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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Sep 29. 2023

올해도 결국 차례를 지냈다

"이번 추석에도 차례 지내?"

"간소하게 차려...... 주, 과 포만 놓으면 되지 뭐"

"황금연휴라고 다들 해외여행 가던데......"

어차피 큰 기대를 갖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을 뿐.

"그래, 올해는 더 간소하게 지내야지" 중얼거리며 인터넷에 올라온 성균관 차례상 도열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이내 사과, 배, 대추, 밤과 동태포, 송편..... 하나씩 품목을 헤아려본다. 산적대신 갈비를 올리고 이번부터는 전과 나물도 생략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매년 명절 전날 남편과 장을 보러 갔지만 올해는 시간 절약도 할 겸 퇴근길에 혼자 마트로 향했다. 차례를 안 지내는 집이 많다고 해도 명절은 명절이라 제법 사람이 많다. 하나로마트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어 몇 바퀴를 돌아야 했고 카트를 밀고 다니는데도 주의가 필요했다. 집에 있는 품목을 헤아리며 고사리, 숙주, 명태포 등 메모지에 적혀있는 것들을 고르고 나니 잊고 있던 조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도 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은 카트에 담고 만다. 코로나 이후 시누이들이 시댁에 미리 다녀가면서 갈비의 양이 절반으로 줄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더 줄여야겠다는 것은 마음뿐 결국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시댁의 제사는 일 년에 총 차례 포함 8번이었다. 증조부, 증조모, 조부와 조모, 시아버지 기일에 양 명절과 3월에 지내는 시사차례까지. 다행스럽게 음식 가짓수가 많지 않아서 번잡하지는 않았지만 소요되는 시간만 다를 뿐 신경이 쓰이는 건 비슷하다. 내가 안 하면 대타를 쳐 줄 며느리도 없으니 선택하거나 고민할 여지 또한 없었다. 그렇게 30여 년이 지나면서 횟수는 자연스레 줄었고 부담 또한 예전보다 많이 가벼워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명절이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가방을 들고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상황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시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제사에 대해 관대하다. 정성과 마음이 중요할 뿐 절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 대목에는 나 또한 동감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감하게 건너뛰는 것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 차이일 뿐. 매번 더 줄여야지 하고 마음먹어보지만 정작 상을 차려놓고 보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말로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이제 달라지고 싶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오전 7시쯤 일어나 차례 준비를 시작한다. 햅쌀로 밥을 안치고 과일을 씻고 전과 송편과 갈비를 접시에 담아낸다. 아이들은 익숙한 자세로 목기를 닦는다. 그렇게 한 시간 여가 지나서 남편이 음식 도열을 마치고 국과 밥을 뜨고 나면 준비 완료. 단란한 네 가족이 절을 하고 교대로 술을 따르고 올해도 이렇게 차례를 마무리했다. 달라진 것은 산적 대신 갈비찜을 올렸다는 것. 전과 나물도 그대로 제자리를 지켰다.


올해 명절은 대체휴일까지 무려 6일. 아마도 3일은 차례 모시고 친정에 다녀오는 일정으로 채워질 것이고 그럼 나머지 3일은?  머릿속은 다사다난하지만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다. 어딜 가도 차가 밀리고 복잡할 것이라는 계산에 엄두가 안 나고 연휴에도 비상근무를 하는 직원들의 노고가 마음 쓰이는 탓이다. 그렇게 벌써 연휴 이틀이 주춤거리며 떠나가는 중이다. 종갓집 장손 며느리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는 한 명절에 치러야 할 관행에서 벗어나기는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좀 더 간소하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겪어내길 바랄 뿐. 


이른 아침 함께 차례를 지낸 가족들이 휴식 모드에 들어갔다가 다시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어제오늘 그동안 번잡한 일들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책에 눈이 머물기 시작했다. 반가운 일이다. 어제 낭독에 관한 책 한 권을 후다닥 읽어냈고 오늘 아침부터는 정지아 작가의 신간 산문집을 읽기 시작했다. 나와는 상극인 술에 대한 예찬론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술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진솔한 삶이 그림처럼 그려져 자꾸 손이 간다. 올해도 결국 나는 차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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