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요, 그런가..?
우선순위가 밀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네가 쓰고자 하는 마음만 있어봐. 애 재우고 새벽에라도 쓸걸?"
저 말이 늦은 밤, 내 확고했던 꿈을 흔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매일매일 글을 썼다. 출판사에 보내야 하는 원고도 있었지만 오늘처럼 감정이 널뛰거나 잡생각이 많을 때는 나만이 볼 수 있는 메모장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읊어댔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예민하고 잠이 없는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취미는, 글은 사치였다.
한 문장을 쓰는데도 단어를 고르고 고르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나는, 한 페이지를 완성하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려 선뜻 시작하지 못한다.
하루는 아이가 낮잠을 10분 이상 자는 걸 보고 숨죽여 방에서 나온 뒤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하얀 바탕에 검은 커서가 한참 동안 깜빡이는 걸 바라보다 문득 눈물이 차올랐다.
항상 하고 싶은 얘기가 들끓었는데, 어떤 생각부터 풀어나갈지 즐겁고 설렜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왔던 침묵이었고 찰나의 여유였는데 난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래, 에세이라서 그럴 거야. 웹소설은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거니까 뭐라도 쓰겠지?'
그렇게 기획단계에 있던 시놉시스를 꺼내 들었고 내 손가락은 이내 또 멈췄다.
지금 생각하면 쉬고 싶었던 것 같다. 꿈이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시체처럼 모든 가동을 멈추고 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꿈을 꾸고 있는 나에겐 그마저도 핑계 같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가 잠든 시간에 계속 꿈을 이어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이가 밤에 잠들면 두세 시간 정도는 시간을 내어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30분이 멀다 하고 일어나 울어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러다 저 말을 들었다.
쓰고자 하는 마음... 뭐, 그래. 인정한다. 정말 쓰고 싶었다면 썼겠지. 새벽이고 낮이고 휴대폰 들여다볼 시간에 잠깐 TV볼 시간에 썼겠지. 그래 뭐 그렇겠지. 휴우.....
어쩌다 시간이 나서 노트북을 열었을 때 마침표가 찍혀있지 않은 문장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커서가 깜빡깜빡...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 대체 언제 썼던 글이었을까.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그저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이게 내 꿈이 아니었나?'
아니, 나는 글 쓰는 게 꿈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바뀌지 않았던 꿈.
그저 나에게 글보다 절실한 게 생긴 거였다. 꿈을 미룰 만큼 중요한 게 생긴 거였다.
쓰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다만, 지금 당장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매일은 아니라도 지금처럼 아이의 옆을 대신할 누군가가 있다면 난 노트북을 열어 날것의 생각을 쏟아낸다.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글이 먼 훗날의 나에게 다듬어져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니까.
그러니 나에게 하나의 역할만 강조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휘둘리지 말자.
그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도, 내 꿈을 대신 꿔주지도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