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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의 전쟁, UX 취업 준비는 과연 어디로?

전장을 모른 채 전략을 세우는 사람들

by UX민수 ㅡ 변민수

현실의 단면에서 시작되는 질문


예나 지금이나 UX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비슷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퍼소나는 몇 개나 만들어야 할까, 저니맵은 어느 정도 디테일이 적당할까, 학원에서 배운 리서치 방법론을 UX 포트폴리오에 얼마나 녹여야 할까. 대학원을 가야 할지, 코딩을 배워야 할지, 복수전공이 도움이 될지에 대한 고민 등이 이어진다.


질문은 성실하고 준비는 치열하다. 그러나 가만히 듣다 보면 묘한 공통점이 드러난다. ‘현업에서 실제로 어떤 싸움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감각은 희미한 채, 준비의 완성도만 높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전장을 상상하며 지도 위에서 전략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는 모습과 닮아 있다.


이 모습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UX 취업 준비 방식이 가진 구조적 특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준비의 깊이를 실력으로 착각하기 쉽고, 정교한 이론이 곧 실전 능력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보다 복잡하고 거칠다.



지상담병이라는 오래된 이야기


‘지상담병(紙上談兵)’이라는 고사가 있다.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다는 뜻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조괄은 병법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책으로는 누구보다 뛰어났고 이론으로는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실전 경험이 없었다. 결국 그는 전장에서 이론에만 의존해 군을 이끌다 참패한다.


이 고사는 지금의 UX 취업 준비와 묘하게 겹쳐 보인다. 우리는 병법을 배우는 데에는 누구보다 열심이다. 각종 방법론을 익히고 프레임워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완벽한 프로세스를 설계하려 한다. 문제는 그 병법이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이론은 충분하지만 감각은 부족한 상태. 바로 그 간극에서 많은 혼란이 시작된다.



방법론이 완성도를 보장하지 않는 이유


UX라는 분야는 특히 이론의 유혹이 강하다. 퍼소나, 저니맵, 서비스 블루프린트, 사용성 테스트, 리서치 프레임워크 같은 도구들은 명확한 절차와 구조를 제시한다. 이를 익히면 마치 준비가 완성된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 해결의 모든 과정이 정해진 순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착각도 생긴다.


그러나 기업의 UX 조직은 교과서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대기업일수록 업무는 세분화되어 있고 ‘사용자 경험 전체’를 설계하는 이상적인 역할은 제한적이다. 리서치는 외주로 나가기도 하고, 실무자는 일정과 개발 리소스라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타협한다. 조직의 구조, 산업 도메인, 비즈니스 우선순위에 따라 UX의 정의 자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의 이상적인 UXer 상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 기준에 맞춰 스펙을 채워 넣는다. 완벽한 방법론과 이상적인 프로세스를 갖추면 어디서든 통할 것이라 기대한다. 전장을 알지 못한 채 병법을 완성하려는 태도다. 문제는 현실의 조직이 이상을 실현하는 장소가 아니라, 제약 속에서 최적을 찾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실전이 만들어내는 감각


나 역시 연구실에서 산학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실무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인하우스 UXer가 되고 나서야 전혀 다른 풍경을 보게 되었다. 왜 이렇게 일이 돌아가는지, 왜 이상적인 해법이 선택되지 않는지, 왜 때로는 UX보다 다른 의사결정이 우선되는지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UX는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사실을. 현실의 프로젝트는 시간에 쫓기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완벽한 사용자 경험보다 조직의 생존이 먼저 고려되기도 한다. 게다가 그게 마냥 그르다고만 할 수도 없는 수많은 맥락과 국면들. 개발자와의 협업, 제한된 리소스, 예측할 수 없는 변수 속에서 의사결정은 계속 수정된다. 이 과정 속에서만 보이는 판단의 기준과 우선순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작은 회사든, 에이전시든, 스타트업이든 실제 전장에 한 번 나가보라고 강력히 권한다. 3개월이라도 좋다. 아니 뭐 한 달도 좋다. 일정에 쫓겨보고, 개발자와 부딪혀보고, 의사결정의 현실을 직접 경험해 보는 일. 그 경험이야말로 죽어 있던 이론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이론은 머리에 저장되지만, 경험은 몸에 남는다.



준비의 방향을 다시 묻다


이 글이 이론을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병법은 필요하다. 다만 병법은 전장을 전제로 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이론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이지, 현실을 대체하는 세계가 아니다.


UX 취업은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임이 아니다. 실행 속에서 방향을 수정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방법론에 매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더 공부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한 번 부딪혀보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조괄의 실패는 병법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병법을 현실과 연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는 수많은 방법론과 프레임워크를 배우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배우는 이 병법은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전장을 한 번이라도 밟아본 적이 있는가. 혹시 우리는 지금, 종이 위에서만 UX를 논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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