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양배추, 당근, 토마토를 15분쯤 쪄낸다. 쪄낸 야채를 식힌 후 사과와 바나나를 넣고 믹서기에 곱게 갈아준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한 레시피임에도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은 쉽지 않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다. 좋은 음식을 먹는 일이 결국 내 건강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만한 수고쯤은 아주 하찮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난 주말 고등학교 총동문회에서 주관한 해안 숲길 트래킹에 참가했다. 매년 등산으로 진행하다가 1회 선배님들을 배려해 어느 순간 야트막한 둘레길을 거쳐 올해는 해안 트래킹으로 이뤄진 행사다. 그 모임에 갈 때마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 선배 한 명을 만난다. 화학을 전공한 그분은 나보다 2년 선배다. 대학 졸업 후 연구소에 다녔다는 선배는 10여 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 퇴직 후 귀농해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특히 건강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아 몸소 실천은 물론 관련 유튜브를 운영할 뿐 아니라 동문회 밴드에도 건강정보를 가끔 공유한다. 선배가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내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일단 악수했을 때 손이 차갑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체온이 낮다는 것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는 장황한 설명과 함께 만날 때마다 건강법에 대한 조언이 되풀이된다. 한때는 그 충고 덕분에 우렁농법으로 지은 유기농 현미를 구입해 밥을 해 먹은 적도 있다. 이번에 권유하는 것은 건강보조식품이다. 건강에 관심을 갖다가 접하게 된 독일제품이라며 관광버스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나에게 주스를 건넨다. 건강식품이니 몸에 나쁠 것은 없겠다는 판단하에 나란히 주스를 나눠 마셨다. 난 귀와 뒤쪽 머리 부근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고 후끈 열이 난다. 친구는 한술 더 떠 멀미 증상을 호소한다. 선배 말에 따르면 친구의 경우 위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무튼 그 주스를 마셨을 때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 부위에 염증이 있다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30여분 넘게 그 제품과 회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반응이 시큰둥했던지 선배가 앞자리로 옮겨갔다.
귀가 얇은 나는 듣는 내내 반신반의했지만 선배가 자리를 떠난 후 바로 인터넷 검색에 돌입했다. 염증에 좋을 뿐 아니라 카페인 성분이 있어 생활에 활력을 더해주고 장 운동에도 도움이 되니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다는 글들이 여러 개 올라와 있다. 선배가 설명하면서 보여준 체험사례 사진들도 떠올랐다. 여드름이 다 없어졌고 탈모 증상도 완화되고 무려 복용 후에 10kg 정도 감량한 이들이라고 한다. 내가 잘 아는 후배 한 명도 그 사례자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마음이 조금 더 흔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참 검색을 하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결정한 것이 몇 달 전에 시도했다 귀찮아서 바로 포기했던 해독주스요법.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떠올리며 트래킹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바로 마트에 들러 토마토와 양배추를 구입했다. 귀차니즘에 마음이 변할까 싶어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자마자 주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의 해독주스 요법은 다시 시작되었고 오늘로 3일 차를 맞았다.
내 몸은 내가 먹는 음식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그만큼 연관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다이어트를 하거나 다양한 영양제를 복용하고 때로는 해독주스까지 만들어 먹는 정성을 들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건강에 대해서는 어떨까. 나의 경우를 돌아보면 눈에 보이는 몸에 대해서는 제법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마음에 대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심하거나 모른척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편두통에 시달릴 정도의 심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면서도 해독이라는 처방을 내릴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선배 덕분에 다시 시작한 해독주스요법이 얼마동안이나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상태로는 속도 편안하고 몸도 가벼워지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이제 몸에 이어 내 마음의 해독에 대해서도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