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5. 카파도키아 2일 차 - 레드 투어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이틀간 잠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몸 상태는 의외로 가볍다. 벌룬 투어는 취소가 되었지만 조금 흐리긴 해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는 아니다. 아무래도 벌룬이 뜰 수도 있는데 취소된 격이라서 조금은 아쉬웠다. J씨는 밤잠도 잘 잔 것 같다. 비행기와 차에서도 그렇고 호텔에서도 잠을 참 잔다. 혹시 내가 잘 때 일어나 있진 않을까 걱정이 돼서 나중에 물어봤지만 잘 잤다고 했다. 하지만 J씨 성격상 잘 자지 못했어도 잘 잤다고 대답할 것 같아서 상태를 잘 지켜보기로 했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와서 전화기를 만지고 있는데 곧 J씨도 일어났다. 간단히 준비하고 아침 식사를 하러 올라갔다.
아침 식사는 고기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터키쉬 베이글, 터키 빵, 바게트로 빵은 세 종류 정도에 각종 잼이 네다섯 가지, 버터 등이 기본적으로 있었다. 괴즐레메, 이름 모를 롤 등 몇 가지 밀가루 음식들이 있었는데 식당에서 사 먹는 맛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치즈는 모차렐라, 페타, 체다 세 종류와 올리브 피클이 세 종류 있었는데 모두 맛이 너무 좋다. 삶은 달걀과 빨간 소시지에 요거트 정도가 단백질이었다. 고기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조차도 나중에 터키식 조식이 익숙해진 다음에는 평균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터키쉬 베이글, 치즈와 토마토가 특히 맛있었다. J씨는 괴즐레메와 롤이 맘에 드는 모양이다. 아침부터 포식을 하고 느긋하게 나머지 준비를 하면서 투어 픽업을 기다렸다.
9시가 되니 정시에 투어 픽업이 와서 따라 나갔다. 오늘을 책임질 레드 투어는 괴레메 근처의 유명 관광지를 한 바퀴 도는 코스였다. 처음 공항에서 타고 올 때와 같은 기종의 벤츠 미니 버스를 타고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메수트라는 이름의 가이드 아저씨는 자기 이름이 축구선수 외질과 이름이 같다고 했다. 카파도키아에 온 것은 인류 문명의 요람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환영한다는 말보다는 잘 돌아왔다는 말이 어울린다는 말을 하면서 그날의 가이드를 시작했는데 가슴에 와닿는 말이었다. 인류의 첫 도시라고 하는 괴페클리 테페부터가 시리아 국경 근처의 터키였고, 밀의 원산지 역시 터키이다. 말 그대로 인류 문명의 고향이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도착한 첫 번째 포인트는 우치사르라는 곳이었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 안쪽으로 동굴을 파서 성을 만들었다. 이미 기원전 히타히트 시대부터 사용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 포스가 느껴진다. 보통은 사람으로 붐비지만 오늘 투어 팀 중에서 맨 처음 와서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다른 버스들이 몰려오면서 붐비기 시작한다. 기념품점 앞에 이쁘게 꾸며놓은 포토 존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DSLR로 찍고 있다. 잠시 후에 살펴보니 출력해서 액자에 넣어서 팔고 있다. 이후에도 많은 관광지에서 이렇게 도촬(?)을 해서 출력해서 기념품을 파는 모습을 봤는데, 심지어 접시에 출력하기도 해서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력을 해서 쓰레기를 만들기보다는 디지털 파일을 싸게 파는 쪽이 좀 더 잘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DSLR 성능과 사진 경험의 문제도 있지만 피사체가 다른 쪽에 집중하고 있는 편이 더 결과가 좋기 때문에 관광객도 좋은 사진을 가져갈 수 있고, 파는 쪽도 좀 더 장사가 잘 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오픈 에어 뮤지엄이라고 하는 곳으로 오랜 기간 교회와 수도원으로 사용되었던 동굴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곳도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고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집중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오랜 이슬람 제국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지배적인 종교였다고 한다. 박해가 있을 때는 숨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 지역이었는데, 터키 독립 전쟁 후 인구 교환 때문에 기독교가 아니라 이슬람교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오픈 에어 뮤지엄은 기본적으로 여러 동굴 성당과 수도원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지역 성인의 이야기나 시대 순에 따른 벽화의 표현 기법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벽화들을 살펴보았다. 다만, 프레스코의 개발 시점을 실제보다 꽤 늦은 10세기경으로 설명했는데, 개발 시점이라기보다는 카파도키아에 전래된 시점이 정확할 것이다. 프레스코 전의 벽화가 그려졌던 벽과 프레스코로 그려진 벽의 모습은 확실히 달랐다. 다른 곳에서는 계란을 많이 쓰는데 이곳에서는 비둘기 알을 쓴다고 한다. 신선하다는 뜻의 프레스코라는 말만큼이나 천년이 넘는 세월이 무색하게 색상이 살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벽화가 훼손되어 있었는데, 특히 눈은 여지없이 사라져 있었다. 메수트가 벽화 훼손의 이유를 설명할 때 이슬람의 우상숭배 금지라는 종교적인 이유를 빼고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동방박사의 방문 같은 장면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사도나 성인 예수의 제자들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보통 들고 있는 상징적인 물건이나 특별한 의상으로 누군지 표시한다고 하는데, 도상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 알 수가 없어서 좀 아쉬웠다.
오픈 에어 뮤지엄에서 투어를 거의 끝내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학생 한 명이 다가온다. 전화기를 내밀면서 뭔가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인 줄 알고 찍어주려고 했으나 아닌 것 같고, 우리를 찍어준 다는 이야긴가 해서 전화기를 내밀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옆에 다른 친구가 영어로 사진을 같이 찍고 싶은 것이라고 해서 왜인지 궁금하긴 했으나 어려운 일은 아니니 사진을 같이 찍어주었다. 그 친구 외에도 여러 명이 번갈아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이때가 처음이었으나 이후로도 수많은 10대 여자아이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나중에는 너무 익숙해서 전화기를 들고 다가와도 포즈를 취하며 웃어줄 정도가 되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좋아서 찍는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에서 환영받는 한국인이라니! 문화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괴레메 입구에 있는 아바노스라는 도시였다. 붉은 도자기 흙이 있는 곳으로 기원전부터 도기와 자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도시 한가운데 있는 언덕을 올라가 동굴에 만들어진 도자기 공방을 방문했다. 히타이트 시절부터 사용하던 어깨에 끼워서 따르는 특별한 형태의 와인 병이 상징적인 상품인 것 같았다. 터키 항공의 홍보 동영상에도 등장했다고 하는 할아버지가 도자기 만들기를 시연해주었는데, 너무 간단히 빚어냈다. 그러려니 하고 보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J씨는 열심히 그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홍보 동영상을 찾았다. 그리고 결국 찾아냈다. 무엇 하나 가볍게 넘어가지 않는 끈질김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그 철저함이 부족해서 마지막 한 걸음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저런 끈질김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뤘을 것 같다. 다만 더 행복했을지는 모르겠다. 시연을 보고 나서는 다양한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을 구경하면서 기념품으로 구매하는 모습을 살펴봤지만 딱히 관심이 갈만한 수준의 물건은 없어 보였다.
점심식사는 뷔페 식이었다. 음식 수준은 평이했으나 사람이 무척 붐벼서 정신은 없었다. 음식 가격은 투어에 포함되어 있지만 음료수는 따로 사서 마시는 구조였다. 콜라가 30리라였는데 사 먹을만해서 하나 주문해서 마셨다. 아침에 부족했던 고기력을 채우려고 괴프테라고 쓰여있지만 실제로는 미트로프 모양의 고기와 닭고기를 잔뜩 먹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기서 열심히 먹지 말고, 나중에 식당에서 더 맛있는 음식을 더 먹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을 먹고 나자 구름으로 가득하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맑아져 있다. 건조한 푸른 하늘에 햇볕이 무척 강하다. 햇볕이 강해서 일까? 기온으로는 20도 초반인데 30도는 족히 넘게 느껴졌다.
다음 목적지는 이메지네이션 밸리였다. 바위만 가득한 광야를 가로지르는 길에 우리 미니밴만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햇볕 덕분에 황량한 풍경이 더 건조하고 척박해 보였다. 가이드 메수트 아저씨가 노래 한곡이면 도착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 관광버스에서나 나올 법한 음악을 틀고 가볍게 어깨춤을 추기 시작한다. 다들 재미있는지 같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제법 흥이 올라서 모두 춤을 춘다. 정신없이 웃었다.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나자 어디서 나타난 건지 신기할 정도로 많이 모여있는 차와 사람들로 이메지네이션 밸리에 도착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주차 장소도 거의 없는데 미니밴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고 관광객이 가득하다. 아이스크림 아저씨는 신이 나서 종을 울리면서 손님들을 농락한다. 아마 터키쉬 아이스크림 장사에 걸맞은 성격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선을 타는 적절한 장난기와 적절한 네고 능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라면 먹고살기도 어려울 직업 같다.
기암괴석이 모여있어 이메지네이션 밸리라고 부르는 곳에는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서 있다. 상상력이 필요해서 상상력 계곡일까? 메수트가 설명해주는 닮았다는 동물들과 바위의 모습을 매칭 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메수트는 이메지네이션 밸리는 붐비기도 하고 여기보다는 페어리 침니가 훨씬 더 좋은 곳이니 빨리 이동하자고 한다. 10분간의 자유시간 동안 J씨와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조금 걸었다. 바위 가운데 계곡에 물이 약간 흐르고 풀이 자라고 있었다. 그 사이에 큰 강아지가 누워 있었다. 터키의 들개와 길고양이는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다가가서 만지려고 하면 귀찮다는 듯이 살짝 피하는 정도였다. 좌우에 있는 기암괴석보다 왠지 이 가운데 손바닥 만한 초원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부족함이 소중함을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다음으로 페어리 침니에 들어서면서 메수트가 이곳이 오픈 에어 뮤지엄만큼 사람이 붐벼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거의 우리 팀 밖에 없다. 우연일까? 아니면 노련한 가이드 아저씨의 노련한 타이밍 조절이었을까? 확실히 이메지네이션 밸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절경이었다. 침니 지형이라고 하지만 페니스가 떠오르는 모양의 기둥이 잔뜩 있고 옛날에 동굴집으로 사용했던 흔적들도 많이 보였다. 작은 계곡들이 몇 개 있고 각각의 계곡 안에는 서로 다른 분위기의 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날씨가 무척 좋아서 사진이 잘 나왔다. 게다가 거의 우리 팀 밖에 없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둘러보았다. 한편에는 큰 돔을 반으로 잘라놓은 것 같은 지형에 물이 흘러내린 듯한 흔적이 있었는데, 이곳의 지형이 물의 침식으로 생겼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생긴 지형이었다. 주차장 바로 옆에는 침니 지형을 깎아 만든 동굴 건물 안에 작은 경찰서가 있었는데 꽤나 귀엽게 보였다.
오늘 투어의 마지막 포인트는 어제 방문했던 러브 밸리였다. 어제는 조금 흐려서 살짝 어두운 분위기였는데, 역시 햇볕 아래서 보니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어제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멀리 서있는 눈 덮인 산도 보였다. 어제 구경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햇볕이 너무 강해서 조금 구경하고 나서는 더워서 그늘에 숨어 있었다. 그늘에 숨어 있는데 작은 고양이가 눈에 띈다. 귀엽게 생겨서 그런지 J씨가 열심히 다가가서 친한 척을 해본다. 하지만 우리에겐 츄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귀찮다는 듯이 자리를 피했다.
만족스러운 레드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 벌룬 투어를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하루 더 묵을 수 있는 곳을 검색했다. 몇몇 옵션이 눈에 들어왔지만 만족스러운 호텔이니 만큼 하루 더 묵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다행히 방이 있어서 하루 더 묵을 수 있다고 한다. 다만, 한층 아래로 이동해야 한다고 하는데 짐을 옮겨준다고 하니 별 문제는 없었다. 날씨 때문에 고민하던 레드 투어를 오늘 마쳤으니 내일 바로 그린투어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약을 부탁했다. 좀 까칠하던 동생 겐차이와 달리 형은 항상 능글맞은 목소리로 오케이를 말한다. 체계화된 서비스는 없지만 호스피탈리티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방금 전 페어리 침니에서의 뜨거웠던 햇볕이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치고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데 갑자기 빗소리가 다르게 느껴져서 창밖을 바라보니 우박이 내리고 있었다. 길고양이들이 쏟아지는 우박을 피해서 집 처마 밑에서 숨어 있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우울한 아침에서 타는 듯한 햇볕의 오후를 거쳐서 지금은 우박이 내리다니 터키의 봄 날씨도 한국의 봄 날씨처럼 변덕스러웠다.
우박 구경을 끝내고 전날 가격 차이 때문에 놀란 것이 떠올라서 주변 식당 가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메뉴판 사진 등을 시간 순서 등으로 정렬해서 보니 가격 변화가 꽤 심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5배는 기본이고, 2배 정도 차이나는 식당도 많았다. 확실히 환율이 급격히 변하고 그 여파가 물가에 최근에 적용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았다. 이 인플레를 직접 경험하는 터키인들은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격에 대해서는 더 이상 크게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CANCAN이라는 식당이 1000개 이상의 리뷰에 평점이 4.9라서 방문하기로 했다.
식당으로 향하는데 비가 내린다. 어제 왔던 통신사 대리점 옆에 있는 식당이었다. 어제는 꽤 먼 거리를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까웠다. 아마 어제는 그만큼 피곤해서 멀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메뉴를 고르는데 J씨가 적극적이지 않다. 아마도 점심이 아직 소화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간단한 메뉴 두 개만 주문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터키어로는 만티, 영어로는 라비올리라고 하는데, 사진 상으로는 소스만 보이는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다양한 고기를 경험하기 위해서 믹스드 케밥을 주문했다. 만티에 대해서 맵고 마늘 맛이 강하다는 설명을 하면서 괜찮겠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마늘과 매운맛 사랑이라면 어디 가도 지지 않을 한국인 아닌가? 우리는 한국인이니 전혀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메뉴판에서 콜라를 발견하고 12리라로 꽤 저렴해서 하나 주문했다. 이때부터였을까? 식당의 가격 수준을 콜라 가격으로 비교하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4리라였던 콜라는 식당에서 8리라에서 40리라까지 가격이 다양했는데 식당의 가격 지표가 되기 좋은 아이템이었던 것 같다.
음식을 주문하고 앉아있는데 빗속을 뚫고 고양이가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한국 같으면 고양이가 사람을 피할 법도 한데, 자기 집처럼 들어와서 비를 피하고 앉아있는 것 같았다. 순찰이라도 돌듯이 테이블 사이를 한 바퀴 도는 것이 다시 보니 비를 피한다기보다는 음식을 탐하는 것 같았다. J씨는 음식을 주고 싶은 눈치였지만 줘도 될지 몰라서 주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간 돌더니 아무도 반응이 없자 식당 밖으로 나갔다. 자기 집 드나들듯이 오고 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곧 기본 음식으로 렌틸 수프, 바게트 빵과 함께 요거트 소스, 으깬 감자조림이 깔린다. 빵 위에 발라 먹는데 참 맛있다. 사실 이 기본 메뉴만 먹어도 먹고 사는 데는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 빵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만티가 나왔다. 손톱만 한 작은 사이즈의 만두가 요거트 소스 안에 들어있었다. 소스 위에는 마늘가루와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는데, 한국인에겐 전혀 자극적인 맛이 아니었다. 다만, 요거트 소스 맛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J씨도 직접 그릭요거트를 해서 즐겨 먹기도 했던 만큼 나도 요거트를 정말 좋아한다. 시큼한 요거트가 식욕을 돋워 주었다. 이어서 서빙된 믹스드 케밥은 고기가 모두 절묘하게 구워져 있다. 간 소고기로 만든 퀘프테(미트볼)와 아다나 케밥, 닭 가슴살 구이, 윙, 양고기까지 부족함 없는 양념에 불맛이 적절하게 나도록 구워져 있었다. 이후로도 자주 먹게 될 구운 오이 고추와 구운 토마토와 함께 무척 맛있게 먹었다. 양자체가 특별히 많은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처음부터 요거트 소스에 빵을 잔뜩 먹었다는 것이다. 음식을 다 끝내는 것이 조금 버거울 정도로 배가 불렀다. 배가 불러올 무렵 쉬크하게 점원이 올라와서 애플티와 생수를 두고 간다.
계산을 하려는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한다. 아래층에 내려가자 주방을 보고 있던 할머니가 와서 계산을 받아주신다. 얼굴부터가 서빙하던 남자아이, 여자아이의 할머니 같아 보였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터키가 한국보다 가족 간의 유대가 강하다고 한다. 터키 여행을 하면서 계속 보게 될 패밀리 비즈니스였다. 아니, 이스탄불에 갈 때 까지는 패밀리 비즈니스가 아닌 식당이나 호텔이 오히려 드물었다.
계산을 마치가 나오자 비는 그쳤고, 해는 완전히 져있다. 다시 천천히 호텔 방으로 돌아오면서 슈퍼마켓에 들러서 생수 구매했다. 빵 가격을 보고 눈을 의심했는데, 커다란 바게트 하나가 3리라~5리라 수준이었다. 3,25 등으로 쓰여있어서 325인가 잠깐 생각했지만 그렇게 보기엔 3만 원 수준이라서 300원~500원이라는 의미 같았다. 아마 기본으로 깔리는 빵이 이 가격이니까 그렇게 인심 좋게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라도 4리라로 400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는데, 아쉽게도 그날은 재고가 없었다.
아까 우박도 내리고 비도 와서 내일 벌룬 투어가 조금은 걱정이었는데, 여행사에서 확정이라고 연락이 왔다. 부디 날씨가 좋으면 좋겠다. 내일 벌룬 투어를 위해서는 5시에는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자려고 생각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9시가 다 되어간다. 씻자마자 시차적응을 위한 멜라토닌과 함께 수면제 대용으로 항히스타민제를 먹었다. 오늘도 약 덕분인지 꽉 찬 하루 덕분인지 별로 뒤척이지 않고 바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