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언어 듣기 평가 3
내가 어머니에게 한 말씀이 무례하다고 느꼈는지 남편은 뭘 그런 식으로 말하냐며 언짢은 반응을 내비쳤다. 두리뭉실한 표현을 대놓고 말씀하셔도 나는 그것을 별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어머니는 살짝 돌려 까기 하시면서 자신의 교양을 지키려 노력하고 계셨다.
갑자기 김종국이 왜 나오나, 나는 어머니의 의도를 파악해 보았다. (내가 느끼기에) 어머니는 tv 드라마에 나오는 심술궂은 시어머니처럼 며느리를 만만하게 또는 하찮게 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두 며느리가 잘 지내도록 긍정적인 중간 역할을 하시며 애를 쓰셨다. 두 동서 간 안부 연락이 필요한 상황이면 어머니는 한쪽 며느리에게 전화를 해 '니 동서한테 전화 한번 해줘라'라며 마치 널뛰기의 중간에 쪼그려 앉은 사람 역할을 잘 수행하셨다. 어머니의 널뛰기 중간 사람 역할을 잘하신 덕에 두 며느리는 지금까지 폴짝폴짝 웃으며 박자 맞춰 널을 뛰었으리라.
그 쪼그려 앉은 사람의 역할은 때로는 다리에 쥐가 나듯 눈물겨웠다. 내가 시집을 왔을 때 여섯 살짜리 조카가 있었는데 형님은 이 집안에 시집을 오고 나서 첫아이인 딸을 낳고 근 7년 가까이 둘째가 없는 상태였다.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첫 아이가 금방 생기고 그 뱃속의 아이가 사내아이라고 알게 된 이후로 시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명절에 모여서 과일을 먹게 되면 어머니는 나더러 "예쁜 거 먹어라"라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옆에 큰며느리가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아차 싶으셨는지 '너도 예쁜 거 먹어라'하셨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신생아실 안에서 간호사가 들어서 보여주는 첫 손주를 보며 에구에구 하며 기뻐하시다가도 또 옆에 큰며느리가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기쁨을 목구멍으로 삭이셨다.
작은며느리가 임신을 하여 기쁜 중에도 상대적으로 큰며느리가 상처를 받을까 봐 어머니는 두 며느리 사이에서 감정 파악하기를 열심히 하신 것 같다. 이제 곧 손주를 안겨줄 며느리에게 아껴주는 말을 맘껏 하고 싶었으나 큰며느리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셔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둘째 소식이 늦어지는 큰며느리에게 둘째 얘기는 도무지 꺼낼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애가 안 생겨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그런 말을 어떻게 하나? 상처받으라고?"
어머니는 이때부터도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잘 새기고 계셨던 것으로 보인다. 외아들에게 시집을 간 당신의 딸이 여자 아이만 둘을 낳은 후 그들의 가족계획은 그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을 때, ‘아이 셋 있는 집이 정말 보기 좋더라!’ 하는 식의 아들바라기 시댁 어르신의 압박에도 어머니는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품위 있는 시어머니 역할을 유지하고 싶으셨던 어머니는 티슈 세 장에 난데없이 죄 없는 김중국이를 끌고 오셨다. 아끼고 사는 양반에게 며느리가 톡톡 거침없이 뽑아대는 티슈 세장은 참으로 거슬리는 일이었다. 이럴 때 김종국이가 뿅 하고 나와서 나 대신 며느리를 혼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는 그런 상상이라도 하셨을까?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 종종 급발진을 하셨던 어머니는 순간 임기응변이 발동하여 재치 있는 한 마디를 며느리에게 하셨다. 벌레 하나 잡겠다고 티슈를 세 장이나 낭비하는 며느리에게.
김종국이가 난리가 난데이!
난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김종국이가 그러더라고. 아끼고 살라고. 나는 너한테 뭐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며느리에게 두루뭉술한 표현을 하시며 나름 재치 있는 시어머니가 되고자 했던 어머니에게도 직설적인 말씀이 나올 때가 있구나 놀란 경험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명절이 되어 동서 형님 댁에서 시간을 보내는 때였다.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에게 형님이 다가와서 귀속말처럼 소곤거렸다.
"ㅇㅇ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거야? 학교 그만둔 거야?"
그 땡땡이는 몇 년 전부터 엇나가서 어머니의 마음을 쓰리게 하고 있는, 시누의 아이였다. 그 아이의 근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하는 형님에게 나는 모른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진짜로 아는 것이 없었다.
"걔가 학교를 그만둬요? 왜요?"
나는 오히려 형님에게 되물었다. 형님은 시댁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이 걱정이 되어 당사자인 시누에게는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시어머니에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나는 걱정이 돼서 물어본 건데 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는 줄 알아? '너는 알 필요 없다' 이러시는 거야. 얼마나 서운하던지. 나는 걱정이 되어 그런 건데."
나는 내색은 안 했지만 순간 흠칫 놀랐다. 어머니가 그렇게 대놓고 싫은 표현을 하셨다고?
형님은 당연히 걱정이 되어 안부를 물어봤을 것이다. 무언가 문제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며 해결을 하려는 그녀의 성격에 나는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둘째 며느리의 역할을 잘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듯 형님보다는 조금 한걸음 물러서서 시키는 것, 지시하는 것에 따르는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게 작은 사람으로서는 어울리는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샌스쟁이이면서 적극적인 상냥함을 지닌 형님의 성격이 당신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날이 있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 누군가의 진심 어린 걱정이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저 귀찮게 꼬치꼬치 묻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 편치 않은 관심을 그만 받고자 칼같이 냉정한 말씀으로 그것을 끊어내셨고 형님은 다시는 시누의 일에 대해 묻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어머니는 두 며느리의 성격에 대해 그저 다른 아이들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하셨다. 어느 tv드라마에서 두 며느리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큰며느리가 활달하고 싹싹하며 작은며느리는 조용하고 과묵했다. 누가 봐도 큰며느리가 더 좋아 보였다. 어머니는 잔치집에서 어르신들과 대화 도중 그 드라마 얘기를 하시며 '우리 집도 큰애가 싹싹하고 작은애는 조용해요' 하셨다. 물론 속으로는 하나라도 싹싹해서 다행이라고 여기셨을 것이다.
싹싹하고 활달한 성격은 누구나 환영받는 중이었다. 나도 물론 시누의 아이에 대해 걱정이 되면서도 당장 내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이를테면 정신과 의사를 소개한다거나 좋은 심리상담사를 연결해 준다거나 하는 등의)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오히려 모른 척을 하고 있었다는 게 미안하지만 더 가까웠다.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가는 건으로 시누와 종종 통화를 하던 때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일(시누의 가정사)은 몸에 밴 듯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 집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이 어쩌다가 하소연하듯 얘기를 하면 (간간이 추임새를 넣어주며)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내가 먼저 물어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신의 혈육의 안 좋은 이야기를 마누라한테 다 털어놓을 남편의 성격이 아니었다. 여우 같은 마누라가 데리고 살기 더 좋다는 어느 혹자의 말이 있건만 이 상황에서는 묵묵히 모른척해주는 곰탱이 같은 마누라가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곰탱이 같은 성격 덕인지 탓인지 나는 다행히 어머니에게서 '너는 알 필요 없다'는 냉정한 말 한마디도 들을 일이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유례없는 단호한 표현에 머리가 약간 띵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음부터 시댁에 가면, 벌레가 기어들어와 유유히 거실을 횡단하고 있다면 키친타월이든 휴지든 딱 한 장만 뽑아야겠다고. 어머님이 애꿎은 김종국을 소환할 필요가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