 나를 향한 봄날을 맞이하는 건가 싶었는데. 남자들은, 남자들은 왜 다가올 때는 그렇게 환하고 밝은 얼굴을 하고 다가와서는 흥미가 떨어지면 차갑게 식어버리며 고개를 돌리는 것인가. 그때 내가 조금 더 예뻤더라면, 나에게 연애 기술이 조금 더 장착되어 있었더라면 그와 연인이 될 수 있었을까?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세계처럼, 이어지지 않은 인연은 환상일 뿐이고 이어진 인연이 현실인 거겠지. 하지만 어쩌면 연애 기술이 모자랐기 때문에 기술 없이도 사귈 수 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스푸트니크의 연인 속의 '뮤'가 관람차를 타고 먼 풍경 속에서 또 다른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그때의 나를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며, 짝사랑하는 남자와 다시 한번 마주치기 위해 키치죠지를 방황하던 나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가엽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습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녀에게 모든 것은 다 잘 될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3. 샐리 루니의 모든 것.




샐리 루니의 책 '노멀 피플'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미국에서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몸이 무거워져 바깥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 거실에 있는 오래된 짙은 갈색 소파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는 것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리고 '굿 리즈'라는 앱만 하루 종일 쳐다보며 다음엔 또 어떤 책을 읽어볼까 하고 살펴보다 '샐리 루니'라는 작가의 '노멀 피플'이 지금 가장 핫한 소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대충 줄거리를 읽어 보고는 이 책을 내가 읽을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른의 중반에 간신히 결혼에 성공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고등학생들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게 와닿을 리가 없었고 그렇게 노멀 피플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땀을 뻘뻘 흘리며 육아에 지쳐 잠이 들던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가다 책을 읽을 여유가 다시금 찾아왔을 때 나는 다시 노멀 피플과 만났다.


그날은 여느 때처럼 설거지를 하며 니콜라스 할아버지의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고 있었다. 캐나다에 사는 니콜라스 할아버지는 언제나 턱시도를 말끔하게 차려입고 멋진 집에서 윌리엄 보이드나 사라 페리의 책들을 낭독하거나 뚱뚱한 고양이에게 멋진 동화책들을 읽어주시곤 했는데 그 백발의 할아버지가 멋진 붉은색 소파에 앉아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을 낭독하는 것이 갑자기 나의 눈길을 환상적으로 사로잡았다.


젊은 여성 작가의 책을 읽는 노년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도 꼭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병이 찾아와도 젊은이들이 읽는 책을 읽으며 공감하고 감탄하며 언제까지나 모든 문학을 향해 열려있는 가슴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능력 있는 작가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평가해 버린 오만하고 닫혀있는 나의 모습을 알아차리며 나는 샐리 루니의 모든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그리고 좋았다.


특히 그녀의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모두가 결함이 있고 완벽하지 않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어떤 장면에서는 짜증도 나고 왜 이렇게 쓴 걸까 하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지만 아마도 그건 책 속의 허구적인 캐릭터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샐리 루니의 모든 책들은 나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삶 속에 등장하는 많은 것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크 투웨인의 작은 편지 하나 때문에 어떠한 책을 가슴 깊이 작은 생명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기도 하고 하루키의 한 줄 덕분에 문학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만난 적도 없는 할아버지 때문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것들도 나의 삶에 흔적을 남기는데 하루하루 쌓여가는 독서의 시간은 내 삶에 어떠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언제나 책들은 나에게로 달려온다. 내가 책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책이 우리를 선택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삶은 살아지는 것일 뿐 우리는 작은 미물에 불과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작은 미물이라서, 작은 풀 같은 존재여서 얼마나 행복한가. 햇빛은 수고 없이 몸속으로 들어오고 봄이 오면 봄비가 내려주고 여름이 오면 나무들이 알아서 초록빛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니 말이다. 그리고 책들이 알아서 나를 찾아 우주로부터, 영감으로부터 달려와 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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