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겪었거나 나만 겪지 못했던 것
군생활 당시 부대의 여군 소대장은 나 하나였다. 다른 소대장들과 업무는 같았지만, 성별이 달랐기에 같은 군생활임에도 차이점이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다음은 내가 여군 소대장이었기에 겪은 군 생활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일 뿐 부대마다 상황은 다를 것이다.
-경험해 볼 수 없었던 것
*오분 대기조
군대에서 긴급한 초동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운용하는 부대로써 상황 발생 시 5분 이내로 출동해야 해서 그 명칭이 5분 대기조였다. 초임 간부들이(중소 위 및 중하사) 순번을 정해서 5대기 소대장으로 근무했으며, 내가 근무하던 부대의 경우 병사 10명 담당 간부 1명으로 구성되었다. 한번 오분 대기조가 되면 1-2주 정도 근무를 서는데 항시 전투복을 착용해야 했고, 언제 출동명령이 떨어질지 몰라 모두 한 생활관에서 생활했다. 내가 근무하던 경남 창원은 후방부대였기에 실제 상황으로 인해 오분 대기조가 출동하는 일은 없었고, 대부분은 정작과장님이나 당직사령의 호출하에 훈련 차원에서 출동하곤 했다. 생활관에서 동숙하고, 5분 대기 조원들과 일주일 내내 함께 있어야 하기에 현실적으로 무리라 여겨진 나는 5대기 조장 임무에서 제외되었다. 초급장교로 열의가 넘치던 전입 초기 나는 5분 대기조가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아쉬웠다. 다른 부대에서 근무하는 여군 동기들 중에는 취침 시에는 여군 휴게실에서 숙식하며 오분 대기조 임무를 수행하는 동기도 있었는데 내가 있는 부대는 그렇지 않아서 나는 결국 오분 대기 조장을 해볼 수 없었다.
*탄약 호송
탄약부대에서 근무했기에 가끔 탄약을 싣고 타 부대로 운반하거나 타부대에서 탄약을 받아와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이것을 탄약 호송이라 한다. 근거리 부대가 아닌 이상 대부분 왕복 1박으로 다녀오고 취침은 상대 부대에서 한다. 탄약 호송 조장은 초급간부(중. 소위나 중. 하사)가 수행하는 업무였는데 미혼의 여군 소대장을 외부에서 재우기에는 지휘관의 지휘부담도 따르고 상대 부대에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에 나는 호송 업무에서 제외되었다. 탄약 호송을 가는 선후배 소대장들이 부러웠다. 호송 자체도 해보고 싶었으며, 잠시 부대 업무를 벗어나 외부로 나가서 바람을 쐬고 싶었다. 결국 나는 영내 탄약 업무만 하고, 외부 업무는 차량으로 10분 남짓 걸리는 바로 옆 부대에 탄약을 한차례 운반해본 일이 전부였다.
*생활관 동숙
초임 간부의 경우 부대에 전입을 와서 한동안 중대 생활관에서 동숙하는 기간이 있다. 우리 탄약 중대에는 총 5개 생활관이 있었는데, 모든 생활관에서 돌아가며 동숙을 하며 중대원들과 친해지고, 병사들의 고충이나 애로사항 등등도 파악하는 기회가 되어 주는 것이다. 나의 경우 생활관 동숙에서 제외되었고, 낯을 가리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다 보니 군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중대원들과의 거리감의 벽을 끝내 완전히 넘지는 못했다.
-여군이기에 나만 이용하거나 경험했던 것 혹은 불편사항
*여자 휴게실
본청 2층에 여자 휴게실이 5-6평 남짓한 공간으로 제공되었다. 위치가 본청이다 보니 아무래도 현장에 있는 중대 간부보다는 본청에서 행정 근무하는 여군이나 여군무원이 주로 사용했으며, 이따금 점심시간의 여유가 있을 경우 쉬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그리고 근무 취침이나 동원훈련 등으로 부대에서 취침할 때 사용하곤 했다.
*여군 여군무원 간담회
부대장님을 모시고 분기에 한번 정도 여군. 여군무원 간담회의 시간을 가졌다. 계층별 간담회는 의무였고, 그중에 여군. 여군무원 간담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군무원이 많은 편이라 간담회의 규모는 작지 않았다. 대체로 2시간 이내로 진행되며 고민 및 애로사항을 건의하고 여 근무자 대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지침 등을 교육받고는 했는데, 어쩌다 한 번씩은 외부로 나가 식사를 하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간담회로 인해 짧게나마 업무에서 제외되어 부러워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보건휴가
월경이나 산부인과 검진 등의 이유로 월 1회 무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제도는 존재했지만 임신 출산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본인이 없을 경우 대체인력의 부재로 동료의 업무가 많아지기에 선뜻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개인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상관에게 보고 하고 승인받기가 내키지 않는 등의 이유로 아주 몸이 좋지 않은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 사용하지 않았다. 나의 경우도 실제로 사용해본 적은 없었다.
*여자 화장실
화장실 사용이 불편했다. 위병소를 기준으로 영내(본청, 탄약 1,2중대, 본부중대) 지역과 영외(탄약고 지역과 경비 1,2 중대) 지역으로 나뉘는데 영내는 꽤 넓었음에도 본청에 여자 화장실이 하나뿐이었다. 본청과 중대의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았기에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되었지만 문제는 현장이었다. 탄약고가 있는 현장 지역에는 여자 화장실이 있긴 했지만, 남자 화장실 내부에 한 칸을 별도로 구분해서 사용하도록 했으므로 급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이 꺼려졌다. 그래서 현장 지역에 있을 때는 주로 정비공장 내 여군무원들이 사용하는 여자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걸어가기에는 먼 거리이다 보니 자주 방문하기에는 번거로워서 물도 적게 마시며 화장실을 가는 횟수를 최소화하는 편이 차라리 편했다. 이따금 화장실을 이용할 때 정비공장에 근무하는 여군무원들과 마주칠 때가 있었는데 간식도 주시고, 잘해주셔서 지금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군생활중 여군이었기에 제공받는 복지도 있었으며, 여군이었기에 불편한 점도 있었다. 아무래도 소수자의 입장이다 보니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부대를 바라볼 수 있었고, 사각지대와 미세한 부분까지 경험하고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