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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14. 2024

아프니까 50대다

사무실에 딸려있는 화장실 근처에서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들려온다. 아이고 하는 동료의 신음소리에 이어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 목소리. 화장실에서 나오다 둘이 부딪친 모양인데 여자 동료의 울음으로 이어진다. 오십견을 앓고 있는 50대 그녀의 어깨를 건드린 모양인데 충격이 꽤 심했던지 눈물까지 흘리고 다른 직원이 나서 한참 마사지를 한 후에야 자리에 와서 앉는다. 어깨뿐 아니라 그녀는 오른쪽 손목에도 보호대를 하고 다닌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50대 그녀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음식도 제법 가려서 먹는다. 좋은 것만 골라 먹는다는 말에 여기저기 안 좋은 데가 많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아픈 이들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얼마 전까지 같은 부서에 있던 그녀는 지금 병가 중이다. 오래도록 아팠지만 잘 버텨내 복직했는데 병이 다시 재발했다고 한다. 그녀가 간절한 표정으로 했던 말은 우리가 늘 흔히 하는 "건강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였다.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지만 정작 본인에게 닥치기 전까지 우리는 이 말을 간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본인이 평소에 먹는 음식들이 나를 만든다는 말을 숱하게 듣지만 달짝지근한 음식이나 밀가루, 빵, 튀김 종류의 음식을 멀리하기는 쉽지 않다. 핑계를 대자면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는 것. 이것은 이래서 저것은 저래서 안 먹는다는 말을 하면 이내 동료들의 눈초리가 호기심으로 가득 찬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가. 많이 안좋은 건가 하고 말이다. 변명이 싫어서 마지못해 먹는 경우도 있다.


3년여 동안 식단관리에 열심이었다. 좋아하는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려고 애쓰고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야채류를 가까이하려 노력했다. 못 먹는 음식이라 여겼던 마늘과 파, 양파를 먹기 시작했고 밀가루음식도 되도록이면 먹지 않았다. 결과는 몸이 가벼워지고 조금 건강해졌다는 것. 하지만 이 결심이 무너지는 건 너무 쉬웠다. 이제 습관이 되었으니 조금 허술해져도 이제 살은 찌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감도 있었다. 억지로 참았던 식욕은 장마철 봇둑 터지듯 금세 무너지고 말았다.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기다림은 불안을 낳는다. 특히 병원과 연관된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나쁜 결과가 나올 확률이 비록 1%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그 결과가 주어진다면 100%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미리 결과를 예측하고 걱정하는 유형은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마음 한 편에는 일말의 작은 불안감이 내내 그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여차하면 금세 뿌리를 내리고 마음 전체로 뻗어갈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만큼 미련한 일은 없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유혹에 빠져 허우적거린 결과일까 싶어 후회가 앞서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감당해야 한다. 요즘 아침식사는 건강 해독 주스이다. 야채를 준비하고 데치는 과정이 번거롭지만 조금 귀찮은 과정 덕분에 몸이 조금 가벼워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면 충분히 견뎌낼 이유가 된다. 아침마다 복약 알람이 울리면 약을 먹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받고 결과를 들을 때까지 불안에 떨면서 지낸다. 조금이나마 덜 불안하고 싶다면 평소의 건강습관이 필수다. 너무 당연한 논리지만 왜 이리 어려운지. 


이제 나이는 오십 대 중반에 이르렀다.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해도 하나도 이상할 없는 나이임에 분명하다. 내가 애용하는 차와 비교한다면 50년 넘게 사용하고도 모든 곳이 온전하길 바라는 자체가 도둑놈 심보일 것이다. 어제는 골감소증 처방을 받아왔다. 두어 달에 한번 가는 일정도 귀찮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얼마 전에 건강공단에서 검진 문자도 과제로 남아있고 다른 검진 일정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를 기다릴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있는 것은 평소에 건강하게 먹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일 것이다. 


비가 내려 종일 꼼짝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책을 붙들고 있다 보니 자꾸 잠이 쏟아진다. 커피를 내려달라는 주문에 남편은 몸에 안 좋다며 울금차를 먹으라고 말하지만 끝내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고야 만다. 머릿속 이성과 마음이 서로 나를 시험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쉽지 않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순간마다 참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프니까 50대지만 조금이나마 가볍게 덜 힘들게 그 터널을 지나고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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