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2박 3일
군 생활중에는 훈련이 자주 있었다. 유격훈련, 동원훈련, 혹한기 훈련, KRFE, UFG, 창전술, 중대 전술 등등 그리고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로 인한 준비태세까지 포함하면 꽤나 오랜 시간을 훈련을 하며 보냈다. 일부 동료들은 훈련과 근무(당직근무)만 없어도 군 생활은 할만하다 했는데, 나는 군 생활 자체가 힘들었으므로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훈련은 평소 군 생활보다 힘들었고 난이도 최강을 꼽는다면 단연 동원훈련을 그중 하나로 꼽겠다. 동원훈련은 전시(戰時), 사변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 사태하에서 현역 군부대의 편성이나 작전에 필요한 동원을 위한 대비(예비군 홈페이지에서 발췌) 훈련으로 이미 전역한 인원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참여의욕이 아무래도 저조할 수밖에 없는 훈련이다. 전역한 후에 다시 군부대에 와서 훈련을 받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나, 당시 나의 입장은 현역이었다. 현역의 입장에서 이들을 훈련에 적극 동참시키는 일은 어려웠다. 당시 내가 있던 부대는 1년에 4차례 예비군 훈련을 실시했다. 더운 날이면 이따금 동원 훈련을 하며 보냈던 6월이 생각날 때가 있다.
동원훈련은 수백 명의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훈련이기에 시작 전부터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대상자 명부 확인 및 소집 우편 발송, 명단 작성, 생활관 배정 등등의 행정업무가 필요하고 동원 병력들이 머물 중대 막사도 재 정비를 해야 한다. 동원병력 입소 시 기존에 생활하던 중대 병력들이 머물 임시막사도 천막 및 팔레트 등으로 미리 설치해야 한다. 훈련은 화, 수, 목 진행되기에 월요일은 탄약중대의 평시 임무인 탄약 작업과 훈련 준비를 병행하고 화, 수, 목은 동원 병력이 입소해 동원 훈련을 받고 금요일은 훈련 뒷정리 및 탄약 작업을 한다. 동원 병력이 입소한 기간 동안 원래 생활관에서는 동원 병력이 지내고 중대 병력들은 임시 막사에서 지내며 간부들은 퇴근을 못한다. 물론 이 기간에는 휴가도 쓸 수 없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다. 이렇게 일주일을 주기로 동원훈련을 4회 반복하며 6월 한 달을 지내고 피로가 절정에 다다를 때쯤 마침내 동원 훈련이 끝난다.
여름의 초입임에도 6월의 창원은 더웠다. 훈련을 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화요일 오전 동원 병력이 입소하기 시작했다. 부대 입구에 천막을 설치하고 동원 병력들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반납받고 조교들이 숙영지로 안내하며 훈련은 시작되었다. 훈련을 앞둔 주말은 부담감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막상 시작되니 이제 끝이 보인다는 생각으로 차라리 차분해진다. 나는 탄약 보급 교관 임무를 맡았다. 100명이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수차례 육성으로 탄약 보급에 관해 교육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교육에 적극적이지 않은 분들이 많았고, 참여 의욕도 저조했지만 그럼에도 간간히 교육에 열의를 갖고 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힘을 낼 수 있었다.
동원 병력들을 인솔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부대 특성상 교육장과 숙영지가 분리되어 있었기에 집합장소에 모여서 사격장으로, 교육장으로, 탄약고로 차량 이동을 했는데 집합시간은 잘 지켜지지 않기 일쑤였다. 인원이 많다 보니 각각의 사정으로 늦는 인원들도 많았기에 전 간부들과 조교들이 투입되어 인솔하며 훈련을 이어갔다. 오후 17:00 공식적인 일과가 모두 끝난다 해도 모두 함께 숙영지에 머물러야 했기에 끝이 아니었다. 입소 시 규정에 따라 동원 병력들의 핸드폰을 수거해 두었는데, 행정반에 대기하며 일과를 마치고 찾아오는 동원병력들에게 핸드폰을 내주었고, 간부들은 야간 22:00부터 06:00까지 2시간 단위로 순번을 정해 당직근무에 임해야 했다. 평소에는 야간 당직은 한 명이 전담해 다음날 근무 취침을 보장받았지만, 동원훈련기간에는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 간부가 2시간 단위로 야간 당직근무를 서며 다음날 모두 업무에 임하도록 되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휴게실에서 자야 했기에 피곤함이 쌓여갔다. 당시 부대에는 여자 샤워시설이 없었고, 온수가 나오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더운 날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피곤을 가중시키는 일이었다. 다행히 어느 해부터인가 지휘관의 배려로 잠깐 시간을 내서 숙소에 다녀오거나 근처 목욕탕에 가서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지휘관 분들 중에는 여군과 함께 일해보지 않은 분들이 많았고,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생각이 닿지 못하기 쉬우므로 여자 샤워실이 부대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씻을 수 없다고 여겨져 왔고 나 역시 그동안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휘관이 여군이거나 혹은 이러한 불편함을 인지하고 계신 분이라면 조금 더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곤 해 씻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신다. 그렇게 먼저 말씀해 주시지 않는 이상 아무래도 당사자가 먼저 건의 하기는 어렵다. 혹시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분들이 바쁘면 어떻게 할까, 그동안은 다들 그렇게 지냈는데 왜 혼자 유별나게 행동할까라고 여겨지면 어쩌지 등의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이야기들을 속으로 삼키게 되고 불편함이 쌓이다 보면 어느 날 어떤 계기로 한계에 봉착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씻는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라 아무래도 여자가 적은 집단이다 보니 지내다 보면 예측 못했던 불편한 일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옳고 그른 일이 아니니 정답은 없고 모두의 성향이 다를 것이니, 서로 부지런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혹 논란의 여지가 있을까에 대한 우려로 글을 쓰는 마음도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록한다면 굳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 부분을 덧붙인다. )
동원 병력들의 일정도 첫날부터 마치는 날까지 꽤나 빠듯했다. 사격훈련과 주특기 교육, 탄약고 지역 현장 작업, 안보 교육 등등 및 중간중간 정시에 식사시간까지 있으니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야간에는 현역들과 동반 불침번 근무에 편성되었다. 모두에게 긴 2박 3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목요일 오후 그들이 퇴소한 뒤 퇴근하고 금요일은 뒷정리를 하면 1차 훈련이 끝난다. 주말 간 당직근무 순번이 아니라면 잠시 숨을 돌리고, 다음 화요일 2회 차 인원들이 입소해서 같은 일정으로 2박 3일을 보낸다. 그렇게 총 4회를 반복하며 한 달을 보내면 마침내 그 해 예비군 훈련은 끝이 났다. 첫 부대에서 3년 넘는 시간을 근무했기에 나는 예비군 훈련을 10차례나 넘게 경험했지만 끝내 익숙해지지 못했다. 더 오랜 시간 있었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 끝내 익숙해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진급 후 부대를 옮기고 두 번째 보직은 참모 보직으로 바뀌며 비로소 동원 훈련에서 놓여났고, 이제는 추억만으로만 그때를 기억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덧. 내가 전역할 당시 여군의 전역 후 예비군 훈련 참석 여부는 선택사항이었다. 나는 참석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도 각각의 위치에서 열심히 예비군 업무를 담당하고 계실 분들에게 응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