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이 부족해! 절실함이!
어느 유명 가수가 연습생 시절 어떤 심정이었냐는 물음에 이것 아니면 죽을 것이라는 각오를 하며 연습을 했단다. 10대의 절실함과 50대의 절실함은 많이 다른가보다.
사실 나는 이것이 아니면 차선책으로 생각하는 직업을 3단계 정도로 설정해 놓았다. 해보다가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다음으로 할 수 있는 직업 또 그다음으로 일할 만한 직업으로 머릿속에 그려놓았다. 당연히 다음 단계로 내려 갈수록 육체노동이 더해지고 진입 장벽은 낮은 직업순이다. 세상 오만가지 직업 중 하나인 이것에 나는 나의 소중한 무엇을 걸어야 할까 고민에 빠진다.
갑자기 저쪽에서,
면접관이 또 호통을 치는 듯하다.
50살에 절실함이란 무엇일까? 무엇인가를 행할 때 절실하다는 기준은 또 어디에 두어야 할까?
면접관이 판단하기에 절실하다고 보이는 사람이 그 일자리를 차지한다면 그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퇴사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할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몇 달 전에 내가 일하고자 하는 직종의 구인공고가 났다가 얼마 안 가 또 같은 구인공고가 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직을 하기로 맘먹고 처음 면접을 본 어느 기업에서 면접관이 말하길 이 직업이 이직률이 높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래 근무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못 견디고 그만두는 그 사람들은 절실함이 부족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성공 전에 제대로 망해봤다는 사실이다. 직업에 대한 절실함이 단단해지기에는 난 너무 든든한 남편을 곁에 두고 있지 않나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본다.
내년이면 취득 과정이 많이 달라지는 어느 자격증 과정을 막차를 탄 듯 시작하여 공부하고 있다. 이 나이에 취득을 하여 과연 그 일을 하게 될 때가 있을까, 공부를 하면서도 갈팡질팡하는 것을 본 남편은 저녁 설거지를 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제 그만 쉬어도 되지. 뭘 그렇게 하려고 들어?"
10여 년 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시작할 때 즈음 진지하고 정색하는 말투로
"우리 이제 이사 가니까 당신도 돈을 좀 더 벌어야 할 것 같아."라고 했던 그였다.
그랬던 사람이 이제는 대출금도 갚았고 아이들도 컸으니 나더러 쉬어도 그만이라고 한다. 그렇지, 나는 가계에 조금 도움이 되도록 서브로 돈을 버는 입장이야.
나는 속으로 아싸! 외쳤다. 그렇다고 진짜로 전업주부로 지낼 나도 아니다.
생계와는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절실함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직업에 대한 절실함이 내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갸우뚱하게 된다. 문득 내가 그런 절실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음에 감사하고 싶어진다.
저 화난 면접관 덕에 절실함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소 꿀꿀한 기분으로 다음 면접 대기줄에 앉아 있다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출입구를 향해 홀로 내려가는 계단은 꼭 경연대회에서 패배 후 무대 뒤편으로 퇴장하는 길 같다.
절실함이라는 단어를 내가 쓸 일이 있었나.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이 단어를 꽤 오랜만에 사용했다.
퇴근 중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청소부를 때려치운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무심코 내가 던진 말,
"야! 우리가 뭐 그렇게 절실하게 일은 안 해도 되잖아? 남편이 벌어오는데. 너나 나나 무슨 여성 가장도 아니지 않니?"
친구가 대답했다.
"지수야, 나 여성 가장이다. 애들 아빠 실직한 지 6개월 됐다, "
절실함, 여성가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가 친구는 나에게 비밀로 하고 싶었을 말을 무심코 내뱉었다.
순간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은 생각에 잠깐 멋쩍어하다가 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너라도 취직해서 벌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기운 내! “
절실할 필요가 없는 삶을 만들어준 남편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드는 날이다.
화상 수업을 하면서 귀엽게 장난을 치는 아이 덕분에 코미디 프로를 보듯 웃어가며 아이의 행동에 호응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또 생각에 잠긴다. 내가 그 일을 하게 된다면 근무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웃을 수 있을까?
케이지에서 자고 있는 거북이를 보며, 내가 풀타임 직장을 나가면 쟤 밥을 언제 주나?
배부른 걱정을 하고 있다.
그래 인정하련다. 나는 별로 절실하지가 못하다.
또 다른 기업에 면접을 갔을 때 사전 인터뷰지의 독특한 질문이 떠올랐다.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절실함의 부족을 보여주고 있다.
여보 고마워. 당신 덕분에 난 별로 절실하지가 않아.
그냥 내가 해 볼 수 있는 노력을 해볼 뿐이야.
부스 한 구석에 취업타로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있었다.
행사 참 재미있게 만들었네? 웃고 지나쳤는데 그 부스에 가서 타로나 보고 올 걸 작은 후회가 밀려온다.
<면접관에게 혼나고 깨달음이 온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