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 별거냐 : 남편의 친구들 만나기 2
"자기는 지금도 친구들 보는 거 싫어하잖아?"
친구들과의 모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남편이 하는 말이다.
싫어한다기보다는, 뭐랄까. 힘들다.
"싫어하는 건 아니야. 그냥 힘들어."
"뭐가 힘들어 가서 앉아서 밥 먹고 이야기하고 오면 되는 건데."
"아니, 그러니까. 그 과정이 힘들다고. 표정이 바뀌는 거 보고 표현하는 감정을 느끼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남편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이런 거.
말로 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남편의 표현을 온몸으로 느낀다.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 전, 긴장한 나는 남편 친구들의 사전조사(?)를 위해 남편과 이런저런 추억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정말 믿는 친구들이고 학창 시절을 그들이 있기에 즐거웠다고.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내향적인 남편이 이토록 믿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다.
약속시간이 넘어도 약속 장소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친구들이 늦네? 여기서 만나기로 한 거 맞지?"
"응, 애들이 일 마치고 오는 거라 조금씩 늦는대."
일을 하다 보면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뒤 근처에 도착했다는 친구를 마중 갔다. 나는 긴장감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남편의 뒤를 쫓아가듯 따라갔다.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고 내려오는 한 남자(친구 1)를 향해 남편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나도 덩달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여자 친구?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개미만 한 목소리가 나왔다. 낯선 사람과 마주한다는 게 어색해서 남편 뒤에 숨었다.
어색하게 웃는 친구 1은 두 눈을 껌벅이며 나를 슬쩍 보고는 남편에게 눈짓한다.
"아민이가 낯가림이 심해서..."
"아... 그러시구나."
근처 이자카야에 자리를 잡고 술과 안주를 시켰다. 술을 못하는 난 친구 1이 주는 술을 예의상 받아만 놓았다.
남편과 친구는 오랜만에 만났는지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즐거워했고, 나는 친구 1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조용히 훑으며 나에게 해가 될 사람인지 아닌지 관찰했다.
잠시 뒤, 조금은 시끄럽게 등장한 남자(친구 2)가 우리 테이블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 사람을 보며 남편이 반갑게 손을 들기에 나도 살짝 엉덩이를 들어 나름 웃으며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를 보지 못했나 보다. 약간 무시당한 기분.
"이야, 진짜 오랜만에 보네. 연애한다고 연락도 씹더니 개자식."
단 3초 만에 이 사람의 첫인상이 결정 났다.
불. 편. 한. 사. 람.
그런 사람, 모든 상황과 관심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약간의 경계심이 생긴 나는 마주 앉은 친구 2를 집중해서 관찰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공격적으로 말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딱히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어쩌다가 대화가 오고 가면 이런 식이였다.
"생각보다 아민 씨는 키가 크시네요. 되게, 건강해 보여요."
"운동해서 덩치가 좀 커요. 그 얘기하고 싶으신 거죠? 그쪽도 생각보다 키가 작으시네요."
"하하! 그래도 평균 킨데... 생각보다 성격이 좀, 있으시네."
조용했던 내가 생각보다 공격적인 게 당황스러웠는지 멋쩍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간혹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나를 평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나도 그렇게 보이겠지.
한 시간 가량 나를 제외한 친구들끼리 즐거운 담소가 이어졌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향한 의심, 눈치, 평가를 온몸으로 느꼈고 그 자리가 굉장히 불편했다.
담배를 태우는 남편과 친구 2는 담배 타임을 위해 밖으로 나갔고 담배를 태우지 않은 친구 1과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저, 괜찮으세요?"
"네? 뭐가요?"
"좀 불편해 보여서요. 저 자식이 좀 나대는 스타일이라 좀 불편하셨을 것 같아요."
"아..."
정답.
친구 1은 생각보다 섬세했다. 남편도 못 알아챈 나의 불편한 감정에 먼저 손 내밀어줬다.
"제가 좀 경계심이 많아서 처음엔 좀 그래요. 저도 노력하고는 있는데 힘드네요."
"안 그래도 필중이한테 들었어요. 좀 만나는 걸 힘들어하신다고. 그래도 나와줘서 반가워요."
그 순간 거짓말처럼 친구 1에 대한 경계심이 풀렸다.
이렇게 금방 풀릴 경계심이었나 싶을 정도로 시원하게 방어벽이 깨졌다.
단, 친구 1에 대해서만.
"생각보다 아민 씨는 말이 없으시네. 난 우리 필중이가 좀 밝은 사람 만났으면 했는데."
뭐지. 싸우자는 건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친구 2가 나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야, 취했냐! 아민 씨한테 시비 걸지 말고 그냥 마셔 인마."
친구 1은 친구 2를 말리면서 술잔에 술을 따랐고 남편은 내 손을 토닥이다가 꼭 잡았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술을 한 번에 털어 넘겼고 친구 2를 보며 공격태세를 갖췄다.
한 번만 더 시비 걸면 남편 친구고 뭐고 술기운을 핑계 삼아 다 엎을 생각이었다.
"아, 제 말이 좀 그랬죠? 미안해요~ 아니 쟤가 워낙 오랜만에 연애하는 거라 걱정이 좀 됐어요."
"네, 제가 좀 어두워 보여서 걱정인가 봐요. 제가 워낙 경계심이 많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경계심 생길 게 뭐가 있어요. 우리 오늘 처음 봤잖아요. 좀 편하게 지냅시다!"
내 성격을 원색적으로 비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어본능이 꿈틀거렸다.
나도 모르게 내쉰 탄식에 남편은 나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아민이 나랑 둘 만 있으면 밝고 활발하다. 너네는 처음 보는 거라 좀 불편해서 그렇지."
친구 2는 끄덕거리면서 비어있는 내 술잔에 술을 따랐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내가 못마땅해 보였다.
"아 맞다. 아까 다른 애들이랑 연락됐는데 이왕 보는 김에 오늘 다 같이 보자. 애들도 네랑 네 여자 친구 보고 싶다더라. 괜찮지?"
괜찮을 리가.
남편은 나를 한 번 보더니 끄덕거렸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1시간 뒤에 있을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좀 지나야 상대방에게 신뢰가 생기며 본래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난 사람을 잘 믿지 않은 성격이라 후자인데, 친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관뒀지만, 매일 보며 함께해온 직장동료와도 1년이 지난 후에야 편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니 오죽할까.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은 나에게 이런 질문들을 자주 한다.
"네 남편 하고는 어떻게 결혼까지 하게 된 거야? 네 성격에 참... 신기하다."
나도 의문이었지만, 뭐랄까.
짚신에도 짝이 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