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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May 22. 2024

당신의 빈틈과 약한 모습

 누군가의 몇몇 모습들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상대방을 조금 안쓰럽게 여기게 되는 모습,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조금 상승시키는 모습, 안 달가운 면이 있어도 그 마음을 조금 사그라들게 만드는 모습 등. 내게 있어서 그런 모습은 필히 누군가의 약한 모습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모습이다.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가 점점 벗겨지고 있는 모습, 한쪽 솔기가 뜯어지며 낡아가는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모습, 휴대폰 보호 필름이 끝부분이 깨지거나 본체와 분리되며 교체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모습, 오래 사용해 색이 바래고 있는 소지품을 지닌 모습 등. 그런 한 구석을 지닌 사람을 보면 나는 안쓰럽거나, 호감이 짙어지거나, 뭔가를 해 주고 싶거나, 안 좋아하는 마음이 옅어지는 등 전(全)적으로는 아니지만 마음이 해제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불현듯 눈에 들어오기에, 그런 마음은 미처 대비할 새 없이 불쑥 찾아온다. 

 아이가 학교에서 몇몇 아이들에게 이름 외의 호칭으로 불리며 불쾌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악의는 없었겠지만 몇몇 아이들이 부르는 것을 듣고 따라 하는 다른 아이들도 있었고, 본인의 이름 외에 본인이 원치 않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은 실례라 여겨져 고민 끝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의 교육으로 바로 고쳐졌지만, 놀린아이 중 한 아이를 알고 있던 나는 그에게 달갑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날이었을까 다음날이었을까. 하굣길에 아이를 놀리던 아이를 마주친 뒤, 외면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이와, 같은 학교 학부모인 친구 모녀와 함께 하교하는 길, 우리 뒤로 그 아이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였을까. 갑자기 그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가 부모와 등하교 길에 동행하던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입학식 다음날부터 그 아이는 혼자 하교하고 있었다. 혼자 부여한 서사였지만, 어린 마음에 엄마와 함께 오가는 아이들이 부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헤어지며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안 좋았던 감정은 옅어져 있었다. 그 아이의 서사는 알지 못하나 지금도 종종 등하굣길에 마주치면 빗지 않은 머리와 꺾어 신은 신발 등의 안쓰러운 모습이 눈에 들어와 내가 해줄 수 있는 한 가지인 반가움을 담은 인사를 건네고 있다.  

 이제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굳이 그 아이에 대해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늘 한쪽 부분만 보고 쉽게 판단하고 불같이 화내고 자주 미워하고.. 그랬는데 물론 지금도 자주 그러지만, 이제는 전보다는 자주 누군가의 약한 부분이 눈에 보인다. 어쩌면 나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약해지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니면 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며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진 걸까. 

 한국에서 잠시 시가 어른께서 놀러 오셨다. 분명 익숙하지 않은 타인과 일상의 한 공간을 공유하는 일은 불편한 일이다. 일단 그것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에는 불편함을 불편함 자체로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자꾸 그 이면의 서사가 읽힌다는 것이다. 이래서 이런 거구나, 본인 나름 엄청 배려하고 계시는구나 같은 이면의 서사들이 읽혀서 불편함을 잘 토로하지 못한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그 약한 부분. 그것은 여지없이 적용되어 종종 눈에 보이는 약한 부분들이 불편함에 관한 시야를 흐려지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나의 내면의 변화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불편함을 불편하다고 느끼는 나 개인의 모습도 사실 꽤 좋아하고 있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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