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특히 공부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정말 많은 고민과 시도가 있었어요.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저도 행복이가 스스로 학습하는 습관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자기 주도 학습이 최고라는 말은 흔히들 하지만, 모든 아이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학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란 걸 깨달았죠. 그래서 처음에는 옆에서 열심히 가르쳐 보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가 직접 부딪혀 보게 하면서 내버려 두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을 보니 숙제를 하지 않거나 혼나는 경험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들 말하지만, 행복이의 경우는 조금 달랐어요.
작년, 저희는 행복이가 3학년이었을 때는 숙제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아이가 스스로 학습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조금 거리 두기를 해보려고 했던 거죠. 하지만 그 결과, 행복이는 일 년 내내 숙제를 거의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종종 선생님께 혼나곤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아이에게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했지만, 행복이는 그렇게 크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행복이가 숙제는 최소한 해야 한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죠. 그래서 저희는 행복이의 숙제를 신경 써주기로 했고, 올해 1월부터 정말 작은 부분부터 차근차근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숙제를 하게끔 도와주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주말 내내 두세 번에 걸쳐 숙제를 하며 10분이면 끝낼 것 같은 과제도 하루 종일 걸리게 하곤 했죠. 대부분 숙제를 하지 않는다는 반항 때문입니다. 갑자기 생긴 숙제에 대한 부담으로 아이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신경 쓰며 조금씩 접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1월이 되었고, 이제 행복이는 숙제가 있으면 해야 한다는 걸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부모가 관심을 두고 챙겨줘야 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스스로 숙제를 끝내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그만큼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도 제가 조금만 숙제를 챙기지 않으면 금세 다시 놓아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완전히 스스로 하지는 않지만, 함께하면서 점차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충분히 가치 있는 과정이었다고 느낍니다.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학습 습관이 생길 때까지는 부모가 조금씩 도와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한 한 해였습니다.
공부도 운동처럼 타고난 감각이 중요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운동 감각이 뛰어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감각이 부족한 사람도 건강을 위해 산책이나 기본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는 것처럼, 공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행복이처럼 학습 감각이 아주 뛰어나지 않더라도, 매일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천성이든 환경이든 아이가 쉽게 집중하지 못하고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해서 학습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그 대신, 운동을 시작할 때 기본부터 조금씩 다져가는 것처럼, 행복이에게도 학습을 하나씩 꾸준히 접근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라도 쌓아가다 보면, 그 과정 자체가 행복이에게 좋은 자산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이를 학교에 보내고 퇴근 후, 친구 네이트의 집에서 행복이를 데리고 오게 되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숙제를 잘 제출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죠. 그랬더니 행복이가 "숙제는 다음 주 월요일까지야"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순간 의아해서 "오늘(수요일)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어떻게 다음 주 월요일이야?"라고 되물었어요. 그러자 행복이는 담임 선생님이 아드님을 간병해야 해서 당분간 학교에 나오지 않으신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사정으로 인해 숙제 제출일이 연기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저는 제 성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원래 급한 성격이라 모든 걸 빨리 결정하고, 결과도 신속히 알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무언가를 시작하면 가능한 한 완벽하게, 그리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죠. 그래서 늘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해 왔고, 그동안 그런 점이 일처리에는 도움이 되었다고 느껴왔어요. 그래서 제가 트램 운전도 잘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호주에 와서, 그리고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돼’라는 호주의 느긋한 문화와 부딪히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일례로,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조차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경되는 걸 보면,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어요. 힘들게 숙제를 끝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제출일이 미뤄지는 상황에서는 당혹스럽기도 했고, 제가 익숙하게 생각해 온 ‘정해진 대로’라는 틀이 흔들리는 느낌이었죠.
하지만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모든 걸 빨리 결정하고 결과를 보고 싶어 하는 성격과는 달리, 아이는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더라는 점이죠. 행복이가 스스로 학습에 열정을 갖게 되는 것도, 혼자서 과제를 해내는 자립심을 키워가는 것도, 모두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서두르기보다는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기다려 주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도록 지켜보는 자세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저에게는 기다림의 연습인 셈이죠.
사실, 한 발 물러서서 행복이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마치 운동장에서 뛸 때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성과가 있는 것처럼 느꼈는데, 지금은 때로는 발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돌아보며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합니다. 학습이든, 생활습관이든 모든 걸 하루아침에 변화시키기보다는, 천천히 아이가 자신의 리듬에 맞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지원이라는 걸 느끼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저도 꾸준히 기다리는 인내심을 키우고, 모든 일에 여유를 갖고 접근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숙제 하나로도 조급해했을 일이, 지금은 아이의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계기라는 생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죠. 아이가 서서히 자신만의 리듬으로 학습하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매일 조금씩 더 여유 있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