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글은 첫 문장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머릿속에 내가 써야 할 글의 전반적인 설계도를 작성하고, 그 글의 부드럽게 이끌어줄 소재를 찾는다. 그리고 문단의 배열을 고민한다. 그런데 글의 첫 문장이 잘 쓰이지 않을 때가 있다. 어렵사리 첫 문장을 쓰고, 나면 나머지 뒷 문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글을 쓰는 일을 한다. 직장인으로서 보고서를 쓰고, 작가로서 책도 쓰고, 경제학자로서 논문도 쓴다. 그때마다 내 글을 읽는 독자가 다르고, 글의 목적이 다르기에 단어 선택과 어투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24년 7월, 《절대 지켜, 1.5도!》가 1쇄로 출간된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2쇄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는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해 주신 많은 독자분들의 사랑 덕분이다.
《절대 지켜, 1.5도!》의 출간 소식을 브런치에 공유한 후, 한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다. 이후 어떤 주제를 다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직장인으로서 회사 업무에 집중해야 했고, 작가로서 오프라인에서 독자분들을 만나느라 온라인 글쓰기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스스로 반성해 본다.
그 대신 2024년 후반기에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논외로 하고) 두 가지 작업을 했다.
첫째, 경제학자로서 논문을 썼다. 기업은 전력 단가가 점차 상승하는 상황에서 더 저렴하게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그 방안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특히,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면서도 전력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기업은 이를 고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왜 PPA가 활성화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이 논문을 작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논문의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실물옵션을 이용한 PPA 최적 투자 시점 분석: 전력 가격과 배출권 가격의 이중불확실성을 중심으로”
사실 이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이 문장은 ‘첫 문장이 유명한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문장이다. 그리고 이 논문을 쓰고 있던 당시에 읽고 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에서도 이 문장을 발견했었다. 그래서 논문의 첫 문장으로 쓰게 되었다.
그러나 논문 심사 과정에서 익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도입부에 대해 “연구 주제에 비해 다소 만연하다고 생각됨”이라는 완곡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무미건조한 논문에 조금이나마 ‘파격’을 주고 싶었다. (억측일 수도 있지만) 마치 <세종문화회관에서 K-팝 공연을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싶었다.
둘째, 작가로서 《절대 지켜, 시즌 2》를 썼다. 감사하게도 멀리깊이 출판사에서 《절대 지켜, 1.5도!》에 이은 두 번째 책 출간을 제안해 줬다. 11월부터 책 구상에 들어가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책 쓰기를 시작했다.
2024년은 일이 너무 바빴던 상황이라 연중에는 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했다. 그래서 밀린 휴가를 연말에 몰아 쓰면서 밀린 책들을 보기로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겨울방학은 1월부터 시작이라 가족 여행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연말 휴가에 《절대 지켜, 시즌 2》를 썼다.
《절대 지켜, 시즌 2》의 구체적인 제목은 이미 정해졌지만, 아직 공개하기에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미리 밝힐 수 있는 것은, 《절대 지켜, 1.5도!》에 비해 《절대 지켜, 시즌 2》는 시간적 범위와 지리적 범위가 더욱 확장되었다. 아직 초고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2월 말까지 초고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3.
2024년 12월, 우리나라는 혼돈과 혼란의 시절을 겪었다.
12월 3일 23시를 기해 윤석열 대통령이 선호한 계엄령을 민주적 절차로 330분 만에 해제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다.
12월 29일 9시 3분,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제주항공 활주로 이탈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과 승무원 179명이 사망했다. 승무원 단 두 명만이 생존했다. 특히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아 가족 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많아 가족 단위 희생자가 많았다.
혼돈과 혼란의 연말을 겪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계엄령과 탄핵정국이라는 믿기지 않는 상황, 그리고 믿기 힘든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혼돈과 혼란의 시기를 겪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잘하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는 기후변화이기에,
다시 기후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