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비가 오면 생각나는(1)
제43회 근로자문학제 1차 통과 작품 (최종 탈락)
으레 비가 오면 하는 말들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찝찝하다, 꿉꿉하다, 우울하다, 울적하다 등등.
하지만 난 비가 오면 눈이 좋아 밖으로 튀어 나가고 싶어 하는 강아지처럼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재직 당시 직장동료 몇몇과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맑고 청량한 날씨에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 소식이 전혀 없었던 터라 모두 회사로 돌아갈 길을 걱정하고 있을 때 나는 달랐다.
아스팔트에 떨어져 진한 색을 내는 빗방울이, 정신없이 비를 맞아 흔들리고 있는 나뭇잎이, 그 아래에서 나는 흙냄새가 좋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비를 피해 건물 안에서 건널목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직장동료들을 뒤로한 채 나는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비를 맞았다. 오후 근무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상하고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었다. 아 물론, 이 말은 나를 입 벌리고 쳐다보던 동료가 내게 해 준 말이었다.
나는 비를 본 순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비를 맞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비를 맞으며 빙그르르 돌던 순간 나를 쳐다보던 동료들의 얼굴을 봤다.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다.’라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평상시 존재감이 없는 사원이었다. 필요하지 않으면 말도 잘 섞지 않았고 이렇다 할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맡은 일만 했고 별다른 표현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빗속으로 뛰어 들어가 세상 행복한 얼굴로 돌고 있으니 어떤 누가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그렇게 회사로 들어가서는 따로 불려 가 상사에게 ‘힘든 일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처음부터 비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부산에서도 섬나라로 불리던 ‘영도’에서 10대, 20대를 보냈다.
특히 내가 거주했던, 10분만 걸어가면 바다가 있던 동네는 여름만 되면 희뿌연 안개의 도시가 되었다.
그냥 단순한 안개가 아닌 바다 비린내를 한껏 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끈적거리는 액체가 달라붙는 느낌의 안개였다. 스프레이 같이 흩뿌리는 비와 함께 안개가 온 사방에 퍼지는 날엔 집안은 거대한 수조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특히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며 제습기나 에어컨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우리 집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베란다 문만 열면 큼직큼직한 아파트 사이에서 파란 바다가 널찍하고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지만, 안개가 자욱이 낀 날만큼은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는 자동차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여름을 특히, 장마철을 난다는 것은 구석구석에 핀 곰팡이와 동고동락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수조 속 물고기로 살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이 제습기와 에어컨을 집에 들이셨지만, 돌아가는 걸 몇 번 본 적은 없다. 여하튼, 그렇게 살았으면서 왜 비를 좋아하게 되었느냐면 내 개인적으로는 슬프고도 아픈 기억들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숨통 같은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