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7살의 꼬맹이들을 데리고 한 달이라는 자유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건 8년 전이었다.
늘 머리로만 꿈꾸던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는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우린 많은 걸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동시에 육아휴직을 선택하며 잠시 일을 접고, 은행에서 빚지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와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까봐! 그 당시 내가 하던 생각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에겐,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나라가 정해졌다.
지상에 남은 마지막 천국, 뉴질랜드!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듯이 그해 겨울은 유난히 조용히 지낸 우리 부부는, 우리들만의 특별한 봄을 꿈꾸며 많은 준비로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하염없이 근거 없는 확신을 가졌다. 보이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떤 이는 미쳤다고 비난했고,
어떤 이는 용감하다 응원했다.
맞다. 사실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미쳤다고도 생각했고, 용감하다고도 생각했다. 그곳에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언어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여행의 경험이 많았던 것도, 돈과 시간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기대해서도,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때가 아니면 또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돌아보니 역시 참 잘했구나 싶다. 무식해서 용감하고, 그래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시절...
그 시절 나의 일기를 꺼내 보면 언제든 그 느낌을 소환해낼 수 있어서 참 좋다.
가끔 현실에 지쳐 다 내려놓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싶을 때, 일에 치이고, 사람에 상처받은 나에게 그 시절의 회상은 빛바랜 낡은 사진일지언정 언제나 나를 다시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갑작스레 찾아온 사춘기에 방황하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조급해진 엄마의 타들어가는 속은 그때 그 시절 꼬맹이들에 대한 추억으로 그 불씨를 끌 수 있으니 다행이다.
무료한 일상이 싫어 훌쩍 떠나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때, 술 한잔 마셔 조금 늘어져도 좋을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이면 나는 나의 지난 일기를 다시 들춰보며 그 옛날 그곳을 여행한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흐르면, 그때의 그 용기로 다시금 떠날 수 있을까?막막한 나에게 그 옛날 무모한 도전은언젠가 또다시 기회가 올 거라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참 고맙다.
마음이 울적하고, 삶이 고단하고, 행복의 의미가 자꾸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뭘 해도 안 되고, 뭐든지 두려워질 때 가끔은 무식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