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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오새별 Aug 14. 2022

나는 죽지는 않으려나 봐요.(II)

그 두번째 이야기

월요일 오후 늦게 외과 교수님을 만나 나의 상태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수술하시려면, 제가 내일 밖에는 시간이 없고, 내일이 안되면 다음 주까지 기다리셨다 시간 조율하셔야 합니다.”

어차피 수술하려고 입원한 거 망설일 여유는 없었다.

“네~ 내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술실이 비는지 확인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뭐가 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정신없이 진행된다.

잠을 잔 듯 안잔 듯 깨어났을 때 수술실 호출이라며. 7시가 되기도 전에 내려가야 한다고 이동형 침대가 내 앞에 와 있었다.

TV에서 보는 그런 배웅은 없었다. 신랑도 나도 갑자기 들이닥친 침대에 당황했고, 친구가 병원으로 오고 있었지만, 만나지 못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 예정 소요 시간은 7시간이었지만, 2시간이 지연돼서 9시간 만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난 긴 잠을 자고 깨어났을 뿐이고, 오롯이 초조와 기다림의 시간을 견딘 건 신랑과 친구였다.   

  


회복실은 너무도 추웠고, 눈을 뜨자마자 처음 내뱉은 말도 “아~ 추워~”였다.

그때 내 손을 잡아주며 “환자분이 깨어나야 하므로 회복실은 춥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겨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남자분이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인지? 간호사 선생님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분 손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이었다.

정신은 깨어났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외과 교수님은 되도록 흉부 절개를 하지 않고, 수술을 진행하겠다 하셨지만, 결국은 절개를 했고 링거 줄부터 시작해 산소호흡기까지 내 몸에 몇 개의 바늘과 줄이 꽂혀있는지 모를 정도를 하고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에 줄은 하나둘 사라졌고, 눕는 듯 앉아서 뭔가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간호사 선생님들과 의사 선생님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라는 방송이 나왔고, 내 침대를 빼서 한쪽으로 가져다 놓고, 내 자리에 심정지 환자가 들어왔다. 나는 더 이상 중환자가 아녔다. 수술 경과를 지켜보는 환자였고, 산소호흡기나 다른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내 자리를 그분께 양보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간호사 선생님은 나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지만, 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그만 먹겠다 했더니 “여기 상황이 좀 그렇죠? 그래도 환자분은 드셔야 합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므로 환자분은 드셔야 회복도 빠르십니다.” 누군가는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데,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먹고 있는 나 자신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그렇게 몇 숟가락을 더 먹고 잠이 들어 그 후론 기억이 없다.


“괜찮아? 아프지 않아?” 신랑의 모습이 보였다. 7층 호흡기 일반 병동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병실에서 이틀 정도는 대부분 누워서 잠을 잤던 것 같다. 그러다 조금 지나니 불편하긴 했지만, 혼자서도 일어날 수 있게 되면서 옆 침대 언니가 자꾸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난 딱히 그러고 싶지 않아 대충 대답만 하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언니는 모든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고,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는 마당발 언니였고, 코미디언보다 유쾌한 사람이었다. 언니의 남편분은 산에서 채취한 더덕을 우유에 갈아서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언니, 나, 그리고 옆방 할머니까지 챙기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부부와 또 다른 인연이 될 줄을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5인실 병동에 내 침대는 창가 쪽으로 여유 공간도 널찍하고, 창밖 풍경도 좋았다. 스위트룸까진 아니어도 비즈니스호텔 정도의 수준은 되는 듯했다. 조식 제공뿐 아니라 삼시세끼를 주고, 새벽에 내 상태를 체크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방문은 있었지만, 자고 싶을 때 자고,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뜨는 호화로운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병실 안은 옆 침대 언니 때문에 늘 웃음으로 넘쳐났고, 나를 친동생처럼 잘 대해줬다. 언니랑 떠들고 웃다 보면, 친구가 커피를 사서 병원으로 거의 매일 놀러 왔었다. 친구가 오면 내가 발견한 나의 아지트인 8층 복도 끝으로 갔고, 그곳은 창틀이 낮게 되어있어, 통창으로 햇살이 잘 들어오며, 산 밑에 작은 마을도 보였다. 안경을 가지고 가면 마당에 묶어놓은 강아지 두 마리도 보이는 평온한 마을이었다. 그곳 창틀에 앉아서 친구랑 2~3시간 수다를 떨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렇게 매일 만나 이야기들 해도 내일이 되면 또 할 이야기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대학도 직장을 다니며 졸업했기 때문에 내 인생에 쉼이란 것이 그때가 처음인 듯했다. 나는 암이라는 안 좋은 일로 입원하게 되었지만, 그 안 좋은 일이 모두 다 나쁜 것만은 아녔다. 단 한순간도 의미없는 순간은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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