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Dec 20. 2024

다시 새로운 시작

우리는 이미 너를 알고 있다.

 전입 신고를 하루 앞두고 부대가 있는 도시로 왔다. 미리 숙소 정리도 하고, (암묵적 룰에 따라) 부대에도 살짝 얼굴을 비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왔다.

 새 부대는 본가에서 가까운 편이다. 산길을 타고 한 시간 남짓 차를 몰았을까. 갑자기 기류가 바뀌며 과거 어느 한 곳에 시간이 멈춘듯한 마을이 나타난다. 민가임에도 군 관련자만 머물고 있는 듯해 다소 칙칙한 분위기와 수시로 보이는 군인들.

 짧은 휴가는 끝났다.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기대보다 이 상황에 대한 생소함이 앞선다. 나는 정말 어쩌자고 대위의 신분이 되어 이 순간 이곳에 있는가. 곱씹다 보면 깊어질 것 같아 생각을 접고 숙소로 향한다.

 이번 부대의 독신자 관사는 단출하다. 방 두 개 딸린 단독주택 형태의 독채로 주방을 겸한 작은 거실과 욕실이 있는 집. 사려 깊은 주임원사께서는 미리부터 몇 차례 전화를 주시며, 감사하게도 바로 입주할 수 있도록 숙소 정비를 해 두셨다. 목소리로 짐작했던 인상과 사람 좋으신 미소. 꾸며낸 친절이 아닌 찐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분을 뵙자 이곳에 근무하며 답답할 때 부담 없이 커피 마시러 종종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룸메이트는 군무원인데, 숙소를 공유하니 같은 현역보다는 편한 부분도 있겠다. 일단 부대로 가자.  

 부대 역시 마을의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낡아있다. 드디어 대대장님을 만난다. 사진에서 미리 확인한 대로 파견 기간 스쳤던 그분과 마침내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하게 될 운영과도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잠깐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다. 대대장님과 주임원사와 운영과 간부들과 간단히 식사를 하러 간다. 부대 앞 식당들은 유독 전투화를 벗어야 하는 좌식이 많았는데, 이 도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번거롭게도 전투화를 벗고, 이 조합에서 즐겨 찾는 공식에 따라 국밥을 주문한다. 어느덧 나는 모두의 식사 속도를 맞추며 적당히 남기는 노하우는 터득했다. "식사가 입에 안 맞으십니까?" 혹은 "천천히 드십시오."등의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이 조직에서는 특히 첫 만남일수록 무난하게 비치는 게 가장 좋으니깐.

 잠시였지만 한꺼번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더니 피로가 몰려온다. 역시 낯가리는 자의 조직생활은 업무 파악 외에도 신경 쓸게 많다. 마침내 일행과 헤어져, 필요한 것을 사들고 집으로 와서 퇴근해 있던 룸메이트와 인사를 나눈다. 룸메이트 역시 좋은 분 같아 다행이다. 

 방으로 들어와 이제 한 숨 돌린다. 조촐한 공간이다. 단독주택이라 그런지 방 크기는 전 부대보다 작아 3-4평 남짓 될까. 짐은 최대한으로 적게 들여왔다. 이곳에서 예정된 기간은 1년 8개월. 전입신고도 아직인데 이미 끝을 기다린다. 그래도 본가가 가까우니 수시로 오가다 보면 좀 나을 거라 기대하며. 

 문자가 온다. "잘 도착하셨습니까?" 그 아이다. 모든 것이 낯설어서 그런지 반가웠다.

 내일부터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만날 테니 일찍 자두자. 참모 업무. 필요한 것은 성실일까. 부디 이곳에서 남은 군 생활이 무탈하게 잘 흘러갈 수 있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