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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17. 2023

아모르파티!

"제발 그런 말 하지 마요....." 이제 교육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앳되게 보이는 총무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써 참고 있지만 아마도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입교한 교육이 이제 하루를 남겨두고 있다. 마지막 수업은 "고전으로 배우는 삶의 지혜". 상상과 달리 변화무쌍한 강사의 첫마디부터 기대감이 급상승한다. 나이에 비해 조로해 보인다는 서두에 이어 던지는 화두는 바로 "아모르파티". 


단어를 듣자마자 가수 김연자의 노래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60대가 넘은 나이지만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곡이라고 한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사랑받는 노래라고만 여겼는데 새삼 그 단어의 의미가 가슴에 훅 스며든다.


"아모르파티"는 "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설명하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용어로 말 그대로 "운명애"라고 한다. 니체에 따르면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고통스럽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체념하는 수동적인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아모르파티'는 고난과 어려움까지 받아들이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이다.


살면서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잘될 거야" 자기 주문을 걸곤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일들도 매번 잘 해결되었다. 조금이라도 나쁘거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고개를 들 때마다 좋은 생각으로 채우는 것이 효험이 있었던 것이다. 니체의 말 또한 그런 의미가 아닐까. 어차피 내 몫의 고통이라면 잘 견뎌내고 이겨내려고 노력하라. 그 바탕에는 내 운명과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있어야 한다. 그 마음이 없다면 지난한 시간들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세상은 왜 이렇게 나에게만 시련을 줄까. 왜 나는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모자랄까라는 자기 비하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 자체로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없다면 세상 또한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희망을 꿈꾸지 않는다면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한 암흑세계일 뿐이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교대를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 도전하고 노력한 끝에 50대에 교수의 꿈을 이뤘다는 60대 중반 교수의 강의가  이어지고 있다. 코믹한 신파조의 어투지만 내용은 매우 진지하고 삶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원하는 대로 탄탄대로를 이어온 금수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 사실감 있고 더 공감되는 바가 크다. 단지 어렵고 지난했던 삶의 과정보다 생에 대한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을 얼마나 사랑하며 살고 있을까. 작은 돌부리에도 세상 고난 모두 짊어진 것처럼 괴로워하고 불평불만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상 전부를 다 잃은 것처럼 지레 포기하거나 절망하지는 않았던가.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수용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다른 사람의 삶만 부러워하고 시기하지는 않았던가.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음악목록을 선택하고 차량 계기판의 미디어버튼을 누른다. 볼륨은 운전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최대한 크게 높인다. 오늘따라 5주 넘게 오가던 국도가 편안하다. 피곤하다고만 여겼던 시간이 애틋하고 아쉽다. 그렇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행복해야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 보면 행복해진다. 진부한 말인 듯싶지만 반백년을 살아본 경험치에 비춰보면 진리 중에 진리이.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며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삶. 가슴 벅차고 떨리는 그 무엇을 위해 즐길 줄 아는 순간으로 채워나가길 바란다.

 

'이가 든다는 것은 기다리고 있던 슬픔을 순서대로 만나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보다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중략)

강사가 진지하게 읊조리는 김재진의 시 '나이'를 옮겨보며 찬란한 하루를 벅차게 끌어안는다.

"아모르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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