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버티고 있어 줄래요?(2)
불안장애의 연애기 2
고깃집에 들어섰을 때부터 고민했다. 소파 쪽에 앉아야 할까 의자에 앉아야 할까.
다른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는다. 상대방을 조금 더 편한 곳에 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문제로 고민했다. 고깃집 테이블 사이사이가 상당히 좁았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도망갈 동선을 고민했다.
한순간 이 고민이 무색해졌다. 그는 자연스럽게 나를 안쪽으로 안내하고 본인은 의자에 앉았다.
"여기 차돌박이가 맛있다고 해서 여기로 정했어요. 메뉴판 보시고 다른 거 드시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난 메뉴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알아서 시켜달라는 말을 끝으로 나는 그를 경계했다.
순박한 얼굴 뒤로 추악한 면을 한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었어야지.
옅은 갈색빛이 도는 약간은 곱슬한 머리카락, 은색 테의 동그란 안경, 조금 뭉툭한 코끝, 사춘기 때 꽤나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 여드름 흉터, 계란형의 얼굴, 선명한 인중과 약간 내려간 입꼬리.
'어라? 쌍꺼풀이 한쪽에만 있네? 눈꼬리도 살짝 쳐지고 속눈썹도 되게 길다. 가까이서 보니 눈도 크네?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귀는 조그마한 게 참 말 안 듣게 생겼네. 음, 목도 길고 선도 곱네. 크으 안타깝다. 피부만 좀 좋았어도 인기 진짜 많았을 것... 잉?'
난 순간 깨달았다. 경계보다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런 내가 낯설어졌다. 외모지상주의이긴 하지만 첫 만남부터 얼굴을 뜯어먹진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누가 봐도 호감형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냥 내 취향일 뿐.
"차돌박이 3인분 하고 혹시 밥 드세요? 음료도 시킬까요?"
"저는 밥은 잘 안 먹어서, 음료는 사이다로 하죠."
주문을 받은 직원은 메뉴판을 들고 카운터로 사라졌고, 그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 나에게 건넸다.
나는 테이블에 수저를 두지 않는다. 깨끗하게 닦인 테이블이라도 세균이 많다는 말을 뉴스나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SNS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 그에게 말했던 내용이었다. 아, 그래서 매너랍시고 냅킨을 깔고 그 위에 수저를 놓는 대신 내 손에 건네줬던 모양이다. 난 뜨거운 물을 받아야 와 수저를 담갔다. 이것도 위생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여기까지 하면 보통의 다른 남자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하하하, 조금 유난이신 듯하네요."
그런 말은 들으면 난 그들이 원하는 예쁜 미소와 함께 '그런가요? 위생에 신경 쓰는 편이라.'라고 답하며 적당히 예의 갖춰 하루를 보낸 후 다신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아, 그렇게 하면 세균이 없어지는 거예요? 뉴스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면박 대신 내 행동을 궁금해했다.
그래서 나는 신이 났던 것 같다. 과하게 신이 났던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네, 설거지를 아무리 깨끗하게 한다고 해도 매일매일 수저를 삶지 않은 이상은 잔여 세제가 있을 수 있고 세균도 번식할 수 있는데, 그걸 아무 조치 없이 그냥 입에 넣었다가는 배탈이 나거나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 뚜껑을 열면서 이야기하고 다른 수저를 집었다가 놓았다가 했을 텐데 좀 찝찝한 것도 있어요. 그런데 먹기 전에 컵에 뜨거운 물 받아서 수저 담가놓으면 그런 걱정 없이 편하게 밥을 먹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위생적이니까 전 식당 와서 밥 먹을 때는 무조건 이렇게 하는 편이에요. 그쪽도 이렇게 해보세요. 처음에 조금 불편하긴 해도 혹시 모르는 거잖아요? 장염에 걸린 손님들 중에 우리만 살아남을지도? 그러면 얼마나 뿌듯한 마음이 들겠어요. 역시 그러길 잘했다! 이러면서.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하지는 않았는데...(조잘조잘조잘조잘)"
내 기억으론 상이 다 차려질 때까지 나 혼자 떠든 것 같았다. 그는 쉴 새 없이 입을 나불거리는 나를 말없이 응시했고 가끔은 피식거리면서 장단을 맞춰주기도 했다.
난 원래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선 과묵의 끝을 보여줬던 사람이다. 진짜, 진짜로!
차돌박이와 갖가지 반찬들이 테이블에 차려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집게를 잡았다.
"아, 제가 구울게요. 아민씨는 맛있게 드시기만 하세요."
"아니에요. 제가 구울게요. 저 고기 잘 구워요."
"진짜 괜찮아요. 친구들이랑 있을 때 제가 구워서.."
"아니! 제가 구울게요. 제가!"
"아민씨 그냥 제가 할게요."
"흠, 그럼 각자가 구워 먹죠?"
혹시 내 글을 봤던 분이라면 혹시 왜 이렇게까지 실랑이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답, 혹시 약을 묻힌 집게를 사용하여 고기를 집어 줄까 봐.
우린 결국 각자가 구워 먹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가 기분을 나빠하든 말든 난 상관없었다.
내 행동에 기분이 나쁘면 다신 안 보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참, 나도 이렇게 보니 진짜 나빴다.
마지막 식사까지 끝내고 계산서를 봤다. 생각보다 많이 나와 조금 놀랐다. 차돌박이 5인분에 차돌라면, 차돌 된장에 밥 1개, 음료수 1병에 칠만 원 가까이 나올 일인가. 차돌박이를 안 먹어봐서 모르겠다. 그저 난 돼지고기 무한리필 집의 노예였으니까.
"저, 반반 부담하는 걸로 하죠? 제가 계산할 테니까 그쪽이 저한테 보내주시는..."
"아뇨, 오늘은 제가 계산할게요. 정 부담스러우시면 디저트 사주시겠어요? 제가 커피를 좋아하거든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무 대가 없이 친절을 베풀리는 없으니 뭔가를 바라는 게 있을 거라고.
지극히 나의 편협적인 생각이었다.
"네, 알겠어요. 그럼 제가 아는 카페 있는데 그쪽으로 가요."
나는 그가 계산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누군가와 나란히 서있는 것도 불편할뿐더러 혹시 쿠폰이나 할인카드를 쓸 수도 있다는 생각에 편하게 하시라고 나와준 것이었다. 잠시 후 그는 뒷주머니에 지갑을 꽂고 가게를 나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 입구에서 주문을 하고 우리는 문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가 완성되는 동안 방금 먹은 차돌박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TV에서 하도 차돌박이 맛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생각보단 기름기도 많고 별로였던 것 같아요. 차돌라면도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었고요."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가게를 찾고 비싼 돈을 들여 사준 사람에게 할 불평은 아니었지만, 그가 쓴 돈이 아까웠다.
"그러게요. 저도 차돌박이보다 그냥 돼지고기가 나았겠다 싶었어요. 전 돼지 파라서."
"어? 저도 돼지 파에요. 소고기, 뭐 남이 사주면 감사히 먹을 텐데 전 소고기보다는 돼지가 더 좋아요."
"그럼 다음에는 돼지고기 먹으러 가요."
내려간 그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다.
"음, 평소에 잘 웃는 편은 아니신가 봐요. 웃는 얼굴이 조금 경직되어 있으신 것 같은데?"
난 이게 문제다. 나도 얼굴 평가받는 걸 싫어하면서 꼭 눈에 띈 특이점을 말로 표현해야 직성이 풀린다.
"아, 죄송해요! 기분 나쁘셨죠."
"아니에요. 저 솔직히 잘 안 웃어요. 웃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들거든요. 항상 의식하면서 웃다 보니 경직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되게 관찰력 좋으시네요."
이런 느낌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머쓱해하는 얼굴이 내 앵글로 들어와 자동으로 셔터가 눌러졌다. 필터가 장착된 것처럼 주변이 환해졌다. 웃을 때마다 입꼬리가 떨리고 눈가에 주름이 생기는 그가 점점 줌인되면서 나를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이게 그 유명한 콩깍지일까.
"저도 제가 웃는 모습을 안 좋아해요. 팔자주름이 더 진해지고 광대도 너무 튀어나오고 어릴 때는 하회탈이라는 별명도 있었어요. 화장 지우면 눈도 되게 작아지거든요."
"아, 안 그래도 아민씨 왼쪽 팔자주름이 좀 선명해졌어요."
나는 곧바로 거울을 꺼내 팔자주름에 낀 파데를 톡톡 두드렸다. 겨울이라 얼굴이 많이 건조해진 탓이다.
벨이 울렸다. 나는 일어서려는 그의 어깨를 꾹 눌러 앉히고 벨을 집어 카운터로 갔다.
콩깍지와 '혹시'라는 생각은 별개다. 커피를 받아 들고 테이블로 가 앉았다.
"아 저 커피 마시기 전에 정리할 게 있어서요."
나는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아, 진짜 안 주셔도 되는데."
"아니요. 드려야 제 마음이 편해서."
그는 잠시 테이블에 올려진 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지갑에 넣었다.
"그리고요. 실례가 안 된다면... 주민등록증 좀 볼 수 있을까요?"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이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거면 다 괜찮아요. 원하신다면 제 것도 보여드릴게요."
지갑을 넣으려던 그의 손이 꿈틀거렸다. 난 분명히 봤다. 지갑 왼쪽 투명한 덮게 부분에 그의 운전면허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