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주간
[필중: 나는 출근하고 있어. 오늘 비올 것 같으니까 우산 챙겨. 06:30]
[필중: 점심시간이야. 제육볶음에 계란국이 나왔어. 12:00]
[필중: 나는 퇴근해서 이제 집에 도착했어. 오늘도 야근해? 17:30]
전화통화, 야간
20:20 출근길 통화
23:50 쉬는 시간 통화
08:00 퇴근길 통화
남편은 주야간으로 일한다. 근무한 지 벌써 8년이나 되었다.
한 곳에 오래 다니는 그가 처음에 마냥 신기했다. 한 곳에 길어야 1년밖에 다니지 못하고 상사와 다투거나 잘리거나 질리거나 트러블이 생겨서 관두거나... 여러 이유로 퇴사했던 나에 비해 무척이나 성실했고 책임감이 강하다고 느껴졌다. 그러한 성실성은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다. 늘 같은 시간에 톡이 왔고 전화가 왔다. 못 받거나 놓쳐버리는 건 항상 나였다.
아침엔 하루의 기상상황을 확인해 나에게 전했다. 매일 아침 뉴스를 통해 날씨를 접하기는 하지만 가끔 그가 말해주는 날씨가 더 맞기도 했다.
'비 온다. 우산 챙겨. 자기가 좋아하는 날씨긴 한데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맞지는 말고.'
'저녁 8시쯤에 비 온다고 했으니까 야근할 것 같으면 우산 챙기고 아니면 데리러 가도 되니까 말해.'
'날씨가 좀 쌀쌀하니까 겉옷 챙겨.'
그와 만난 지 세 달째, 비로소 알아차렸다.
내가 그와 연애하면서 불안하거나 신경질적이지 않았던 이유, 매일매일 안정적이라고 느꼈던 이유.
그는 예상하지 못할 상황을 만들지 않았고, 항상 똑같은 시간에 연락을 해왔다. 걱정할 일을 만들지 않았다. 그것만도 내 연애는 물 흐르듯 편했다.
남들은 지루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연애가 나한테는 안성맞춤이었다.
별거 없는 연애였다. 뜨겁게 타오르지도, 차갑게 식어가지도 않았다. 뭉근한 밥통의 보온과도 같은 온도였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끊임없이 세뇌시켰다.
"우리 한 1년 정도 연애하고 결혼하자."
"음, 나는 결혼은... 나는 결혼이랑 안 맞아."
"그래? 알았어."
"내년 가을쯤에 결혼할까? 봄에 상견례하고."
"글쎄, 아직 결혼 생각 없는데?"
"그래? 알았어."
"여름은 하객들도 그렇고 우리도 덥고 힘드니까 역시 가을이 좋겠어. 겨울은 또 너무 추우니까."
"오빠 난 결혼생활에 자신 없어. 못 견딜 것 같아."
"그래? 알았어."
"11월이나 10월쯤에 결혼하는 게 어때?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딱 좋을 것 같은데."
"... 생각해볼게. 그래도 여전히 난 결혼 무서워."
"흠, 알겠어. 그래도 생각해봐."
"내년 3월쯤에 상견례할까? 11월에 결혼식 하고."
"그래도 우리 2년은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 아직 반년밖에 안 됐는데?"
"그런가? 알겠어."
끊임없이 나에게 결혼에 대해 언급했다. 싫다고 하면 거기서 말을 멈췄고 다음 기회를 노렸다.
주변에 결혼해서 행복한 부부를 본 적이 없었다. 늘 다투고, 다툼의 원인을 상대방한테서 찾으며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결혼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불안장애와 우울증이 생겨버린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으니까.
만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올 4월에 상견례할까?"
"... 오빠는 나랑 왜 결혼이 하고 싶은데? 난 자신 없어."
"나는 자신 있어. 잘 살 자신."
처음이었다. '알겠다.'는 대답 대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한 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거야?"
"내 사전엔 이혼은 없어. 잘할 거니까."
"그걸 어떻게 단정하냐고. 다른 부부들도 처음에 다 좋아 지내지만 나중엔 이혼하잖아. 10쌍 중에 6쌍은 이혼하는 세상인데 난 자신 없어. 부부 두 사람 때문에 이혼하는 경우는 잘 없어. 양가 부모나 양육문제 때문에 이혼하는 거라고."
"우리가 4쌍에 들어갈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결혼을 경험 삼아하기엔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야. 난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휘둘리기 싫어. 결혼하게 되면 권리보다 의무가 더 생기는데, 양가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하겠어."
"흠, 우리 쪽은 좀 그럴 수도 있겠다. 워낙 자신들의 생각이 강하신 분들이니까."
그와의 결혼이 나쁘지 않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1년 동안 단 한 번도 자기가 만든 일상 패턴에서 벗어난 적이 없기도 했고, 간혹 연락이 되지 않아도 뭘 하고 있겠다 정도는 예상이 됐으니까. 단, 그만을 생각했을 때는.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달랐다. 아들을 사랑했다. 아들의 시행착오를 허락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자유방임형 부모 밑에서 살아온 나에게 그의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부부들이 주로 나오는 TV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
극으로 치닫는 사랑과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동치미, 애로 부부 등 부부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엄마와 함께 보며 토론하는 게 일상이었다. 결혼은 남녀 모두에게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니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꿈꾸는 그에게 동조할 수 없었다.
"오빠도 사랑과 전쟁 좋아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건 그냥 TV 프로그램일 뿐이잖아. 쓰인 대로 연기하는 건데 왜."
"실제로도 그런 부부가 많으니까, 다들 공감하니까 시청률도 높고 시즌별로 나오는 거잖아. 다른 거에 현실적이면서 결혼에 대해선 이상적이네."
"자기야 말로 이상적이면서 결혼에는 현실적이네."
"결혼은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 특히 아직까지는 아들이 존귀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특히 더! 오빠도 보수적인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결혼에 이상적일 수 있겠어."
"내가 뭐가 보수적이라는 거야."
그도 파고들어 보면 '보수적인' 부분이 많았다. 남녀 문제로만 보자면 이전에 이상적인 반려자를 물어봤을 때 '순종적인 여자'라고 확고하게 대답한 적이 있었다. 연애는 자신을 휘둘러주는 여자를 원했으면서 결혼은 순종적인 여자를 원했다. 모순적이라고 느꼈다.
보수적이라는 건 쉽게 말해 새로운 것보단 익숙한 게 좋다는 말이다. 난 그의 보수적인 부분, 예로 들면 일상 패턴이 바뀌지 않는 게 좋았다. 하지만, 이 성향이 결혼생활로 들어가면 충동적이고 '나'다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나에겐 철창에 가둬지는 느낌이었다. 난 결코 순종적인 반려자가 될 수 없었다.
'물 흐르는 대로' 그의 좌우명을 따라가자면 난 다른 부부들처럼 여자로서의 삶보단, 나다운 삶보단,
'누군가의 **' , '**로서의'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채 그 틀에서 벗어나면 욕을 먹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건 남자 입장에서도 같을 것이다. 굳이 서로한테 좋을 게 없는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줄곧 의문이었다.
"난 아직 모르겠어. 난... 그래, 적어도 난 아내로서의 삶은 좋아. 받아들일 수 있어. 그런데... 엄마로서의 며느리로서의... 그런 역할은 못하겠어. 내 삶도 버겁고 힘든데 다른 사람의 기대치까지 맞추면서 살 자신이 없어.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나답게 살고 싶어."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30대 중반인 그에게 인생에 있어서 결혼이라는 건 매우 중요한 절차였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도 그의 결혼을 재촉하고 있었으니까.
"자기한테 고백한 것도 결혼을 전제로 한 거야."
"왜? 날 어떻게 믿고?"
"그냥 자기라서. 자기보다 좋은 여자는 못 만날 것 같아서."
"나보다 좋은 여자는 세상에 깔렸어. 무슨 소리야."
"날 좋아해 주는 좋은 여자는 자기밖에 없더라고."
"아닐 걸? 많을 걸? 엄청 많을 걸?"
이건 무슨, 꼭 나 말고 다른 여자 찾아보라고 떠미는 것 같았다.
"없었어. 내가 이 나이 먹고 여자 안 만나 봤겠어? 소개팅도 1년에 8번 이상은 꾸준히 했고 연애도 했고 즉흥적인 만남도 가져봤어. 그런데 자기 같은 여자는 없더라. 그래서 결혼도 바로 생각한 거야. 만난 경로가 좀 그렇지만 난 자기한테 진심이야. 사귀다 헤어질 마음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고."
"나는... 무섭다고. 내가 잘 해낼 거라는 자신도 없고 모두의 기대에 충족할 자신도 없어. 난 그냥 나다운 삶을 살고 싶어. 결혼하면 그게 사라질 것 같다고. 난 그게 싫어."
"누가 자기답게 살지 말래? 결혼하면, 그래 책임이 따르는 일도 있겠지. 그래도 자기 판단대로 자기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 우리 부모님의 기대치는 채울 수 없어. 원체 만족이라는 걸 모르시는 분들이니까. 나도 그렇고. 나도 자기 부모님이 원하는 사위가 될 수 없어. 그래도 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거야. 그거면 된 거 아냐?"
"사위랑 며느리는 다르다고!"
"....... 하, 그래. 마음대로 해."
싸우는 법이 없던 우리는 결혼문제가 나올 때마다 언성이 올라가고 다투게 되었다. 답이 없는 문제였다.
인생에 있어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그와 결혼에 회의적인 나와의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다 결혼을 결심한 순간은 아주 단순했다.
주말을 맞아 본가에 내려가 엄마와 '속풀이쇼 동치미'를 시청하고 있었다.
"엄마, 오빠가 결혼하재."
"진짜? 언제? 상견례는 언제 하자드노?"
"해야 할까? 결혼?"
"왜, 하기 싫나?"
"엄마도 결혼해봐서 알잖아. 행복해?"
"느그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했는데 뭐가 행복하겠노."
"그렇지? 그래, 결혼은 불행한 거야."
"근데 딸아, 엄마는 느 아빠랑 결혼한 거 후회는 안 한다. 이래저래 지지고 볶아도 느 아빠만큼 성실하게 사는 사람도 없더라. 기집질 좀 하고 속 썩여도 집에 따박따박 돈 갖다주고 내 안 때리고 느그한테도 손 안 대고 일평생 가족 위해서 살아왔다. 주변을 둘러봐도 이만한 사람이 없더라."
"그래도 기집질도 하고 거짓말도 밥 먹듯 하고 시집살이도 나 몰라라 해서 엄마 힘들었잖아. 이혼하네마네 했잖아."
"엄마는 가난하게 살아서 돈만 집에 잘 갖다 주면 다 괜찮았다. 그래서 아직 느 아빠랑 이혼 안 하고 산다이가."
나는 엄마와 대화 중에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결혼에 대한 내 '가치관'이었다.
엄마는 '돈'이었고 나는 '신뢰'였다. 초반에 친구 와이프 문제만 빼면 1년 넘게 만나면서 그는 내 신뢰를 무너뜨린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나는 곧장 그에게 톡을 보냈다.
[나: 내 신뢰 안 깨트릴 자신 있어? 평생 나만 보고 살 자신 있어?]
[필중: 응. 찾다 찾다 자기 만난 건데 귀찮게 다른 사람 볼 이유가 뭐 있어]
[나: 세상에 남자는 두 종류로 나뉜대. 바람 핀 남자와 바람 필 남자]
[필중: 세 종류로 나누지 뭐. 이것도 저것도 다 귀찮은 남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경험을 중시하는 내 인생 가치관을 왜 결혼에는 적용할 생각조차 못했을까.
"엄마, 안 맞으면 이혼해도 돼?"
엄마는 TV 모니터에 눈을 두고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안 맞으면 이혼해야지. 남들 다하는 거 네도 해보고나 후회해라. 갔다 와도 된다."
"... 응, 상견례는 3월이 좋을까 4월이 좋을까?"
"글쎄, 우리야 느 아빠만 시간 맞추면 되니까 필중이 쪽 부모님이랑 논의해봐라."
[나: 3월이나 4월에 하자. 식당은 2월쯤에 알아보고]
[필중: 그래. 본가에는 오늘까지 있을 거지? 그럼 내일 자기 집에서 봐]
[나: 응. 내일 봐]
한 번 결심하고 나니 여태까지 고민했던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래, 결혼이 있으면 이혼도 있는 건데.
갔다가 아닌 것 같으면 그만하면 되는 건데. 뭐가 그리 고민이었을까.
물론, 결혼에 따르는 책임감과 의무는 다해야겠지만, 그의 말대로 나를 버리면서까지는 아니다.
모두의 기대치를 맞춘다는 건 불가능한 것이고, 나는 그중에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거면 그냥 하고 후회하자.
까짓, 결혼이 별거냐.
'잘한 선택이겠지....?'
라는 불안은 결혼 준비 내내 들었지만, '불안'이란 건 죽을 때까지의 내 숙명이니까.
이것도 안고 가야겠지 내 남편이. 안고 간다고 했으니까. 안고 가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