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용기가 필요해
장교 임관 후 소대장 보직을 받았을 때 나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소대원들을 사랑하며 이끌어 가리라 다짐하며 감사함으로 소대장 임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감으로 충만했던 이상은 오래지 않아 깨졌다. 그것은 야전을 겪어보지 않은 나의 무지와 스스로의 리더십에 대한 과대 평과 및 막연한 낙관에 의해 그려왔던 내 머릿속의 군생활일 뿐이었다.
소대원들을 관리하며 나는 곧 난관에 부딪쳤다. 나에게는 소대원이 한 명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순차적으로 입대와 전역을 반복했던 나의 소대원들은 20명도 넘었으며, 각기 다른 성격과 개성을 가진 개인이었다. 내가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유형의 아이들도 많았고 나는 군생활의 경력도, 인간관계의 경험치도 부족한 초임 소대장이었다. 만약 나의 소대원들이 5명 내외 었다면, 넉넉잡아 10명 내외만 되었어도 한 명 한 명 다독이며 서로 다름을 어느 정도 중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20여 명의 혈기왕성하며 계급도 개성도 달랐던 그들을 초짜 소대장에 성별도 다른 내가 완벽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더구나 나는 소대원 관리만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다른 임무들이 많아 소대 관리에만 온전히 마음을 기울이기도 어려웠다.
처음에는 신임 소대장이었던 내가 모든 소대원들보다 가장 나중에 합류해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신병들이 입대하자 그들은 나를 의지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소대원들을 향한 열의가 가득했으므로 신병이었던 이들과 아직 군생활이 오래되지 않은 이들에게 마음을 쓰고, 상담도 자주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소대 선임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해결할 방안은 없었다. 사수인 전임 소대장과 의논 끝에 중대 차원에서 소원수리를 진행하는 방안으로 결정되었다. 소원수리는 하급자가 기업이나 조직 내부의 불합리함이나 고충을 알려 이를 바로잡기를 청하면 상급자 또는 상급 부서에서 이를 받아들여 처리하거나 또는 그런 일을 뜻한다. (네이버 사전 참조) 중대에서는 정기적으로 소원수리 기간이 있었는데, 마침 소원수리 기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것이 가장 적합한 해결책이라는 판단이었다. 소원수리를 통해 해당 인원 포함, 비 합리적인 방법으로 중대원들의 단결을 저해한 이들에 대한 조치가 이뤄졌고, 함께 같은 중대에서 생활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 여겨진 한 아이는 결국 다른 중대로의 전출 결정이 내려졌다. 소대원 한 명을 떠나보내는 일은 내게 착작함을 안겨주었다. 무거운 마음을 터놓을 곳은 없었다. 이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아 괴로웠지만, 누군가의 안전히 위협받도록 둘 수는 없었다. 다른 중대로 전출 간 인원이 새로운 곳에 잘 적응할지도, 피해를 받았던 인원들이 중대에 남아서 잘 적응할지도 걱정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 아이들은 모두 나의 우려보다 훨씬 잘 지냈고, 무사히 전역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그 시절을 돌아보니 어쩌면 나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했던 일은 누군가의 원망을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후 한동안 무엇인가를 알기가 두려워졌다. 혹여나 다시 마음을 다치고 누군가의 미움을 사는 일이 생길까 봐 나는 두려웠다. 당시 부대장님이신 창장님께서는 부대 관리를 무척 중시하시는 분이셨다. 그분은 본인의 초임장교 시절을 말씀해주시며 병사들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깊이 더 깊이 파고들어 불합리한 것을 고쳐나가며 이끌어가야 한다고 설파하셨다. 그런 말씀을 들으며 나는 의욕이 생기기는커녕 점점 마음이 무거워질 뿐이었다. 어쩌면 소대장 1년 차이던 그 당시 나의 앞날은 이미 예고되었을지도 모른다. 군대에는 필히 병사들이 있으며 그들을 관리하는 간부라는 입장은 굉장히 어려운 자리이고, 옳은 일을 선택해야 하는 자리인데 그토록 미움받기를 두려워하는 내가 어떻게 그곳에서 오래 버틸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이기에 원해서 군대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고, 그렇게 군에 온 인원들은 군 생활에 의욕이 없거나 호의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물론 좋은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 대부분이 그러했다. 하지만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다름으로 인한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한 조직을 이끄는 간부의 역할은 성품이 좋고 능력이 탁월해도 쉽지는 않다. 아니면 정신력이 아주 강하거나. 나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군에서 만난 한 동료가 그랬다. 직업군인은 만능이어야 한다고. 정말로 그랬다. 훌륭하게 군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야 했다. 강인한 체력은 물론, 좋은 인간관계, 명철한 두뇌, 지혜와 현명함, 그리고 용기까지. 그 모든 것을 두루 갖춰야 군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군에서는 다양한 일을 해야 했고, 많은 능력을 필요로 했다. 앞서 언급한 소원수리의 경우 그것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했다.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해결방안 중 가장 좋은 것을 고를 수 있는 지혜. 그리고 때로는 비난과 원망을 감수하더라도 옳은 길로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그것을 배워야 했다. 그 후로도 소원수리는 종종 이어졌다. 중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기에 우리 소대가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일은 적었다. 그래서 중대장님들이 일을 처리해가는 방식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얼마만큼 그것을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결국 중대장을 해보지는 못했으므로.
군생활을 하며 한때는 중대장이 되기를 바랐던 시간도 있었지만 나는 중대장의 공석으로 인한 대리 중대장의 시간을 한 달간 겪었을 뿐, 진급 후 부대를 이동해 참모 생활로 군생활을 마무리했다. 전적으로 중대의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 중대장의 역할을 맡지 못하고 군생활을 마무리 지은 것은 나로 써도, 그리고 군으로써도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며 다시 한번 그때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그때로 돌아가면 나는 더 잘할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정답이란 없을 테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깊어진 연륜만큼 나 자신의 마음만큼은, 그때보다는 잘 추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