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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ul 08. 2022

다꺼행_ 2화. 여행의 본전

유아 동반 가족 여행자의 마음가짐

5살, 7살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며 여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린 두 녀석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챙기다 보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했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떠나야 한다.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진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니 어린아이와 여행을 계획한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떠나는 것이 좋겠다. 비싸게  끊은 비행기표를 포함한 만만치 않게 드는 여행경비의 본전이 생각나서 자꾸 아이를 재촉하는 일은 애초에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을 계획할 당시의 초심을 잊지 말고, 항상 여유를 가지고 1~2일이면 돌아볼 마을도 3~4일에 나누어 동선을 짜고, 이제 막 동튼 새벽부터 나갈 생각일랑 묻어두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간식 챙겨 나갈 각오라면 괜찮은 마음가짐인 듯하다.


귀가 역시 마찬가지다. 깜깜한 밤에 별 보고 들어오는 거 대신 어스름 해가 뉘엿뉘엿 지는 노을 보며 들어와 씻겨 놓고, 깜깜한 밤하늘의 별을 세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일정이 훨씬 더 현명하다. 뉴질랜드 일정의 대부분도 그랬다. 아이들은 대체로 늦잠을 잤고, 밖에 나가면 어린아이들 입맛에 맞는 거라고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초콜릿이나 젤리뿐일 게 뻔하니 하다못해 누룽지라도 끓여서 먹이고 나가야 마음이 편했다. 가만두면 12시까지도 잘 아이들을 늦어도 10시쯤엔 깨워서 씻기고, 아침 간단히 먹이고, 양치시키고, 옷 갈아입히면 빠르면 11시, 늦으면 12시다. 그 후에 나를 준비하면 너무 늦으니 나는 전날 취침 시각에 상관없이 일찍 일어나 나를 좀 챙기고, 뭐라도 먹고 나서 밀린 설거지를 하거나 짐을 정리하고, 커피 한잔 마시며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를 좀 챙겨주고, 나의 일기를 쓰거나 했다.     


그렇게 여유가 흘러넘치는 아침을 보내고 일단 집을 나오면 좀 바쁘게 돌아다녀도 될까? 그마저도 아니다. 특별히 예약을 해 놓았거나 운영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꼭 맞춰서 들어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면 역시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곳으로 돌아다니기가 일쑤였다. 어린이 놀이터는 보이면 일단 직행했고, 호수 주변에 돗자리 깔고 자리에 앉으면 기본 3시간이었다. 30분 걸을 곳을 1시간이 넘게 걸어야 하고, 그곳에 숲이라면 더 걸리기도 했다. 나뭇가지를 찾아 칼싸움도 해야 하고, 줄지어 지나가는 뉴질랜드 개미도 봐야 하고, 흔적을 남기길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사진모델도 좀 해주려면 시간이 여간 많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5시쯤 되면 일단 귀가다. 해가 살짝 넘어가는 중이라 아직도 밖은 훤하지만 한참 뜨거운 햇살은 아니라 어쩌면 지금부터 관광하기 딱 좋은 시간 즈음에, 우리는  펼쳐 놓았던 짐을 다시 정리하고 장을 보러 마트에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은 또 숙소에서 해 먹어야 하니까. 식당에 들어가 한 끼 사 먹고 들어오면 참 편하고 좋으련만, 우리는 꼭  장을 봐와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술 한잔하기는 여행 중 남편이 가장 애정 하는 일 중 하나인데, 술을 먹고 운전을 할 수 없으니 우리는 꼭 저녁은 집에서 먹었다. 그래야 늘 여행 스케줄 짜고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남편도 편하게 술 한잔 기울이고, 아이들은 씻겨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혀 놓으면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었다. 집이든 숙소든 밥을 해 먹는다는 게 엄마는 아무래도 귀찮지만, 요리의 상당 부분을 남편이 도와주는 데다가 여행경비가 많이 줄어드니 그리 나쁜 장사는 아니었다.


저녁의 대부분은 고기를 먹었다. 남편은 평소에도 고기를 매일 먹어도 괜찮은 사람 지만 난 아니었다. 고기를 많이 좋아하지 않은 나는 매일 먹는 건 좀 힘든 사람인데 여행 중엔 참 많이도 먹었던 것 같다. 일단 고기가 한국에 비하면 많이 저렴하고,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으니 좋은 요리 재료임은 확실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맛이 아주 훌륭했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청정지역의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자유롭게 향유하는 행복한 소들이라서 그런가? 그런 행복한 소고기의 맛은 며칠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담백하고 고소하고 든든했다. 그러다 소고기 살짝 지겨워지면 양고기를 먹기도 했다. 게다가 와인 한잔을 곁들이면 여느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가 남부럽지 않을 만큼 훌륭한 저녁 식사가 되었다. 디저트도 훌륭하다. 아이들 비타민 보충시킨다고 마트 가면 제일 먼저 찾는 게 과일이었고 사과, 바나나, 키위, 오렌지, 포도 등의 과일은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들였다. 여행 중에 수시로 먹이며 비타민을 보충시켰다.


그래도 그렇지! (물론 저렴한 비행기표를 끊겠다고 경유까지 했지만, 나름) 비싼 돈 들여 비행기표를 끊고,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에 왔는데, 평균적으로 10시 기상, 11시 외출 시작, 5시 귀가라니. 이 계산이면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려 18시간이었다. 물론 그날의 일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여행의 본전을 두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제대로 효율성 떨어지는 시간표다. '애들 어릴 때 여행 가면 기억도 못하고, 이것저것 보지도 못하고 돈 아까워~!' 소리가 절로 나올 법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넘쳐나는 돈이 주체가  안 되어 떠나온 사람들이 아니었고, 그 시간을 돈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하는지의 기로에 서서 엄청나게 고민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다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우리 부부는 항상 습관처럼 대뇌 었다. ‘우리는 지금 아이와 함께다.’, ‘아이가 아프면 여행은 중단된다.’, ‘욕심내지 말자.’, ‘항상 쉬어가자.’라며 일정에 욕심내는 우리를 다독였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계속해서 떠올리다 보면 괜찮아졌다. 욕심도 다스릴 수 있었고, 본전 생각도 쉬이 떨쳐졌다. 그래! 우리가 멀리 떠나 온 이유는 분명 있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지금이 때인 것 같아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허무하게 떠나보내고 눈앞에서 놓쳤다고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서 시작했던 우리의 여행이었다.

그때 그 시절의 용기가 지금도 나에게 있다면, Right now!! I can do it, 뭔들 못할까?!

오래되어 흐릿해진 기억 속의 추억여행을 시작하며, 나는 다시 한번 나를 위한 꿈을 꾸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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