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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궐리버 Mar 31. 2023

때로는 가장 따뜻한, 때로는 가장 우울한 색

블루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치기 어린 날들이 있었다. 그때 내가 종종 내비친 붉은색에 반대되는 색은 단연코 푸른색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다고 믿었던 여린 마음들에 물든 색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푸른색을 좋아한다. 그에서 오는 청량함과 따뜻함, 그것은 종종 물에서부터 느껴지는 색채와 감정이었다.


글을 쓰는 이 와중에도 세탁기가 마저 다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는, 종종 빨래방의 드럼 세탁기에서 돌아가는 세탁물들과 그 찰랑이는 물을 멍하니 보며 시끄러운 마음들을 씻어내리기도 한다. 또한 해변을 거닐다가 어디 목 좋은 곳에 앉아 바라보는 푸른 바다를 보며 나를 잠시 환기하기도 한다. 특히나 나는 제주도와 거제도의 그 맑고 때 묻지 않은 투명한 바다도 좋고,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을 안겨주는 동해 바다도 좋아한다. 한편 내가 쓴 '블루'라는 곡의 앨범 커버로 담은 수족관을 보며 울렁이는 푸른빛에 갇혀 잠시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푸른빛에서 느껴지는 감정에는 따스함도 있고, 위로도 있고, 환상도 공존한다. 마냥 좋았을 것만 같은 의미들을 나열하며 느낀 감정에는 사실 어떠한 결핍도 보인다. 청춘이라는 이름이 가진 푸르름은 종종 따스함도, 위로도 없는, 어쩌면 정말 환상 같은 때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그 환상에 현혹되어 마냥 행복해하던 나날들을 보내다가도, 한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현실에 당도했을 때 그 비친 내 모습은 생각보다 초라했던 것이다. 그 환상은 사실 젊음을 맹신하고 간과했던 나의 욕망 어린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나잇값이라는 말을 종종 들으며 떠올린 그 의미에는 그 시기에만 가질 수 있는 어떤 가치들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에 충실하자는 것은 지금 당장 나에게도 필요한 덕목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예전의 치기 어린 나에게는 마치 진취적이지 않은, 막말로 젊음 하나 믿고 나댄 날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걱정이 그다지 없이 패기 하나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고 살아야만 하던 날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청춘을 소비하며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로 나의 젊음을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울은 이내 나의 기본값의 감정이 되어,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마저 즐기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푸른색을 참 좋아하던 나의 그 '블루'는, 영어 단어 'blue'의 우울함과 맞닿아 있었다. 그 블루를 해소하기 위해 나는 다시 찰랑거리는 세탁물에 내 블루를 넣어 돌리고, 푸른 바다를 찾아가 내 블루를 실어 보내고, 투명하게 부서지는 수족관의 유리벽에 내 블루를 물들이곤 했다. 그 시기의 나는 참 많이 우울했지만, 남이 보기엔 그다지 내 우울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난 매번 그 청춘의 시기를 누구보다 진취적으로 보내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회적 이미지와 내 실제 감정의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은 한없이 깊은 심연으로 더 빠져들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도 잘 살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나는 스스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누군가가 느끼기에는 본인이 꿈꿔보지 못한 삶을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함에도 나는 꿈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군가에게 이상적인 삶이 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값진 것일까, 과연 그것이 지금껏 내 청춘과 맞바꾼 경험들이 정작 나의 꿈을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되었을까. 사실 내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을 보여주거나, 누군가의 선망이 대상이 되고, 무언가를 이루어 타의 모범이 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들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그 용기를 내가 보여주었고, 자신이 못다 한 작은 꿈들을 내가 하나씩 바라고 해내왔다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실행해 나가는 그런 열정 하나는 누구보다도 투명하게 보였을 것이다.


노랫말의 끝은 결국 우울함에 빠진 채 잠들고 모든 내 삶이 우울로 물들어버린 결말이다. 내 청춘의 자극에서 오는 역치가 높아진 탓에 나는 우울감에 빠졌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살았는데 뭐가 우울하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걱정들이 나를 우울로 빠지게 하기도 한다. 허나 내가 하나 깨닫고 가고 싶은 것은, 생각보다 내 청춘의 일련에는 열심히 살았던 삶과, 내가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삶,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내디딘 불확실함 속 용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청춘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길 바랄 뿐이다. 나 스스로가 그 청춘을 허투루 보냈다고 생각하게 두고 싶지 않다. 아직도 나는 과거에 남은 미련이 있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내가 가진 청춘의 단락을 잊지 못한다. 그 내게 스쳐 지나간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내 꿈을 찾아가는 여정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청춘은 때론 가장 따뜻했던 날이었고, 때론 가장 우울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당신의 청춘은, 당신의 블루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다시 살펴본 나의 청춘은 불꽃에서도 가장 온도가 높은 푸른 불꽃이지 않았을까 한다.




https://youtu.be/9cl-biuwJuI


블루


그 좋다던 푸른 날 나는

병든 마음을 안고

뭐에 미련이 남는지 매일

고독을 품네


철이 없던 날들의 나는

나의 길을 찾으려

타오르던 열망을 현실로 짓밟네


언제부턴가 난 혼자가 되어

손틈 사이로 흘러나가는 청춘들을

넋 놓고 놓아두었어


나를 위해 난 뭘 했었지 도대체

이미 모래로 된 희망은 무너져 내리는데

걷잡을 수 없는 방황은 나에게

깜깜한 새벽에 갇힌 채 허공을 헤집게 하네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지

나의 그림자는 길어져만 가

오늘 밤도 뜬눈으로 지새다

지쳐서 겨우 나는 잠이 들었네


오늘 밤도 뜬눈으로 지새다

지쳐서 겨우 나는 잠이 들었네

I’m in blue even with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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