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꼽 Jun 26. 2023

내면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01

‘널 좋아해.'라는 달콤한 말 속에 숨은 상대방의 본성을 파악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아니다 싶으면 칼 같이 뒤돌아서곤 했는데, 누구와 헤어져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피해야할 기준이 명확했기 때문에.


다사다난한 연애 끝에 한 남자를 만났다. 그 순간 하늘이 내 편이었는지 온화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자연스럽게 영원을 약속하게 되었다. 부모님처럼 살지 않을 자신이 이 사람과 사는 내내 피어올랐다. 그리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결혼 5년차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막상 아이가 생기자, 잘 키울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늘진 성장 배경과 그 속에서 자란 불완전 투성이인 나 자신을 어떻게든 메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유명한 육아서 리스트를 뽑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을 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뱃 속 아이를 위해 읽는다면서 자꾸만 어린 시절의 나와 부모님의 모습을 대입하게 되었다. '나도 이런 사랑을 받았어야 했는데...' 불편한 장면들과의 조우에 때로는 엉엉 울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어린 아이가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달래지지 않은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그 '내면 아이'는 한 개인의 정신 세계 속에 남아 현재의 삶과 행동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의 내면 아이는 육아서를 읽을 때 마다 나를 그곳으로 가차 없이 끌고 갔다. 집 앞 주차장,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했던 열 한 살 소녀가 있는 곳으로, 어느 이른 새벽 무릎을 끌어안고 나 몰래 울고 있는 엄마를 지켜보았던 이불 틈 사이로. 엄마의 감정은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그대로 전이되었다. 뛰는 심장 때문에 뜨거운 호흡이 이불 속에 가득 차서 답답했지만 나갈 수 없었다. 그날 이후에도 이따금씩 뜨거운 이불 속에서 나가지 못 하고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온갖 못된 상상을 했다. 엄마를 지켜주고 싶었다.


육아 전문가들은 내면 아이를 잘 치유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눈물이 날지언정 제대로 마주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눈물이 그친 뒤에도 원망과 분노는 그대로였다. 아니, 다시 꺼낸 구체적인 기억들이 현재의 나에게 다시금 생채기를 냈다. 그런 기억들은 영원히 굳지 않는 아스팔트처럼 기분 나쁘게 내 두 다리를 동여맸다. 가끔씩은 중심 잡기 힘들어 그대로 넘어지고, 나뒹굴었다. 거지 같았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님 마음이 이해된다더니, 오히려 ‘절대 이해 불가’의 입장을 공고히 하게 되는 스스로가 싫었다. 친정에 다녀오는 길에는 늘 마음이 복잡 했다. 아버지에 대한 화와 죄책감이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울고 싶은 감정이 들었다. 평화로운 그림 같은 나의 일상에 ‘아버지’ 한 글자만 더 해도 감정의 파도가 일렁였다.


아버지.


그는 모든 걸 잊은 듯 사고 이전의 딸바보 눈빛으로만 나를 바라보신다. 그래, 정말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정말 많이 편찮으셨으니까. 그래도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사과 받는다고 후련해질 것도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을 나만 짊어지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억울했다.


큰 사고로 돌아가실 위기에 처하셨던 아버지,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셨던 어머니. 하교 후, 아무도 없는 어두운 집에 찬밥처럼 담겨 있던 동생과 나. 아버지가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고, 불편하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신 모든 과정이 '기적'이라고 많은 분들에게 받았던 축하.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세상 온갖 어둠은 다 끌어안은 채로 우리에게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했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에 우는 다섯 살 짜리 남동생을 옆방으로 데리고 가서 귀를 막아주며 '괜찮아. 울지마.'라고 말했던 나도 고작 아홉 살이었다.


추운 겨울에 아빠 면회를 마치고 구멍 뚫린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다. 엄마의 얇은 코트 속에 나와 동생이 들어가서 서로 끌어 안고 바람을 피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빨리 나아서 집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라고 같이 소원을 빌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렇게 열아홉이 될 때까지 감당했던 그 어둠의 무게가 아이 엄마가 된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는데, 당신은 모든 걸 잊었다는 게 원통했다. 내 아이는 티 없이 키우고 싶은데, 당신 때문에 끈적이고 냄새 나는 아스팔트에 빠진 이 시커먼 두 손으로 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