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남녀 공학인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하던 무렵이다. 아이들은 늘 사랑에 목말라했다. 수험생활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늬만 수험생일 뿐 초등학생보다도 더 많이 놀았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성인 보호자로부터의 애잔한 사랑이 아니다. 이성관계에서의 사랑을 말한다. 그들은 숱하게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했다. 비록 상대는 자주 바뀔지언정 이성 친구가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했다.
그중 유독 C가 기억에 남는다. 숫기 없는 외모였지만 유달리 이성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는 학교 근처에서 제법 큰 오리요리 가게 아들이었다. 한 학년 아래 여학생과 사귀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 그 여학생은 C의 네 번째 여친이었다. 이전에는 같은 반 여학생 OO와 사귀고 있었는데 공동으로 쓰던 학급 일기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OO는 내 거다.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가 지켜줄 거다." 그 글에는 무수한 댓글이 달렸는데 태반이 조롱성 글이었다. "OO는 지켜줄 필요 없다. 얼굴이 무기다"거나 "건드리라고 해도 안 건드린다. 니가 사귀어줘서 고맙다"는 식이었다. 악성 댓글은 나빴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내 눈에도 OO는 그리 예쁜 축에 들지 않았다.
그랬던 C가 OO와 헤어진 뒤 아래 학년으로까지 애정의 나와바리를 넓힌 것은 놀라웠다. 한날은 C의 여자 친구가 우리 교실로 왔다.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모두가 귀가한 뒤였다. 그녀는 C의 자리에 보자기를 깔고 빈 그릇과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 C의 자리 위 천장에 풍선까지 달았다. 이튿날이 C의 생일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니 아이들이 C의 자리를 에워싸고 서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미역국, 김치를 비롯한 몇 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C는 보란 듯이 식사를 했고 아이들은 여자 친구의 이벤트를 부러워했다. '앗, C가 위험하다!'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는 식사하는 C의 모습이 위태해 보였다.
불행히도 나의 촉은 맞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즈음 C가 학교를 오지 않았다. 집에서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2학년 여자 친구도 덩달아 결석을 한 상태였다. 아무도 그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부모님은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결석이 2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찌어찌하다 수소문 끝에 경주에서 서울로 상경하려던 그들을 붙잡았다. 여자 친구가 임신을 했고 서울로 가 함께 살려고 했다는 기가 막힌 얘기를 들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한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던 C와 나는 거의 매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가지는 기억이 뚜렷하다. C에게 '반하다'는 것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대충 다음과 같은 허접한 말을 해주었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도와주고 받쳐주는 것만으로는 사랑이 완성되지 않는다. 물리적이든 감정적이든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남녀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가 곧 사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녀는 각자의 의무가 있다. 상대방이 기댈 수 있게 자신을 완성해야 한다. 사랑이 둥근 원이라면 그 절반씩을 각자 채워야 한다. 그 절반을 무엇으로 채우는가는 정답이 없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채워가면 된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많은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일 수도 있다. 그 절반을 채웠다고 생각이 들 때 상대방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라. '나 너에게 반했다.' 나도 반하고 상대방도 나머지 반을 하면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은 너를 담금질할 때다.
C는 꽤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당시 신혼이었던 나도 잘 실천하지 못한 이야기다. 지금도 나는 내 사랑의 절반을 채우지 못했다. 진행형이다. 요즘 들어 자주 성을 내는 아내에게 언제고 말하고 싶다. "여보, 나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못 궁금하다. 사족이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사실 '반하다'는 순우리말이다. C에게 해 준 말은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