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의 BG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빈스키 Sep 26. 2022

벅찬 숨을 삼키며 달린다는 것

The Score-Higher

마라톤에 참가했다


최근 여러 고민으로 복잡다단한 심경을 쓰게 삼키던 중이었다. 이대로 씁쓸함에 몸을 맡겼다간 큰 무기력에 휩쓸려버릴 것만 같아 스스로 특단의 처방을 내렸다. 


저하되는 체력을 보강해야겠다는 생존의 욕구, 심신의 건강을 위한 일상적 루틴의 필요, 성취감 획득을 위한 단기적 목표 수립의 의지.


이 욕구와 필요와 의지에 친구의 영업이 불을 지른 결과, 쨍쨍하던 토요일, 난생 처음으로 단거리 마라톤에 참여했다. 참고로 나는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숨이 가쁜 느낌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뻐근한 근육통을 견디는게 나았다. 그럼에도 불구 러닝을 해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한번쯤은 이 나약한 육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여보고 싶다는 일종의 자학적이고도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참여한 마라톤인 애니멀런의 방식과 취지가 좋았던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애니멀런이란? 

러닝포인트에서 진행하는 비대면 마라톤 대회로, 수익금의 일부를 멸종위기 동물 보호를 위해 기부한다. 


나에게 주어진 거리는 3.29km. 본 코스를 뛰기 전 몇번의 연습 러닝을 거쳤고, 토요일에는 26분에 걸쳐 코스를 완주했다! 성인기준 걸음의 평균 시속이 4km인 것을 감안했을 때, 나는 걷는 것보다 약 두 배 빠른 속도로 완주한 셈이다. 이 짧은 거리조차 힘들어했을지언정 끝까지 달려냈다는 사실이 꽤나 뿌듯해서, 성취감을 시원한 물과 함께 들이켰다. 



장하다, 장해!


숨가쁘게 달리다 보면 느껴지는 것들


러닝은 지구력 향상에 더없이 효과적인 운동이다.

러닝을 하다보면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내가 얼마나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 1km? 2km? 막연하게 상상하던 거리감이라는 것은 달리면서 느껴지는 체력적 한계를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다가온다. 아까보다 조금 더, 목표거리까지 조금 더 달려보려면 맥박과 호흡을 느끼고 조절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실체 없는 한계를 물리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한계점을 오롯이 나의 의지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초보 러너로서 느꼈던 러닝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숨이 벅차고 다리가 무거워지는 정도와 반비례하여 머릿속이 가벼워진다. 모든 에너지를 물리적 컨디션 조절에 쓰기 때문에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렇게 정신 빼놓고 뛰다보면 목표거리를 달성했거나, 목표지점을 달성했다는 알림이 울린다. 오히려 목표치를 예의주시하며 달릴 때보다, 오로지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을 때 가뿐하게 달성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행위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 사실상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마인드셋은 이것 아니었을까? 


혼자 뛰는 것이 아니다. 

요 며칠 강둑을 따라 달리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낮이던 밤이던, 평일이던 주말이던, 언제나 운동하는 사람을 잔뜩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때때로, 어떤 정신적 자극을 받고 싶을 때 새벽시장을 방문하곤 한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것만 같은 어두운 새벽에도 바쁘게 움직이는 상인들과 모습, 시장의 활기를 마주하고 나면 묘하게 힘을 받는데, 강변의 러너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다. 다들 이렇게나 활기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구나! 건강한 자극, 그리고 에너지와 활력를 나눠받는 기분이 든달지. 


트랙을 터덜터덜 걷다가 좀비처럼 뛰는 사람들은 런데이하는 사람들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일까, 다른 러너들과 마주치면 괜한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 제각각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한계와 싸우고 있는 전사들이 아닐까 하는 N적 감상으로 전우애를 가져보기도 하고! 



Get Further, Get Higher

완주기록증을 발급받으면서 내친김에 10월 마라톤에도 참가 신청을 해버렸다. 이번에 주어진 거리는 4km. 조금씩 달려야 할 거리가 늘어난다. 나는 일주일에 최소 세 번 이상, 가급적이면 격일에 한번씩 러닝을 해보기로 했다. 도전을 결심한 스스로에게 호기로운 응원가를 들려주면서. 


상처나고 멍들어도, 뼈가 부러지고(!) 피맛이 나도 영혼의 꿈을 위해선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위로 올라갈 것이라는 이 곡은 그야말로 전사의 노래가 아닐까. 가사 속의 '나를 끌어내리려 하는 그들'을, 나는 제 3자가 아닌 내면의 부정적인 것들로 정의하려고 했다. 사람은 때론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보다 스스로에 의해 무너지고, 상처입곤 하니까. 나는 골절까지 감행할 자신은 없다만(?) 기꺼이 달려보려고 한다. 조금 더 멀리 달려보기 위해 벅찬 숨을 들이마시던 고통스러운 쾌감을 기억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잠깐만 혼자 춤을 춰도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