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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May 09. 2024

강압적 미안함

 남편이 내 낡은 백팩을 못마땅해하는 줄 나는 별로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그 이름 없는 가방을 굉장히 기분 좋은 상태에서 샀었다. 7년 전쯤 당시 뭔가를 잘 해냈다고 여기며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의미의 가방이었다. 비록 이름은 없지만 나 스스로에게 선물한 가방은 그 의미가 컸다. 남에게서 받은 선물 그 이상으로 내 기분을 들뜨게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남편은 어디를 찾아봐도 스틸로 된 단단한 이름표를 갖지 않은 그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지하철 역 지하상가의 가죽제품 전문 매장에서 내 눈에 띈 그 가방은 몸에 닿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닳도록 언제나 나와 함께했다. 남편은 그 못마땅한 가방을 나에게서 떼어내려고 결심을 했다.



 남편은 그 가방을 어디에서 샀냐고 물었다. 지하상가에서 샀다고 했더니 근본 없는 가방 취급을 했다. 그는 신혼 때부터 나에게 종종 핸드백을 사줬다. 최근에 핸드백을 사러 간 때가 2년 전쯤이었다. 백화점에서 산 그 핸드백은 내 수입에 비해 적지 않은 가격대에 있었다. 예쁘고 앙증맞은 그 핸드백은 평소 내가 입는 캐주얼한 복장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보관하고 있는 기간에 비해 장롱 속에서 얌전히 대기를 하는 시간이 많았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갈 때 그 핸드복이 내 손목에 걸쳐지면 그는 흡족해했다.  



 자연히 평소 나와 함께 외출을 담당한 가방은 남편이 맘에 들어하지 않는 그 백팩이었다. 나는 핸드백은 멜 일이 잘 없으니까 이번에는 정장에도 어울리는 백팩을 사달라고 했다. 백화점으로 핸드백을 사러 갔을 때 남편은 내게 '인지도가 더 높은 가방을 고르라'고 했다. 사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브랜드의 가방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위신이 서는 모양이었다.



 그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가 원하는 '인지도'가 제법 있는 매장의 가방 중에는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이 딱히 없었다. 이번에 가방을 고르면서 내가 고려한 것 중에는 '색상'이 포함되었는데 특별히 가지고 싶은 색상의 가방은 그와 내가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브랜드의 매장에 있었다. 가격도 옆 매장보다 훨씬 낮았다. 남편은 또 탐탁지 않아 보였다. 그 가방이 정말로 맘에 드냐고 재차 물었다. 그는 자기가 예상한 금액보다 낮은 가격대의 가방을 사게 되서인지 비슷한 것 중 좀 더 캐주얼한 것으로 하나 집어 들며 목표한 금액과 비슷해지도록 금액대를 맞췄다. 조만간 가게 될 가족 여행 때 메고 다니면 되겠다고 나는 두 번째 가방에도 그럴듯한 용도를 부여했다. 나는 새로운 백팩이 생겨서 낡은 가방과는 이제 이별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기분을 충족하려면 그 낡은 가방은 더 이상 눈치껏 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새 가방을 사줬다는 기분과 별로 유명하지 않은 것을 골랐다는 서운함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듯했다


 


 나는 새 가방이 생겨서 기분이 잠시 들떴다가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남편이 나에게 좋은 옷이든 가방이든 액세서리든 좋은 것을 사줄 때마다 잊지 않고 이어지는 그의 레퍼토리가 있었다. 가족들 것만 사주느라 자기는 변변한 물건 하나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가 입는 양복은 꼭 할인 판매를 할 때 산 것이고, 평소 즐겨 입는 제법 비싸 보이는 유명 브랜드의 운동복은 회사 탁구팀에서 대회를 나갈 때 팀원들에게 제공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푸념을 들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미안한 마음만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년 전에 핸드백을 살 때는 핸드백의 대가가 참 맵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그였다. 그 앙증맞은 핸드백을 고르고 남편이 결재를 하려고 카드를 꺼냈다. 카드를 점원에게 건네면서 그는 그리 작지 않은 목소리로 '와! 거금 나간다!'라고 말했다. 괜히 있는 척을 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구매 행위를 했다는 듯 떠들어대는 행동은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값이 나가는 무언가를 남편에게서 선물 받는 때에는 어김없이 '나는 이런 거 없는데~'라는 그의 한탄이 따라붙었다. 나는 점잖은 척 핸드백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결재를 하고 있는 남편 옆에 서서 속으로 말했다. '누가 사 달랬냐고! 아이고 쪽팔려라....'



 

 이번에는 차 안에서 푸념이 시작됐다.



애들이랑 자기 것 사주고 나면 내것은 살 여유가 되지 않아. 그렇게 되더라고. 형 옷 입고 다니는 것 봐. 비싼 브랜드 척척 걸치고 다니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 형이랑은 버는 돈이 다르니까. 나도 좋은 거 갖고 싶어도 이상하게 그게 어렵네.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명상 수업에서 들어주기 명상을 했었다. 같은 반에 있는 어느 아저씨와 짝이 되어 그분이 하는 말을 5분 동안 집중하여 들어주기를 했다. 파트너의 말이 지속되는 동안 말을 끊지 않고 과하게 반응하지도 않기가 규칙이었다. 남의 말도 귀담아 들어주었는데 남편 말 하나 못 들어주랴!



 나는 그의 행동에서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하며 살았던 옛 여인들은 가족만 챙기면서 자기 것에는 소홀했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을 갖추는 것을 무슨 죄악처럼 여기며 살았다. 물론 그런 행동들은 가족들이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스스로를 홀대하는 것을 당연한 듯 여기다가 가족들에게 서운한 것이 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라며 울분을 토했다. 누구도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강압적 미안함을 가져야 했다. 혹여나 강압적 미안함이 폭발하는 경우에는 '누가 그렇게 살래!!!'라는 냉혹한 답변만이 돌아온다.



 난 엄마의 찢어진 난닝구를 본 이후로 목욕탕에 같이 가기가 싫어졌다. 많은 국민이 IMF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던 시절 아빠는 돈을 못 버는 가장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궁상을 떨었다. 그분의 성격이 그랬고 다행히 그런 것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강압적 미안함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남편이 난데없는 신세 한탄을 하는 동안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내 형편에 맞는 적절한 구매 행위를 하며 그에게도 필요한 것을 갖추도록 조율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나? 나는 강요된 미안함이 몹시 불편했다. 차라리 지하상가에서 내 지갑 수준에 맞는 것을 기분 좋게 구입하고 불필요한 감정 '미안함'을 느낄 필요 없이 순수하게 기쁜 감정만 취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만약 내가 상담자가 되어 이런 경우의 상담을 맡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가야 할까 잠시 고민해 보았다. 참 어려운 문제였다. 솔직한 내 감정을 얘기하면 오해가 생기기 쉽고 그는 또 기분이 상할 것이다. 그가 아주 기분이 좋을 때 술 한잔 하면서 풀어야 할 무거운 주제였다.  



 아이들이 어릴 적 지금처럼 교육비에 큰 지출을 하기 전에는 그도 자신을 위한 지출을 한 적이 있었다. 탁구 레슨을 받는다며 다달이 내는 수강료는 그리 적지 않았다. 원래부터 공상을 떠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언제 저리 됐을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쓰던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새 백팩을 볼 적마다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 플러스알파, 미안한 마음도 가지게 될 것이다. 과연 고마움과 미안함은 동격인가. 나는 또 헷갈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면서 상대방이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저 사람은 내가 한없이 미안해하기를 바라고 있나, 내가 미안해할수록 과연 남편은 기분이 더 좋을 것인가. 나는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이것은 남편이 고쳐야 할 마음 가짐이었다. 내가 미안함을 가져야 하는 가방. 나는 그 잘난 이름을 가진 가방이 왠지 부담스러워진다. 선물을 받는 것이 미안한 행위라면 나는 사양하고 싶었다.



 남편의 의도를 파약하고 적절한 선에서 조율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특별히 잘못된 것이 없는데 나는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싶지 않고 또한 다른 이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게 하고 싶지 않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안일을 자연히 도맡아 하는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피곤함에 녹초가 되었다. 그럴 때면 남편에게 문자를 하여  오늘은 피곤해서 저녁을 못하니까 종류를 사 오던지 하여 저녁을 먹으라고 알리곤 한다. 굳이 힘든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차린 저녁상을 내며 상대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게 필요가 없었다. 상대가 미안해한다고 상대적으로 내가 기분이 좋을 것도 아니었다. 그도 아내가 미안해할 필요가 없도록 스스로를 챙기기를 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라지만 성격이 어디 쉽게 고쳐질까 싶다.



  

 집에 돌아와서 그에게 말했다.

"5월에 프리랜서들 소득 신청하잖아. 이번에 환급금이 제법 되더라고. 그거 돈 나오면 자기 줄게. 자기 필요한 거 사."

그도 다른 남편들처럼 아내로부터 선물을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인가 나는 추측했다.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예상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각자의 수입을 한데 묶어 우리 돈이라고 여기는 그에게 그 답지 않은 발상이겠지만 어쨌든 그를 위해 내 지갑을 열 때 그 미안함은 해소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새 가방에 가득 채워져 있던 구겨진 종이들을 꺼내며 그것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낡은 가방을 잠시 들고 고민하다가 장롱 한 구석에 가지런히 넣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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