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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열 Oct 11. 2022

생각하는 역사수업,

역사수업은 암기과목이라는 지긋지긋한 명제를 벗어나기

#1. '역사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수업은 암기과목이라는 오래된 믿음들이 있다. 글쎄, 역사를 좋아하고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다. 역사는 해석의 학문이지, 객관적인 사실을 달달 외우고 그것으로 '역사를 잘한다'를 증명받는 학문은 아니다. '역사를 잘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건을 보고 그것을 해석해 내면서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그것이 주는 의미를 읽어내는 관점을 기르는 것,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배워나가야 하는 학문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역사를 잘한다'는 것은, 사실을 줄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읽어내고 토론할 줄 아는 역사적 사고를 잘 해낸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역사 교육론에서도 주야장천 역사교육의 주요한 목표로서 '역사적 사고력의 향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장이나 사회에서의 인식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연도를 줄줄 외우고, 역사적 사실의 나열을 어려움 없이 잘 해내고, 시험 점수를 잘 맞는 친구들을 두고 대개 우리는 '역사를 잘한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약간의 문제가 있다.  연대기적 파악력은 사건의 전체적인 의미와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사건의 전후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역사적 사고의 기본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것이 연도를 달달 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역사적 사고에 대한 수많은 글들에서도 이것이 가장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의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2. 그래서 학교교육이 중요하다. 

솔직히 말하면 역사수업이 암기과목이라는 오해, 역사적 사실을 잘 외워두고 말할 수 있어야 역사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에서 학교교육은 자유로울 수 없다. 객관적인 체하는 교과서,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수업, 질문과 토론의 부재,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 때문에 이루어지는 지식 위주의 평가와 시험.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역사수업=암기과목"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많은 것들이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 교과서의 본문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탐구활동에서 보완을 시도하고 있고, 이제는 제법 선생님들도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는 다양한 수업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서울형 토론 모형'을 내밀고, 교육부는 과정 중심 평가를 강조하면서 학생이 배움의 중심이 되도록 교육현장에 지침을 내린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고 사회적 인식의 개선은 요원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매년 내손을 거쳐가는 수많은 학생들이 '역사=암기과목'이라는 오해를 생산해내도록 둘 수는 없다. 현장에서부터 발생한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그래서 학교교육이 중요하다. 다양한 역사적 사고가 이루어지는 수업, 역사적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통해서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끔 하는 수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는 역사수업을 꿈꾼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시끄러운 교실을 만든다. 젠체하는 교과서의 글 말고, 조금 더 말랑말랑한 책을 읽혀서 관점의 전환을 꿈꾼다. 


월드 카페로 열심히 토론 중인 친구들

#3. 생각하는 역사수업, 너머 

나는 토론 수업을 즐긴다. 주제를 주고 직접 자료를 탐색하고 정리하게 해서 공유하는 수업도 즐긴다. 독서수업과 책 대화는 특히 더 즐긴다. 아이들이 잘 안 따라줄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생각보다 학생들은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와 시간을 좋아하고, 그런 시간이 없음에 갈증을 느낀다. 


"토론 수업이 제일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해요!"라는 반응이 내 수업성찰 설문에서 늘 나오는 다수의 답변 중 하나라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생각하는 역사수업은, 학생들의 말랑말랑한 뇌를 자극해서 서로의 관점을 나누고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만들어준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행위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줄 아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또 하나의 기저 학문이 역사가 된다면, 생각하는 역사수업은 여기에서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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