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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Jul 25. 2024

짠함이 남은 77세 그녀와의 여행_2

어머니가 합류하기로 결정이 난 이후 잡다한 여행 준비 외에 할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계획에도 없던 집안 대청소였다. 내가 아무리 어머니를 어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살림 스타일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그녀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방문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내가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로 종종 관대한 모습을 보이시며 당신 아들에게도 일하는 며느리를 위해 부엌일 정도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며 직장 다니는 며느리를 추켜세워주시는 그녀는 세련된 시어머니시다. 어머니는 토요일 꼭두새벽에 공항으로 나서야 하는 일정에 맞춰 금요일에 우리 집에 오기로 하셨다.




'너무 일찍 와서 있어도 파이라!'며 금요일 저녁때가 다되셔서 서울에 도착했다. 어머니도 나를 위해 눈치 하나는 빠싹인데 나도 그녀에 대한 예의정도는 차려야 하지 않을까. 나는 해야 할 일 중 뭐라도 빼먹을까 봐 메모지에 청소할 곳, 버려야 할 것 등을 적어보았다. 베란다 정리 및 청소, 이미 물고기는 사라진 지 오래인 어항 신문지로 가려서  베란다에 내놓기, 창틀 닦기, 겨우내 잘 깔아 둔 온수 매트 갖다 버리기, 버리기로 한 찢어진 요가 매트 진짜 버리기.





 특히 겨우내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던 싸구려 온수 매트는 가족들의 온기가 가장 많이 남아있던 자리가 너덜너덜 해져있었다. 어머니는 알뜰하고 검소한 반면 궁상과는 거리가 멀다. 어머니가 그 매트를 보면  분명 잔소리를 하실게 뻔했다.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를 아파트 이주 날짜에 맞춰 해방하듯 낡은 매트와 이별하고 싶었다. 항상 그렇듯 대부분의 일은 보기 좋게 내 예상에서 빗나갔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타서 특유를 냄새를 풍기는 곰인형을 반려 동물처럼 안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그 낡은 매트를 어루만졌다. 온수 매트도 물세탁이 가능하다는 어느 유튜브의 영상을 보고 한차례 표백제로 깨끗이 세탁까지 한 전력이 있었다. 옛날 아파트의 특성상 우리 집은 외풍이 심하다. 이미 거실 창에는 가성비 좋은 엉성한 블라인드를 설치하여 바람을 막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엉덩이를 따땃하게 지지며 찬바람을 견디게 해 준 온수 매트와 이제는 안녕을 할 때가 되었다. 




 여행 일주일 전부터 고군분투가 시작됐다.


월요일! 빨래 널 때 빼고는 발 디딜 일 없는 베란다 청소하기. 우리 집 베란다는 발코니 확장이 반만 되어 있어서  베란다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반쪽 베란다는 마치 창고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올해 새해 목표  하나가 집안에 먼지 없게 하기였건만 나의 청소 의지보다 빠른 속도로 쌓이는 먼지덕에  베란다와는 점점 멀어졌다. 내가 청소를 자주 안 하니까 먼지가 쌓이고 나는 또 쌓여가는  먼지가 싫어서 그곳에 발길을 끊었다. 집안에 건조기가 있었다면 베란다가 정글이 될 때까지 그런 공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작 3평 남짓할 그곳의 문을 열고 나는 큰 숨을 골랐다. 거실 바닥보다 20센티 정도는 푹 꺼져있는 베란다의 바닥은 굴러다니는 먼지가 그 차이나는 높이를 채울 기세였다. 몇 주전에도 이 공간을 청소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리 집 공간 중 가장 빛을 많이 받는 공간임에도 이상하게 어둡다고 느껴져서 발길이 안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바닥의 높이가 차이가 난다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가 않다. 심리적으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공간이 집안에 있다는 것은 참 아쉽다. 이 정이 가지 않는 공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런 공간은 이 집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물이 적신 신문지를 찢어 툭툭 던져놓고 빗자루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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