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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오새별 Jul 21. 2022

나는 죽지는 않으려나 봐요.

첫 번째 이야기

유난히 날씨가 맑고 화창했던 2016년 가을 어느 날. 가벼운 감기 증세가 있어 내과에 갔다. 회사 앞에도 병원은 있지만, 왠지 오늘은 땡땡이를 하고 싶었다. 괜히 통장을 챙겨서 은행 한 바퀴 돌고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하고 30분을 걸어 건강검진을 했던 내과에 방문했다.     


“왜 이제 오셨어요? 건강검진 결과지 6개월 전에 보내드렸는데... 큰 병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폐에 뭐가 좀 보입니다.”


내가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지엔 2차 검진도 없었고, 수치들도 모두 정상이었다. 다만 ‘폐에 결절이 보이니 확인 바람’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한 줄 멘트만 있었을 뿐이고, 난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니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다

바로 내과 옆 방사선 병원에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소견서와 CD 복사해 드릴 테니 큰 병원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회사 실장님께서 성모병원에서 폐 치료를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분께 살짝 말씀드렸더니 유명한 의사 선생님이니 진료받아보자고 하셔서 바로 다음 날 첫 진료로 예약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교수님 환자가 엄청 많아서 예약해도 1시간 대기는 기본이었는데, 나는 운 좋게 다음날 첫 진료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교수님은 머리가 하얗고, 깡마른 모습에 깐깐한 할아버지 같았다.

가져간 CD를 보신 교수님의 첫마디는

“아침 먹었어요?”

“아뇨, 그냥 왔는데요”

“잘했네요. CT 찍어 봅시다. 뭔가 보이긴 하는데 CT를 봐야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당일 응급 CT로 하면 2~3시간 기다릴 수 있고, CT실 가서 대기하다 찍으시면 됩니다, 찍으시고 시간이 되면 다시 오셨다 가시기 바랍니다.”

CT실 대기 의자에 앉아 초조하면서도 멍한 기분으로 2시간쯤 시간이 흘렀을 때 차례가 되었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부르셔서 내 인생에 첫 번째 CT를 찍었다.

TV에서 가끔 보던 하얀 통 속에 내가 누워있었다.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숨 쉬세요”“숨 참으세요”하는 목소리에 맞춰 잔뜩 긴장한 체 지루하고 긴 시간이 지났다.


CT를 찍고, 호흡기내과 앞으로 갔을 땐 이미 오전 진료가 끝났고, 간호사 선생님만 남아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라도 듣고 가야 하지 않나 싶어 떼를 쓰듯 부탁했지만, 교수님은 이미 나가셨으니 다음 예약된 날에 오라고 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걸어가는데 주차장으로 향하던 교수님과 마주쳤다.

교수님은 나를 알아보시고, CT 찍었냐고? 그러면 다시 진료실로 가자고 하시며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셨다. 꺼진 컴퓨터를 다시 켜고, 차트를 보시더니

“암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는 다음 주 판독 결과가 나오면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닐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별거 아닐 거야? 평소에 사레가 잘 려 잔기침을 좀 하지,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체력은 또 짱이잖아. 괜찮아 별거 아닐 거야!"’


비슷하지만, 지난주와는 분명 다른 일주일이 느리게 흘러갔다.

일주일 뒤 다시 만난 교수님은 폐암이라고 진단하셨다.

“유전인가요?”

“유전은 아닙니다.”

“저 담배도 안 피우는데요?”

“담배 안 피워도 걸리고, 나쁜 짓하지 않아도 걸립니다.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내가 암 선고를 받던 날 아들 녀석은 겨우 4학년이었다. 유전은 아니라는 그 말이 어찌나 감사하고 고맙던지 내가 폐암이라는 사실의 절망보다, 아이에게 영향이 없다는 사실이 더 큰 위안이 되었다.

CT 검사, 조직검사, PET CT 검사... 그리고 보름 만에 수술... 갑작스럽게 회사에 휴직서도 내고, 내 삶의 방향이 파도에 휩쓸려 휘몰아치듯 빠르게 바뀌었고, 모든 일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운명의 신은 아직 내 편이었다.


아무런 자각증세는 없었지만, 사실은 좀 심각했던 것 같다. 내과 교수님, 외과 교수님 두 분 모두 “사이즈는 크지 않은데 위치가 너무 안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느린 듯, 빠른 듯 시간이 흘러 11월 8일 내가 눈을 뜬 곳은 차가운 회복실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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