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버티고 있어 줄래요?(1)

불안장애의 연애기 1

by 류아민

'내가 미쳤지, 내가 이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게 다 결혼한 친구들 때문이다. 지난날의 나를 채근하면서도 내 발걸음은 약속한 목적지로 향했다.

그날 아침까지도 만날지 말지 망설였다.


외모가 마음에 들어 메시지 드린다는 말로 시작해 한 달 동안 SNS로 연락을 주고받던 그와 만나기로 한 건

새벽녘의 같잖은 외로움과 용기 때문이었다.

인별에 시집간다는 친구들의 피드가 수시로 올라오고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지인들도 럽스타그램을 하고 있었다. 내심 혼자 남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나도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게 하필 SNS로 알게 된 사람과의 만남이라니. 나도 참 급했던 모양이었다.


그럭저럭 순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나는 모난 이물질이었다. 연애에 딱히 관심도 없고 오로지 일 집 일 집만 하던 나였다. 굳이 하루 걸러 하루 범죄가 일어나는 무서운 세상에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돈 낭비고 시간 낭비며 감정 낭비라고 생각했다.


뭐, 솔직히 합리화도 조금 있었다.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까...라는 자기 비하적인 씁쓸한 마음도 밑바닥에 깔려있었다.


약속 장소에 다다랐을 때 가장 큰 불안에 휩싸였다. 일부로 시내 중심가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납치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SNS로 나눴던 그의 신상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보내준 사진이 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모든 '혹시'의 상황에 내가 실제로 놓일 수도 있다. 무서워졌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가지 못했다.


약속한 시간이 5분 지났다. 난 그 근처를 배회하면서 계속 고민했다. 머릿속에서 갖가지 범죄 상황이 떠올랐다. 그것도 끔찍한 것들로만. 심장이 불쾌하게 두근거렸다. 속도 안 좋은 것 같았다. 그대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 와중에 SNS로 메시지가 계속 왔다.

[어디예요?]

[저는 앞에 와있는데 도착하셨어요?]

[보는 거 무서우시면 다음에 보면 되니까 답장은 주세요.]

[다음에 볼까요? 저는 괜찮아요. 콧바람 쐬러 나왔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와 연락하는 한 달 동안, 난 그에게 내가 가진 마음의 병을 모조리 고백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더 편하게 털어놓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영원히 볼 일 없다고 생각했으니 불안장애도 대인기피증도 우울증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에게 받는 위로가 꽤 편하고 좋았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도 연락이 잘 되었고 내가 필요할 때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연락이 닿았다. 마치 날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은. 그래서, 나는 그를 만나기로 했던 것 같다.


약속시간 10분이 지나서야 나는 나를 불안한 상황에 던져보기로 했다.

어쨌든 사람을 만나려면 용기가 필요하니까.

사람이 많은 영화관 앞에 검은색 카디건을 입고 둥근 안경을 쓴 순둥순둥 한 인상의 사람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단은 사진에서 본 사람과 동일인물이다. 안심했다. 나는 도로가와 골목 안쪽을 연달아 살폈다.

납치할 때 필요한 봉고차나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봉고차도 없었고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는 거리에서 그를 불렀다. 그는 나를 보더니 움찔거렸다.

저 움찔거림은 뭘까. 실물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기분이 상했다. 그냥 이대로 인사만 하고 가버릴까 보다. 쳇.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아민씨 맞죠?"


아민씨 맞죠? 사진과 다르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나? 나는 떨떠름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늦어서 죄송해요. 길을 좀 헤매서..."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한 나의 첫 거짓말이었다. 그는 나와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걸었다. 아마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나를 위한 배려이지 않았을까 싶다. 가까이서 본 그는 생각보다 키가 컸고 사진보다... 귀여웠다. 뭐, 생긴 건 통과. 사실, 살짝 많이 내가 좋아하는 얼굴상이었다. 강아지와 곰 상의 중간.


우리는 약속한 대로 미리 공유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고기 굽는 걸로 시간을 때울 수 있었고 마음에 들었다면 고기 굽는 방식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몇 번의 소개팅을 해봤어도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말이 하고 싶었다. 그에게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번 이야기는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고 못 믿는 여자와 세상살이 물 흐르듯..이라는 좌우명을 가진 남자와의 뻔하디 뻔한 연애스토리입니다. 저는 저의 연애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태껏 만났던 분들에게 항상 듣던 말은 '피곤하다. 왜 그러냐. 집착도 정도껏 해라. 그만 좀 해라.'등등 부정적인 말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제가 지금의 남편과 그것도 SNS를 통해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을까요? 저도 다시 생각해보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정확한 사실 전달을 위해 퇴근한 남편과 연애 때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동상이몽이 많아요. 제가 더 사랑했다는 결론이 자꾸 나와 내일 저녁밥은 없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