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돈이 안 되잖아요"
제가 고등학생 때 애용했던 어플인데, 혹시 '씀'이라는 어플을 아는 분이 계실까요? 댓글과 좋아요 기능이 없지만 담아 가기 기능은 있는 글쓰기 어플입니다. 제가 쓴 글들을 많은 사람들이 담아 갈 때 오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냥 제 심정을 적은 것뿐인데 사람들이 제 글에 공감하며 글을 담아 가는 것이 놀라웠거든요. 어쩌면 나 글에 소질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입시 준비할 때도 논술 시간이 제일 즐거웠습니다. 물론 논술 전형은 모두 불합격했지만 말입니다. 철학과 시험을 볼 때도 암기식보단 논술형 문제가 편했습니다. 말보단 글이 편하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글로 밥 벌어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매번 어느 형태의 글을 쓰면서도, 그 일이 내 직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두 개 정도 일화가 떠오르는데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모 대학의 국문과 수시 면접에서 면접관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었습니다. "학생이 해온 일이나 읽어온 책들을 보면 기자보단 작가가 어울리는 것 같은데, 왜 진로를 기자로 적어 냈느냐?" 만일 지금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더라면 적절한 거짓말을 보태 가며 상대방을 설득시킬 자신이 있습니다만, 그 당시의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너무 순수한 학생이었습니다. "작가는 돈이 안 되잖아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대로 불합격이었습니다.
조금 더 과거로 가면 어느 봄날의 나무 한 그루가 떠오릅니다. 아마 아버지의 고향에 함께 내려갔던 유년기로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대학 가서 공부한다는 애들이 정작 고향 돌아오면 농사 일은 안 도와주고 나무 밑에서 사색의 시간이나 갖더라." 맞는 말이었습니다. 평생 시원한 곳에 편하게 앉아 세상 물정 모르고 글이나 쓰는 한량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줄곧 돈이 될 만한 무언가를 병행해 왔습니다. 누구는 저를 회장으로, 누구는 저를 근로학생으로, 누구는 저를 아르바이트생으로, 또 누구는 저를 PM으로 기억하겠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 항상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놓지 못한 갈망과도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작가, 안정된 수입 이들의 관계는 제게 아주 오랜 과업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풀지 못했습니다. 계속 직진 중이지만 막연한 방향성은 없는 상태입니다. 진로 상담을 받을 때 제가 유독 말수가 없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늘 글을 쓰고 싶어 했는데, 스스로가 작가라는 업을 부정하며 살았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제 미래를 모르겠습니다. 안정된 수입이 있는 작가, 이것은 너무나도 모순된 표현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뭐라도 해봐야지, 뭐라도 하면 다 경험이겠지"라는 말을 계시처럼 안고 살았습니다. 마음먹고 시를 써본 게 올해 봄부터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이 있었습니다. 결국 본질적으로 글은 이야기이고, 좋은 이야기는 나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나의 밖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잘 쓰기 위해선 많이 관찰하고 대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사람을 놓지 못하는 게 비극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사회성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세계를 안고 사는 것이고, 제가 당신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건 말 그대로 정말 탐험과도 같은 일이니깐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탐험은 자신의 사유 너머의 세계를 가늠하는 일입니다. 제게 무수히 많은 영감을 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시간 동안 많이 아팠습니다. 아플 때 글을 쓰기로 다짐했는데, 글을 쓰면서 더 아파졌습니다. 나의 바깥세상을 관찰하고 고민하는 일은, 나의 내면을 극한으로 성찰하는 일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제 자신 속의 위선과 너무나도 많이 마주했습니다.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네가 시를 쓴 것도, 그걸 신인문학상에 응모한 것도, 그리고 이 글을 쓴 것도 다 위선 아니야?"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위선일지라도 결과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믿으면 실천하는 사람이라서요.
이 글, 수상소감이어야 멋있는 것인데. 아쉽게도 제가 지금 수상을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제 응모작은 실패작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실패작보다는 화려한 실패작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겐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어딜 가도 매미 울음소리가 가득해, 마침 화려한 실패를 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먼 미래엔 무슨 책이라도 출간해 사인과 함께 돌리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성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