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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pr 17. 2024

공원(公園)에서 누리는 ‘봄의 맛(味)’


 한계 없이 아름다운 봄을 지나고 있다.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느끼기 위해 틈틈이 공원에 간다. 지내면서 느끼는 일본의 배려 중 하나는 공원을 위해 녹지(綠地)를 가득 내어주는 넉넉함이다. 덕분에 곳곳에서 호수를 품은 넓고 아름다운 공원을 누리고 있다. 

 공원의 너그러움을 잘 아는 일본 사람들은 그 혜택을 현명하게 활용한다. 특히, 야외 활동이 편안한 계절이면 꽃놀이(花見), 소풍(遠足), 야외 포장마차(屋台) 등으로 공원의 쓰임은 절정에 이른다. 지난봄, 아이와 함께 ‘공원’으로 유치원 봄 소풍(遠足)을 다녀왔다. 보호자도 함께 소풍에 참석하며, 도시락으로 내게 익숙한 소풍의 공식을 따라 한국식 김밥을 준비했다. 일본 나들이의 소울푸드인 ‘오니기리(おにぎり, 주먹밥)’를 알고 있었지만, 나와 다른 문화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을 주고 싶었다. 

↑나의 김밥 도시락(아래)과 일본 친구의 오니기리(おにぎり) 도시락(위)

일본의 소풍은, 경험했던 한국의 소풍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조→기념촬영→레크리에이션→산책→점심 식사→자유 시간의 순서로 공원을 알뜰하게 활용하며 진행된 소풍의 점심시간, 친구 일행과 함께 돗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봄의 아름다움 속에서 먹는 김밥은 특별했으나, 도시락을 펼쳐놓고 함께 김밥을 나눠 먹던 한국 소풍의 추억과 달리, 일본 소풍에서는 각자의 도시락만을 먹어 아쉬웠다. 손에 통째로 들고 먹는 ‘오니기리(おにぎり, 주먹밥)’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지만, 일본 친구에게 나의 김밥을 권하며 아쉬움을 달랜, 그해 ‘봄의 맛’은 미완(未完)의 ‘소풍의 맛(味)’으로 기억되었다. 

 타국의 삶에서는 종종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만나는 일이 이어졌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고 성장하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겪으며 시간은 흘렀고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했다. 새봄이 내어주는 풍경이 어김없이 아름다워, 그것에 이끌려 다시 공원으로 나갔다. 

(좌)근거리의 아름다운 동네공원, (가운데)후쿠오카(福岡)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海の中道海浜公園), (우)후쿠오카(福岡) 오호리 공원(大濠公園)

 초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한 달 남짓한 봄방학(春休み)의 시간, 공원이 주는 풍요를 알게 된 우리는 다양한 아름다움이 담긴 곳곳의 공원을 다녔다. 근거리의 동네공원부터 후쿠오카(福岡)에서 유명한 ‘오호리 공원(大濠公園)’과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海の中道海浜公園)’까지 다니며 부지런히 ‘하나미(花見, はなみ, 꽃, 특히 벚꽃을 구경하면서 야외에서 음식을 먹고 즐기는 일본의 문화, 출처:지식백과)’에 동참했다. 

↑‘하나미(花見, 꽃구경)’ 기간에는 일시적으로 ‘야타이(屋台, 포장마차)’가 들어선다.

  봄의 공원이 내어주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는 ‘야타이(やたい, 屋台)’를 만날 수 있다. 지붕이 있는 이동식의 작은 가게나 포장마차를 의미하는 ‘야타이(やたい, 屋台)’에서는 감자튀김(ポテトフライ), 핫도그(ホットドッグ), 솜사탕(綿菓子), 캐릭터 카스테라(ドラえもんカステラ), 타코야끼(たこ焼き), 닭꼬치(焼き鳥), 카키고오리(かき氷, 일본식 빙수) 등 대부분 친숙한 메뉴들을 팔고 있어 낯설지 않았고, 그것은 ‘하나미(花見, 꽃구경)’에 풍요를 더했다. 아름다운 봄의 풍경과, 풍경만큼 다양한 ‘야타이의 맛(味)’을 누리는 것은 봄의 공원에서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혜택이다.

↑후쿠오카 오호리 공원(大濠公園)의 푸드트럭
↑후쿠오카 다자이후(太宰府)의 매화 떡((梅ヶ枝餠)

 가끔은 생소하고, 때로는 익숙했던 ‘야타이(屋台, 야외 포장마차)’의 요리들은 새콤하고 달콤하고 고소하고 맵고 쫄깃하고 바삭하고 부드러웠으며, ‘하나미(花見, 꽃구경)’와 더불어 그 다채로움을 즐기다 보면, 마지막으로 선명해지는 봄의 맛은 뜻밖에도 ‘이별(離別)의 맛’이었다. 꽃과 함께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야타이(屋台)’는 꽃과 함께 떠날 것이고, 새 학기는 시작될 것이며(참고로 일본은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 그것은 선물 같던 봄 방학의 여유와 즐거움과의 헤어짐을 의미하기에 마지막으로 누리는 봄의 맛은 결국 ‘이별의 맛’일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봄은 미세하게 하루하루 ‘더위’로 모습을 바꿔가며 이 시간의 마지막에 기다리는 ‘이별’의 존재를 은근하지만 분명하게 알려주고, 그것을 증명하듯 꽃샘추위에 보이지 않던 ‘카키고오리(かき氷, 곱게 간 얼음 위에 시럽을 뿌려 먹는 일본의 여름 디저트, 일본식 빙수. 깎는다는 뜻의 ’카쿠(かく)‘와 얼음을 뜻하는 ’코오리(氷)‘의 합성어, 출처:나무위키)’는 어느덧 등장해 지나가는 이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찬란했던 꽃의 시간은 지나고, 이 시절을 누리던 아이는 자라고, 함께했던 기억은 추억으로 남고, 이 봄이 아낌없이 내어준 모든 아름다움과 헤어지게 되겠지만, ‘카키고오리(かき氷, 일본식 빙수)’의 도움을 받아 피할 수 없는 이별을 조금은 달콤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간다. 

 시원하고 달콤한 ‘카키고오리(かき氷)’는, 그 화사함으로 꽃이 떠난 후 다가올 날들 또한 아름다울 것을 예고하며 꽃이 떠나는 길을 배웅한다. 


오늘도 이곳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974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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