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아민 Oct 13. 2024

아들, 이라 부르지 못해 미안해.

내 아이가 평생 이 글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내가 이상한 엄마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도 되는 걸까... 여전히 고민스럽다.


난, 아이가 태어나고 단 한 번도 '내 아들'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그 단어를 떠올리면 내가 낳은 아이니까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것 같다.


음, 조심스럽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내가 낳은 아이니까 사랑해야 한다는 스스로 에게 주는 '강요'가 부담스럽고 싫다.


육아가 힘들긴 하지만 보람 있고 사랑하는 아이를 보며 행복을 느낀다는 엄마들을 보면 내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난, 음... 난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


난 매일 눈을 뜨면 한숨으로 시작한다.

오늘도 육아라는 게임에 강제로 던져졌고, 난 시스템이 주는 퀘스트를 깨야한다.


첫 번째 퀘스트.

밤새 축축하게 젖은 기저귀 갈아입히기.

눕히기만 하면 새끼악어로 돌변하는 아이에게 기저귀를 입히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가만히 좀 있어!"


퀘스트는 깼지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벌칙이 부여됐다. 아이의 사이렌 같은 울음소리.


두 번째 퀘스트.

아침 이유식 먹이기.

주는 족족 잘 받아먹기는 하나 숟가락을 뺏기 위해 힘을 쓰고 빨대컵으로 장난을 치다 웃으며 던져버리는 어린 악마에게 다정한 미소 짓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만 더 던지면 밥 그만 먹는다."


이번에도 퀘스트 깼지만 힘으로 아이의 장난을 제압하다 벌칙이 부여됐다. 아이의 밥상 엎기.


세 번째 퀘스트.

응가 뒤처리.

아침을 먹고 나면 얼마 안 있어 응가를 한다. 엉덩이를 씻기기 위해 눕히는 순간 새끼악어로 돌변하며 도망가기 바쁘다. 겨우겨우 잡아 엉덩이를 씻기려고 하면 몸을 뒤로 휘며 높이뛰기를 시도하는 망아지가 돼 언성이 절로 높아진다.


"아오, 좀! 가만히 좀 있으라고!"


역시나 퀘스트를 통과했지만 한껏 높아진 목소리 때문에 벌칙이 주어졌다. 아이의 발버둥으로 쏟아진 세정용품들.


네 번째 퀘스트.

낮잠 재우기.

제일 고난도의 퀘스트로 낮잠 시간만 다가오면 긴장된다. 잘 놀다가도 칭얼거리며 나에게 기어 오는데 귀여워 보이지 않고 무섭다. 눕히면 일어서고 눕히면 일어서고, 오뚝이가 따로 없다.


"그냥 좀 자! 졸리다며!"


장장 30분을 씨름한 끝에 퀘스트를 통과했지만 억지로 눕히다 벌칙이 주어졌다. 박치기 공격과 발차기 공격.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아이와 이 원치 않은 게임을 하루종일 반복하고 있다 보면 나의 유리멘털은 털리다 못해 집 나간 혼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잠든 아이를 보면 사랑스럽고 행복하다는데 나는 그저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한다.


'... 내가 만약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지금보다는 행복했겠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결국 쉬지도 못하고 현실로 복귀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다음 퀘스트를 준비한다.



가끔 육아에 지치면서도 아이만 보면 행복하다는 엄마들의 글을 보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난 아이를 사랑하지 않나? 난 왜 행복하지 않지? 왜 그저 힘들고 괴롭고 지치기만 하지?'


어떤 글에서 이 고민의 답일 것 같은 문장을 봤다.


'당신의 육아가 힘든 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예요.'


글쎄.

난 좋은 엄마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좋은 엄마일 수도 없고 좋은 엄마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내가 선택한 생명에 책임을 다할 뿐이다.


아, 가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주긴 한다.

음... 이건 나에게 하는 세뇌이기도 하면서 아이에게 건네는 심심한 사과의 말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다 보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비겁하고 옹졸한 마음과 말이라도 해주는 게 아이의 정서에 더 이로울 것 같다는 이기적인 양심.


육아가 행복하다는 엄마들에게 존경심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질문도 던지고 싶다.

정말, 정말 그렇게 행복한가요?

아이를 낳은 게 후회되지 않나요?

언제쯤이면 진실로,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게 되나요?


저 같은 엄마는, 진정 없나요?



작가의 이전글 그러게요, 그런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