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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Mar 05. 2024

결혼생활에서 파생되는 '다름'에 관하여

누군가의 신발을 신어보려 노력하며. 

"왜...... 울어?"

 대답할 수 없었다. 말한다고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중략) "노을이 너무 예뻐서." 유정이 말하자 세훈이 귀엽다는 듯 유정의 볼을 살짝 잡았다 놓으며 말했다. "거짓말." 세훈은 더 캐묻지 않았고 유정도 자꾸만 눈물이 흘러 말을 할 수 없었다. -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결혼'은 개인+개인의 만남이 중심이지만, 각자의 원(原) 가족과 배우자와의 다름으로 인해 갈등의 요소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 '다름'은 '배움'이라는 아름다운 결론을 향해 갈 때도 있지만, 서운함이나 불편함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고 이때 개인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부드러운 표현을 쓰더라도 상대에게 언짢은 감정을 주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때로는 감정이 앞서 부드러운 표현을 미처 사용하지 못하거나, '다름'에 관해 의도적으로 부드럽게 표현하지 않아 갈등이 발생한다. ) 이때, 중요한 것은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아닐까. 생각의 물꼬를 한번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두면 계속 그쪽으로 흐르게 될 테니. 

 나의 경우 배우자보다는 그의 원 가족에게 '다름'에 관해 좀 더 관대함을 발휘하려 노력하며, 그들 또한 내게 그러하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배우자와의 '다름'은 협의하에 결론을 이끌어 갈 수 있지만, 배우자의 가족과의 '다름'은 불편함을 표면화하는 순간, 자칫 돌이킬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서로 아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정도나 분야만 다를 뿐 허용할 수 없거나 인내심의 한계를 넘는, 간단히 말해 '정색'하는 자신만의 지점이 있고 그 부분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기에 어려움이 생긴다. 그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스킬을 잘 익힌다면 결혼 생활을 넘어 살아가는 일 자체가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한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종종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문제에 관해 글을 쓰며 한번 생각을 정리해 본다. 

 결론은! 정답은 없다. 오늘의 다름을 이렇게 해결한다고 해서 모든 다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음의 다름은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그럼에도 '다름'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면 '나'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정색하는 부분을 때로는 '다름'을 통해 알아간다. 일례로, 나는 늘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갖고 아이에게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어느 상황에서 깨달았다. 내가 '엄마'의 역할을 하는 동안,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작동하는 순간은 아직 명확하게 자신만의 세계관이 만들어지지 않은 아이의 '자아(自我)'가 누군가에게 침해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라는 것을. 이때 나는 '다름'에 맞서지 않는다면 견딜 수 없어 끝내 누군가가 가진 '다름'에 맞서며, 그 '다름'에 맞서는 현명한 방법을 찾는 것이 언제나 나의 과제가 될 거라는 것을.  

 일단은 최대한 부딪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상책임으로 몇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상대의 어떠한 말투나 결론이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면 그 말이나 결론이 나올법한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것. 대화의 주제를 의도적으로라도 그것과 상관없는 쪽으로 끌어가거나, 다른 방향으로 주의를 흩뜨리는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혹 어떠한 행동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 일단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것도 제법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다름'으로 인해 빚어질 불편함을 최대한 피하되, 정말 아니다 싶은 지점이 발생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때의 내 마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진짜 기술이 필요하다. 내면으로 여러 차례 정색해 버렸을지언정 최대한 차분하게, 그 의사를 전달할 것. 상대의 입장에서, 몇 차례 상황을 살피고 끝내 이해할 수 없다면 결국 이야기하는 것. 그럼에도 부디 미워하는 마음은 갖지 않을 것. 말하는 마음에 미움이 있다면 미사여구를 동원해도(미사여구를 잘 동원도 못 하지만) 그것이 사실 '보기 싫다'의 우회적이고도 고급진 표현이라는 것을 상대는 안다. 

 배우자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도 있지만, 일일이 설명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개입될 수도 있으니 필요하다 판단되면 직접 나서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는 삶이지만, '다름'을 극복하는 일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번 '다름'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 보며, 부디 안 오길 바라지만 다가올 수도 있을 내일의 ‘다름’에 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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