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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ul 09. 2024

우동(うどん)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온기가 담긴 이야기를 좋아한다. 연말에 식당에서 한 그릇의 우동을 나눠먹는 세 모자(母子)의 경제 사정을 배려해 정량보다 우동을 많이 제공한 식당 주인의 마음 씀씀이 류의 온기. 받는 이가 알아차려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양을 1.5배 정도로만 살짝 늘려 제공한 세심함이 담긴 류의 온기. (원작:구리 료헤이, 우동 한 그릇). 그런 섬세함을 품은 온기를 사랑한다. 세 모자가 나눠먹은 한 그릇의 음식이 우동이 아닌 카케소바(かけそば, 메밀면에 뜨거운 국물을 넣는 일본의 국수 요리) 였다는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차치하고, 우동은 따뜻했다.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매개체가 된 우동에는 진솔한 온기(溫氣)가 담겨 있었고, 그 온기를 품은 우동이 지녔을 성정(性情) 또한 따뜻하리라 생각했다. (냉 우동도 있지만, 보편적인 뜨거운 우동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았다.) 

(좌)‘떡’이 들어있는 치카라(力) 우동, (우)새우튀김(海老天) 우동

 아픈 날에는 우동(うどん)을 먹는다. 언젠가 들었다. 일본에서는 아픈 날에 우동(うどん)을 먹는다고. 그러자 따뜻한 성정을 지녔으리라 여긴 우동에 ‘치유(治癒)’의 이미지가 얹어져 더할 나위 없는 음식이 되었다. 자라온 문화의 특성상 개인적으로는 아프면 죽이나 따뜻한 밥을 우선 떠올리지만, 뜨거운 한 그릇의 우동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니 그 안에 담겼을 ‘치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가쓰오부시(かつおぶし, 가다랑어를 찐 뒤 훈제를 하고 발효시켜 건조한 식재료)의 풍미가 짙은 육수와 부드럽고 쫄깃한 면으로 이루어진 우동의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 맛. 그 깊고 친절한 맛을 생각하니 과연 아픈 날 떠올릴 당위성이 있는 맛이었다. 

파래 우동

 우동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가끔 그 우동을 먹는다. 그 맛이 그리워서, 먹고 싶어서, 비가 와서, 몸이 아파서, 그리고 치유를 위해서. 몸의 아픔뿐 아니라, 살면서 필연적으로 어딘가에 긁히는 마음의 치유를 위하여. 사는 일은 언제나 크고 작은 상처에 자주 맞서는 일이므로. 그래서 우동을 먹으며 ‘나아짐’의 시간을 갖는다.      

마라 맛((麻辣風) 우동

 우동은 맛에 있어서도 친절했다. 일본의 가장 대중적인 면 요리 중 하나인 우동은 어느 곳에서 주문해도 실패가 적은 안전한 선택이었고, 인스턴트 라면과 같이 검증된 맛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 친절한 성품은 새우튀김(海老天), 우엉 튀김(ごぼう天), 미역(わかめ), 떡(力もち), 주먹밥(おにぎり), 유부초밥(いなり寿司) 등 다양한 곁들임 음식과 위화감 없이 어울렸고, 한편으로는 영민했다. 그래서 우동은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영민하게 필요한 것을 내어주었다. 건강한 한 끼를, 차분함을, 따뜻함을, 다정한 온기를, 섬세한 배려를, 그리고 치유를... 덕분에 우동을 먹은 뒤면, 그 성품이 마음에도 스며 어김없이 차분해져 있었다.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비는 계속되고, 내리는 비로 인함인지 때때로 마음을 파고드는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함인지 더불어 마음도 가라앉고 있다. 순간, 슬며시 우동이 스쳐갔다. 어쩌면 서늘한 습기를 머금은 날 우동만큼 적당한 요리는 드물다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잠깐의 떠올림을 흘려보내지 않고, 우동을 끓였다. 시판(市販) 우동 면을 끓는 물에 데쳐 면을 건지고, 물을 새로이 끓여 농축된 쯔유(つゆ, 가다랑어로 맛을 낸 일본식 간장)로 간을 맞춰 육수를 만든다. 데쳐둔 면 위에 뜨거운 육수를 붓고, 쪽파를 잘게 다져 올리니 금세 카케우동(かけうどん, 우동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이 만들어졌다. 맛을 보니, 치유의 기억을 품은 맛이었다.   

 지속되는 몸살에 한동안 붙잡혔던 시간이 있었다. 며칠을 고전하며 지내다 남편의 권유로 우동을 먹으러 갔다. 일본에서는 아프면 우동을 먹는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먹는 일은 내키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카케우동은 먹을 수 있었고, 먹다 보니 그 안에 담긴 온기가 느껴졌다. 물론, 우동을 먹고 몸이 극적으로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그 후 오래지 않아 앓아야 할 시간을 모두 채운 몸은 호전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날의 우동이 내어준 것은 ‘치유’였다. ‘배려’를 받고 있다는 선명한 감각과 더불어 우동이 내어준 ‘치유’의 감각을 기억한다. 그 감각을 떠올리며, 온기와 치유가 담긴 카케우동(かけうどん)을 다시 마주했다. 장마와 더불어 찾아온 마음의 파도도 잘 넘기리라 믿으며.     

카케(かけ) 우동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곳에 방문해 주셔서 반갑습니다.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459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은 오늘 비가 온다고 들었어요. 빗길 조심하세요. 여기(후쿠오카)는 이제 본격 무더위가 시작되었네요. 모두 장마 후 무더위에도 건강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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