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 별거냐 : 남편의 친구들 만나기 4
(개인사정으로 남편의 친구들 만나기 3은 삭제되었습니다. 읽으시는데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난 아직 그때만 생각하면 속이 뒤집혀."
"별 이상한 상상을 다하고 있어. 그때도 말했지만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내 친구관계는 단순하다.
어릴 때부터 친구, 여자
중학생 때 친구, 여자
고등학생 때 친구, 여자
대학생 때 친구, 여자
사회인 친구, 여자
나에겐 '친구의 남편 = 친구'
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때는 바야흐로 연애를 시작하고 두 달 남짓 되었을 때였다.
남편과 회전초밥뷔페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한 달 간의 남편 탐색은 마무리가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통과'였다.
이제는 남편 친구를 탐색할 시기가 왔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전 뼈아픈 경험도 있었고.
"오빠, 핸드폰 좀 보여줄 수 있어?"
여기서 잠깐 밝히자면, 앞서 말한 나의 '이상한 상상'은 '불안'에서 기인한다.
판도라의 상자, 휴대전화.
나는 그 무서움을 알고 있고, 남편의 휴대폰을 여는 순간 이별이 올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상자를 열어보는 것.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
"그래, 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폰을 건넸고, 난 곧바로 잠금 패턴을 풀었다. 탐색의 결과랄까.
여기서 남편은 좀 놀랐다고 한다. 잠금 푸는 걸로 골려줄 생각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푸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좀 무서웠다고.
나는 오랜 경험으로 휴대폰 검사(?) 때 보는 것들이 정해져 있다.
1. 문자 2. 통화목록 3. 주소록 4. 갤러리 5. 메신저 그리고 그와 관련된 시간들.
(*참고로 지금은 휴대폰을 보지 않는다. 남편을 믿기에.)
메신저 같은 경우는 수시로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해 믿지 않는 편이고, 관리하지 않는 문자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결제 문자나 부재중 문자 같은 거? 이걸 쓰고 있는 나도 내가 좀 무섭다.
역시나, 남편의 문자에는 친구들이 예의상 보낸 부재중 문자나 통화불가 문자가 있었다. 이건 별로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통화목록이 내 불안 회로를 건드렸다.
"오빠, 이 사람은 왜 즐겨찾기로 되어있는 거고 왜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하는 거야? 이름 보니까 여잔데?"
남편은 휴대폰 화면을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어, 걔 친구 3 와이프, 친구 3이 주야 근무하는데 야간 때면 심심하다고 전화 오거나 뭐 먹고 싶다고 전화하고 뭐 그런다. 나도 심심하면 전화할 때 있고. 10년 가까이 본 애니까 그냥 걔도 친구지."
이건 무슨 길다가 10억 원짜리 복권을 줍는 말인가.
친구의 와이프와 하루에 적어도 3번 이상씩 통화하고 야간 때는 둘이 만나 밥을 먹는 사이가 될 수 있다고?
그것도 즐겨찾기로 등록해 두고?
내 머릿속에서 비상경보가 울렸다.
"... 불륜이야? 얘랑 좋아지내는 사이야? 친구 몰래 밤에 만나고 그래?"
"하, 아니야. 그냥 친구라니까? 걔도 친구 3한테 허락받고 나오지."
"그럼 그 친구가 미친 거네. 밤에 와이프가 지 친구 만나러 가는 걸 허락한다고?"
"뭐, 허락 안 받고 나올 때도 있는데 남도 아니고 나랑 만나는 건데 허락받고 안 받고 가 뭐 필요해."
"허락 안 받고 나올 때도 있다고? 미치겠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아무리 연애 때부터 10년 가까이 봐왔어도, 엄연히 친구의 와이프고 여잔데.
불안한 마음이 계속 치고 올라왔다. 손이 덜덜 떨렸다. 카톡을 열어봤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이런 미친, 카톡에도 즐겨찾기 되어있네?"
"응, 자주 톡 하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와 대화한 채팅방에 들어가 대충 위에서부터 읽어 내렸다.
밤 10시 20분,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나오라는 내용, 간다고 함.
다음날 밤 10시, 순대가 먹고 싶다고 나오라는 내용, 간다고 함.
그다음 날 오전 7시, 커피 먹고 싶으면 본인이 일하는 가게에 들르라는 내용, 간다고 함.
그 그다음 날 오전 7시 10분, 사장이 자리를 비워 공짜로 커피 주겠다고 오라는 내용, 일이 있어 못 간다고 함.
.
.
나는 헤어질 이유가 충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적어도 두세 번씩 통화를 하고 밤에 만나고 아침 출근길에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 들러 커피 한잔을 건네받는다? 흡사 연인과 하는 행동 아닌가?
"... 솔직히 말해. 얘랑 무슨 사인데? 얘랑 불륜인 거 들킬까 봐 나랑 사귀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니, 내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돼. 친구 와이픈데 주소록에도 즐겨찾기 되어있고 카톡에도 즐겨찾기 해놔? 그리고 여자 친구는 난데 난 왜 즐겨찾기가 안 되어있는데? 왜 나보다 이 여자랑 더 통화를 많이 하는데? 톡한 날짜도 봐. 나랑 사귀고도 밤에 만나고 아침에 만났네? 나는 못 들은 것 같은데? 그냥 알리바이 만들고 싶었다고 말해! 나 이용할 생각인 거면 난 더는 오빠 못 만나."
만약 그곳이 식당이 아니었다면 난 소리를 질러댔을 것이다. 그제야 심각한 상황이라 느낀 남편은 진지하게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나를 달랬다.
"진짜 그런 거 아니야. 정말 아무 감정 없이 오래 봐와서 편한 동생 같은 사이야. 친구도 지 와이프 외로움 많이 타니까 잘 챙겨주라고 했고, 나 여자 친구 없을 때 딱히 돈 쓸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서 자주 만나서 놀고 그랬는데, 그게 습관이 돼서 자기랑 사귀고 나서도 별 생각이 없었어. 기분 나쁠 수 있는데 진짜 그런 거 아니야. 앞으로 사적으로 연락하는 일 없을 거고 걔한테도 연락하지 말라고 말할게. 연락할 일 있으면 친구 통해서 하라고 할게. 그러니까..."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남편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이 나를 지배했고 나와는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어 무서워졌다.
이미 내 머릿속에선 두 사람은 불륜관계였고 갤러리 속에서 볼을 가까이하고 찍은 여러 장의 사진과 그녀의 수많은 독사진이 발견되는 순간 상상은 기정사실화가 되어버렸다.
"진짜, 씨.. 이 사진은 뭔데. 왜 얘는 침대에서 윙크하면서 손가락 하트하고 있는 사진을 오빠한테 보낸 건데? 왜 오빤 이걸 다운받아 놓은 건데 왜!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친구 와이프지 진짜 친구는 아니잖아! 진짜 친구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난 오빠 못 만나 헤어지고 싶어. 나 진짜 이런 마음으로는 오빠 못 만나."
"아, 진짜 아니야. 진짜 제발 아니라고. 저 사진은 지 남편한테 보낼 때 장난으로 나한테도 보낸 거야. 난 이 사진으로 걔한테 장난치려고 갖고 있던 거고 다 지울게. 사진도 문자도 톡도 다 지울게. 아니다 그냥 자기가 지금 다해. 마음대로 다 해. 나 진짜 하나도 상관없으니까."
옆에 와 거의 빌듯이 말을 하는 남편을 보니 '정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이러는 걸 거야'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고,
어쩌면 남편이 그녀를 친구 몰래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가 됐든 난 제3자가 되어버린 더러운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삭제된 글 '남편의 친구들 만나기 3'에서는 '그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나는 뭐든 물어보라는 그녀를 달갑게 볼 수는 없었다.
솔직히 '네가 뭔데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사람들 두고 물어보라 마라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왕 덮고 가기로 한 일이라 정말 최대한 공격성을 접어두고 착하게 말한 게 그것이다.
화장실을 갔다 온 남편은 분위가 살짝 처진 걸 느꼈는지 그녀를 보며 눈썹을 씰룩거렸고 그녀는 남편의 배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하, 왜 남의 남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는 거지?' 짜증이 솟구쳤지만 일단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남편뿐만 아니라 모든 친구들에게 스킨십을 자연스럽게 했고 그녀의 남편은 그런 일이 익숙한지 한 번도 제지하지 않았다.
친구 모임에서 내가 얻은 건 정말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는 걸 확인한 거고,
친구 모임에서 내가 알게 된 건 남편은 어릴 때부터 그녀의 남편에게 심적으로 의지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친구 3이라고 칭한 그녀의 남편은 기가 상당히 셌고, 언행에 거침이 없었으며 자신의 뜻대로 타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모임에서 나는 나의 포지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여자 친구로서 남편과 같은 에너지로 그들과 지낼 건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을 그대로 보여줄 것인지
나는 결정해야 했고 나는 결정했다.
(이 뒤의 이야기도 개인사정으로 삭제했습니다. 대략 제가 남편에게 위압감을 주는 그 부부에게 제 식으로 들이받은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소유욕, 독점욕, 질투, 집착의 상징이다.
그런 것들이 날 살게 했고 난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연애할 때마다
'질투가 심하고 독점욕도 많고 집착도 심하니 1년간은 참아줘, 믿음이 굳건해지면 집에 늦게 들어가도 상관하지 않을게'라고 말하고 시작한다.
물론 얼마나 심할까.. 싶어 궁금함에 사귄 남자들은 석 달도 못가 헤어졌다.
남편과 결혼을 했다는 건 그걸 다 참아줬다는 것.
연애를 왜 그렇게 피곤하게 하냐고 말하는 친구도 많았고,
그럴 놈은 그럴 것이고 안 그럴 놈은 안 그럴 것이라고, 가볍게 만날 것을 조언하는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 연애란 믿음으로 쌓아 올리는 돌담이었고, 그런 시간들을 가볍고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만남의 시작도 신중하고
만남의 끝도 신중한 나는 피곤한 연애를 선택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