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부대의 훈련과 행군

군인으로서의 정체성

by 수진

군 생활 동안 훈련은 자주 있었다. 비 전투병과였음에도 훈련은 제법 전투적이었다. 행군은 연간 정해진 거리를 채워야 했기에 훈련 전후로 혹은 수시로 이루어졌다. 다음은 탄약부대에서 겪은 훈련과 행군이다.


*혹한기 훈련

동원훈련 다음으로 부담되는 훈련 중 하나였다. 훈련이 며칠간 지속된다는 자체가 부담이었다. 후방부대였기에 따로 부대이동은 하지 않고 주둔지 내에서 훈련했다. 훈련 전 두꺼운 내의와 핫팩 등을 여러 개 준비해 두었지만 남쪽 지역이었기에 생각보다 춥지 않았으며, 훈련기간 유난히 따뜻해서 다행히 추위로 인해 고생했던 기억은 없다. 부대 이동이 없었기에 천막은 따로 치지 않고 야간에는 실내에 있을 수 있었다. 2박 3일의 훈련기간 동안 첫날은 아침 준비태세를 시작으로 단독군장을 착용하고 위장 후 출동준비만 완료하는 외에는 특별히 상황이 주어지지 않아 복장만 갖추고 평소처럼 현장 업무를 했다. 훈련기간이니 만큼 상황은 늦게 해제되었지만 첫날은 퇴근이 가능했다. 당직근무와 겹치는 불운을 피한다면 비교적 평온하게 둘째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둘째 날은 메인이었다. 아침 일찍 준비태세를 시작으로 탄약고 피폭, 육로 적송 등 중대별로 부여되는 훈련을 하고 야간에는 12:00부터 06:00까지 철야 훈련을 했다. 중대원을 두 개 조로 나뉘어 세 시간 단위로 한 개 조는 훈련할 동안 한 개 조는 잠시 지역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며 교대로 훈련을 했고 이때 훈련조는 탄약 작업들(탄약 이동 및 적송 준비작업)을 진행했다. 이튿날 아침 상황이 해제되면 일단 숙영지로 복귀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야간부터 혹한기 행군이 시작되었다. 행군 장소는 현장 탄약고 지역 및 경비중대의 산악 지역까지 모두 포함이다. 연간 행군 중 가장 장시간의 행군이므로 소휴식과 대휴식을 병행하며 밤새 행군이 이어졌다. 행군까지 모두 마치고 인원 장비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너덜너덜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드디어 올해의 큰 과업 중 하나인 혹한기 훈련이 끝났다는 홀가분함이 들었다.

*유격훈련

부대에 유격장이 없어서 근처 부대의 유격장에서 실시했다. 유격 교관의 임무는 선임 중위급 간부들이 맡았는데 나는 유격 교관의 임무는 맡지 않았고, 인원 통솔 및 훈련 참여 중대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신병을 관리하는 일과 그밖에 행정업무 등을 맡았다. 유격장의 숙소는 나의 경우 해당 부대의 여군 휴게실을 사용했는데 콘크리트 가건물 내부에 깔끔하게 지어져 있고 화장실 샤워실까지 있어서 지내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훈련장이 가까웠기에 입소 행군과 복귀 행군 없이 차량으로 이동하고 훈련을 모두 마치고 돌아와서 숙영지 내에서 행군을 하며 유격훈련을 마무리했다.

*창전술

창장님(부대장님)이 재임기간 받는 평가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창장님이 진급을 앞두고 있는 경우라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시기에 한동안은 부대 업무보다는 훈련 준비만 중점적으로 해야 했다. 나는 임관 후 전입 온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창전술이 있었기에 부대 적응하랴 훈련 준비하랴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훈련 당일은 고작 하루였기에 괜찮았지만, 훈련보다 한 달 이상 고난도의 강도로 반복되던 훈련 준비기간들이 훨씬 힘들었다.

*중대 전술

창전술 보다는 작은 개념으로 중대장님이 재임기간 평가받는 훈련이다. 전시 탄약 중대에 일어날 수 있는 탄약고 피폭 및 화재 발생, 육로 적송 등의 상황이 주어지고 이에 따른 임무수행을 평가받기에 신속하게 탄약을 차에 싣고, 화재 발생 시 대처방안 등을 준비해야 한다. 이 또한 준비과정이 관건인데 중대장님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연습도 평가도 비교적 무난하게 넘어갔다.

*KRFE/UFG 등 전 군 훈련

자부대에서 실시하는 훈련이 아닌 이상 군 전체 훈련의 경우 대동소이했고 단독군장을 지속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것 외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대부분 지휘통제실 쪽에서 적절히 조치하면 되는 훈련들이었기에 아침 준비태세 외에는 중대에서 특별히 부담되는 일은 없었다.

*실제 훈련

군에 있을 때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천안함 피폭 등의 일이 있었다. 휴가가 제한되고 외출 외박 등이 통제되고 군장 착용 후 부대에서 대기했었는데 당시 근무하던 부대에서 그 이상으로 상황이 번지는 일은 없었다.

*행군

연간 정해진 행군 거리가 있기에, 혹한기 훈련이나 유격훈련 등 훈련과 병행하는 행군 외에도 수시로 행군이 있었다. 넓은 탄약고 지역과 산을 끼고 있는 탄약부대였기에 부대 내에서 행군을 했고, 훈련과 관계없이 평소에 하는 행군은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주간에는 일을 하고,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저녁에 행군이 이루어졌다. 22시 전후로 행군을 마쳤기에 다음날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일과가 이어졌다. 간간히 휴식시간이 있었지만 지역 사무실 지역에서 휴식하지 않는 이상 화장실이 없었기에, 번거롭게 차량을 이용하느니 화장실 가는 일을 최소화하는 편이 편했다. 후보생 시절의 행군은 나 한 몸만 신경 쓰면 되었는데, 간부 시절의 행군은 수시로 인원 장비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행군 중에도 인원들을 살펴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은 바로 훈련 아닐까. 월 1회 이상은 이런저런 상황들로 늘 단독군장을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훈련과 행군은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혹여나 내가 해야 할 일을 놓칠까 봐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기에 마음도 피곤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인원 확인과 총기, 장비 반납까지 끝내고 피곤한 몸으로 차를 몰고 숙소로 돌아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한 적막이었다. 텅 빈 방한칸짜리 나의 숙소에서 그 고요함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의문들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몸을 씻는 것도 힘들 만큼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지만 그 적막과 외로움은 편안한 휴식을 막을 수 있을 만큼 힘이 막강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 다시 견뎌야 하는것은 고된 일상이었다. 군생활이 힘들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또한 큰 이유가 되어 전역에 대한 갈망을 키워갔다. 전역 후에도 한동안 그 시간 속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그때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음에 감사한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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