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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Mar 27. 2023

반공소년이 될 테다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반공정신이 투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호의 달'이라던지 '멸공방첩' 같은 뜻도 모를 리본 다는 걸 특히 강조했다. 리본 만드는 걸 깜빡이라도 한 날엔 플라스틱 자로 여지없이 손등을 때렸는데, 억울하기는 커녕 원인 모를 죄책감을 느낀 것을 보면 나에게도 '반공'의 피가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교실 칠판 옆에는 늘 간첩이나 간첩선을 신고하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당시 간첩신고는 천만 원, 간첩선 신고는 삼천만 원이었다.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이 천만 원이던 때였으니 엄청난 거금이었다. 어린 마음에 간첩이나 간첩선을 신고하여 부모님께 집을 사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방학 때는 반공 독후감 쓰기 숙제가 빠지지 않았다. 반공도서의 말미에는 똑같은 문구가 있었는데, 밤에 라디오를 청취한다든가 새벽에 나뭇잎이나 흙이 묻은 옷을 입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간첩이니 반드시 신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의 가스라이팅 덕분에 나는 바퀴벌레와 공산당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한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우리집과 변소를 같이 사용하는 이웃에는 총각이 홀로 살고 있었다. 워낙 행색이 초라하고 두문불출하는 사람이라 나는 그가 간첩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어느 날은 잠을 자다 소변이 마려워 변소를 갔는데 총각의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설핏 들려왔다. 간첩이 라디오를 듣는구나 싶어 그의 창가에 귀를 대고 엿들었다. 두런두런 주고받는 말과 간간이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라디오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후로도 그의 동태를 예의 주시했다.


여름에는 뒷산 정상에 있는 약수터를 가곤 했다. 자주 가던 길이었지만 그날따라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전기선 같기도 하고 전화선 같기도 한 검은색 선이 숲 속을 가로질러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것이 바로 간첩선이구나 하고 직감했다. 살짝 가슴이 뛰었다.


이튿날 하교할 무렵 담임 선생님에게 신고했다.

"선생님, 간첩선을 봤습니다."

호기롭게 반색할 줄 알았던 선생님의 반응은 예상외로 무덤덤했다.

"간첩선이 어디 있는데?"

"우리 집 뒷산에요!"

"집에 가라."

"진짠데요...."

"노아의 방주도 아니고 배가 왜 산에 있냐? 손등 대, 새꺄!"


간첩선을 신고하고 매를 맞을 줄은 몰랐다. 이게 다 간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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