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일기
여태 살면서 무수히 많이 들었다.
"하면 돼! 유 캔 두잇!"
마음먹은 대로 안될 때마다 "개소리하네. 하면 되긴 개뿔."이라며 빈정거렸는데, 세상에 하니까 진짜 되는 것도 있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꺼낸다.
나...... 계획하던 게... 정말로.. 됐다!!!
지금껏 입 밖으로 꺼내면 부정이 타는지 계획이 다 어그러졌는데, 이건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아니니까 괜찮을지도.
계획대로 된 건 두 가지.
첫 번째, 임신 14주 차. 임신에 성공
두 번째, 웹소설 출판사 계약. 연재할 플랫폼 심사 중
23년, 나에겐 임신과 웹소설 완결 혹은 계약이라는 두 가지 과제가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불안해 미칠 것 같던 내가 스스로 정한 계획이었다.
8개월간 자연임신에 도전했고 번번이 실패했다.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나.. 자연임신은 포기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 덜컥, 임신이 되어버린 것.
다른 산모들은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하면 울던가 기뻐서 날뛰던가 어안이 벙벙해져 멍 때린다고 하던데, 나는 다 아니었다.
"아, 임신이네?"
그냥 무감정. 왜인지는 모르겠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날로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고 임신판정을 받았다. 병원을 찾았을 땐 4주 차였다.
남편이 퇴근하고 올 시간에 맞춰 임신테스트기를 변기커버 위에 뒀다. 감정표현에 서툰 남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간 남편은 화장실 문을 닫았고, 약 3초 뒤에 화장실 문을 열며 말했다.
"...임신이야?"
"응."
역시 우리 남편. 다른 남편들과 반응부터 달랐다.
"아..."
무덤덤...
"반응 좀 해주지?"
그제야 내 눈치를 살피고 특유의 아재댄스를 춰줬다. 팔과 다리, 골반이 따로 노는 댄스. 그러고는 곧장 샤워하러 들어갔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임신 14주 차가 된 지금까지 남편한테 서운해서 운 적은 없는 것 같다. 돈이 아까워 먹고 싶은 것도 안 먹고 있는 나에게 흘러가듯 말했던 음식을 사다 주고, 퇴근하면 절대 밖을 나가지 않던 남편은 내가 뭘 사러 가려고 옷을 챙겨 입으면 꼭 같이 가줬다. 아니면 본인이 다녀오던가.
뭐, 한동안 입덧 아닌 입덧으로 식욕이 떨어져 먹고 싶은 게 없던 이유도 있겠지만 혹여나 생겨도 귀찮아하지 않고 나름 자상하게 잘 챙겨주고 있다.
아직 엄마가 된다는 느낌은 없다. 다른 산모들 보면 엄청 행복해하고 태교다 뭐다 즐겁게 지내는 것 같던데, 난 뭐 별로? 그냥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강해진 것 같다.
임신보다 사실, 더 크게 와닿았던 건 웹소설 작품계약.
완결을 내고 2, 3주가 지났을 때였다. 출간제안을 하고 싶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임신확인을 하고 그다음 날에 봤던 터라, 아기가 복덩이인가? 괜히 아랫배를 쓸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의심병이 있던 나는 웹소설작가카페에서 정보를 이것저것 찾아보며 출판사에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을 투척했다. 출판사에서는 내 질문에 다 답을 해주며 마지막엔 믿고 계약하셔도 된다고 했다.
웹소설작가카페에서 믿고 거르는 출판사라는 말이 많아 고민하긴 했지만, 경험과 도전 자체를 즐기는 나한텐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했다. 고심 끝에 계약을 진행했고, 현재 퇴고까지 마치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상태다.
이제 남은 건 플랫폼에 연재를 시작하는 것.
내 소설이 메이저 소재가 아니다 보니 대형플랫폼 심사에선 떨어졌고 다른 플랫폼에 또 심사를 넣어둔 상태다. 경쟁력이 없을 거란 걸 알았지만.. 좀 슬프긴 했다.
"아가야, 엄마가 글 써서 번 돈으로 우리 아가 하고 싶은 거 하게 해 줄게."
끝없는 퇴고의 길을 걸을 때마다 중얼거렸다. 지겨워지거나 힘들어지면 쉽게 포기하는 성향상 동기가 필요했다. 나는 저렴한 거 입고 먹어도 우리 아기한텐 기능성 있는 거 건강한 거 입히고 먹여야지.
집 대출금을 다 갚기 전까진 나에게 자유란 없다!
남편 혼자 벌어먹고 사는 세상은 끝났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는데 그냥 가만있을 순 없다.
(집에서 일한다고 일하는 걸로 안치는 시댁과 남편이지만, 뭐 내가 일한다는데 뭐!)
살림은 원래 그렇게 힘들게 하는 편은 아니었고, 육아는 해봐야 하는 거고, 일은 잘 써놓은 작품하나면 적어도 3년은 아기 기저귀 값이라도 벌겠지.
론칭 일자 잡히기 전에 차기작도 구상해야 하는데, 세상에 이렇게 현실에 찌들었다니...
아무.. 생각도.. 안 난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