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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Aug 08. 2022

강건하시길 빕니다

22.08.05 기록

 연락이 많이 밀리면 답장하는 것도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부정적인 상태에서 답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밥도 먹고 설거지도 하고 나면 무기력으로부터 조금 탈출할 수 있다.

 사실 난 쉬는 걸 잘 못하는 듯싶다. 쉬려고 누우면 생각의 늪에 빠진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며 지내고 싶다고 되뇌었다. 이게 사실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잖아.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도 해내야 한다. 내가 조금 더 강하고 대단하고 특별하고 멋있는 사람이면 좋겠군.

생각이 많은 사람은 생각 버리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미완의 사랑을 해 놓고, LOVE가 적힌 다이어리를 사러 온 사람. 포르투갈로 훌쩍 떠나 여행 일기를 적을 것이라 했다. 거긴 날씨가 더울 테니 계절과 어울리는 노랑을 추천했지만, 그는 파랑을 골라 사 갔다. 감당할 수 없는 노랑보다는 감당할 수 있는 파랑이 낫지.


 노랑이 민들레의 색이라는 고정된 비유를 어느 시점부터 갖게 되었다. 그 뒤로 모든 노랑을 볼 때마다 민들레를 떠올린다는 소리다. 정신 차려 보면 흩뿌려져 사라지는 노랑. 이 비유, 내 것도 아닌데 잘 차용해서 쓰고 다닌다. 덕분에 노랑은 사라지기 쉽고, 감당하기 어려운 색처럼 느껴지곤 한다. 아, 그대는 노랑이었군요?


 '우울오렌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칵테일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들었다. 처음에는 이름처럼 오렌지가 주인공일 수 있게 착즙해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럼 맛이 너무 새콤달콤해져서 우울과 거리가 멀어져 보여 기각했다. 발제자는 위스키 베이스에 오렌지 필을 한 작품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럼 올드패션드, 맨해튼, 사제락 이런 느낌으로 가는 것일 텐데, 걔들은 우울한 맛이긴 해도 오렌지가 주인공은 아니잖아. 어려운 요청이다. 오렌지는 그 자체로 이미 우울과는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화가한테 가서  슬픈 밝음을 그려주세요, 라고 요청할 때와 비슷한 조건이라고나 할까.

 교보문고를 갔다. 한강의 책을 사고 싶었는데, 돈도 시간도 없어서 사지 못했다. 새로운 알바를 구할 힘도 여력도 없으니 아마 당분간 조금 더 몸도 마음도 가난한 사람으로 지내지 않을까 싶다. 해야 하는 일들이 꽤나 많으니 그것들만 하고 지내도 순식간에 개강할 것만 같아서 슬프군. 아무튼 한강은 정말 천재고, 그처럼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한국 문단에 계셔서 너무 감격스러운 천재.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인쇄된 사인이 있어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강건하시길 빕니다.
2022년 늦은 봄
한  강


 제 인사말은 오래도록 행복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건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뒤집으면 강건이잖아요. 강건도 멋진 말 같습니다. 그럼 다들 강건하시길 빕니다. 고독은 씹을수록 비린 맛이라 이상하게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라. 사장된 사전에서 꺼내 온 낯선 표현같이 느껴지네요. 그리고 덩달아 손발과 마음까지도 무거워질 만큼 우스운 말이기도 하고요. 뭐 어떻습니까. 언어는 사용되라고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잖아요. 모쪼록 강건하십시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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