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말 잘 들으며 하라는 대로 살았더니 현실은?
얼마 전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서 진기한 풍경을 보았다.
호텔 프런트의 현지인 경비 아저씨가 너무나 공손하고 정성스럽게 출입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동남아에선 상대적으로 돈 쓰는 여행객이 대접받으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풍경이 진기했던 이유는 그게 아니다.
딱 봐도 관광객인 한국인이 들어오던, 청소복을 입은 현지인 청소부가 들어오든, 남루한 차림의 현지인 꼬마가 들어오든, 경비 아저씨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성스럽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누군가 소파에 앉으면 선풍기를 옮겨 그 사람에게 바람이 가게 하기도 했다. 이 풍경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한 편으로는 그 경비원에게서 나 자신의 일면을 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때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일면이다.
나는 살면서 10번 넘게 일자리를 바꿨다.
단순 아르바이트일 때도 있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을 때도 있었고, 내 사업을 할 때도 있었다. 주유소, 택배 상하차, 커피 로스팅, 스피닝 강사, 봉사협회, 광고 회사 등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으면 ‘사기 치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로 서로 연관성이 없는 분야들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까지 다양한 일들을 거쳤다. 이 수상쩍은 잡탕 경력은 대학을 가지 않아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군대 2년, 은둔형 외톨이 생활 1년 반을 제하고도 7년 가까운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 내내 나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일했다.
주유소에서 소매에 기름을 묻혀가며 일할 때도, 테헤란로 빌딩에 내가 만든 회사명이 박힌 간판을 걸어놓고 내 딴에는 큰돈을 만질 때도 나는 똑같았다. 그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대한 집중하며 그 일을 좀 더 잘하고자 노력했다. 운이 좋게도 일을 하면서 돈 때문에 걱정을 해본 적은 없었고,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때는 몰랐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아예 시작조차 안 하거나 책임감을 가지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또래들을 보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은 돈을 전부 잃어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을 때 그 누구보다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에 200 ~ 300만 원을 벌어서 언제 돈을 모으고 서울에 있는 집 하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감히 돈이 없는데 결혼을 꿈꿀 수 있을까? 그렇게 생애 처음 친구들이 가졌던 노후에 대한 불안에 공감했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전 재산을 털고 때로는 빚까지 내어 자산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지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고 현재의 노동을 통해 미래가 더 나아진다는 생각이 들어야 자신의 일에서 자부심과 책임감이 생긴다. ‘받은 만큼만 일한다.’고, 어떻게 보면 조금 계산적인 태도를 취하는 지금의 내 또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기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는 수시 세대인 내 세대부터는 인생에서 처음 겪는 가장 큰 경쟁인 대학입시에서부터, 개개인의 노력과 탁월함의 척도로 여겨지는 대학 간판이 사실은 부모의 재력과 관심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성인기를 겪으며 더 많이 쌓이며, 결국 노력과 결과는 별개라는 인식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된다. 부모의 조력으로 좋은 대학을 간 청년들조차 무력감을 느낀다. 계층 상향 이동이 가능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부모보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기껏해야 대부분 부모와 같은 계층을 유지하는 정도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부모가 원하는 인생의 정석 코스를 착실히 따라도 그 길에서 조금만 어긋났다간 부모보다 못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와중에 주식투자나 코인, 유튜브 등으로 부를 쓸어 담는 사람들이 보이니 무력감은 더 깊어진다.
이 글에 자신의 이야기를 꼭 넣어달라고 한 내 친구를 예로 들어보려고 한다. 그 친구는 직장 생활 경력이 올해로 7년 차인데, 올 초에 대리로 승진하며 연봉이 대폭 올라 이제 3500을 받는다고 한다.
3500을 12로 나누면 290으로 300에 가깝지만, 세금을 떼고 실수령하는 금액은 240만 원대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최저임금 실수령액이 170만 원 대니 70만 원 차이가 나는 건데,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70만 원에 몸과 마음에 족쇄를 씌운 꼴’이라고 한다.
매달 매년 정해진 사업 매출을 너무 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맞춰야 한다는 압박, 이 친구가 말하길, 회사에 할애하는 시간과 책임감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도 그렇다.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는 그 친구의 월급이 240이라니.
물론 친구의 업계가 박봉인 문화 예술 계통이라고는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참고로 친구는 중소기업 대출이나 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미디어 대기업의 계열사에 다닌다).
심지어 그 친구가 ‘워라밸’있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다른 많은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6시에 정시 퇴근하면 ‘칼퇴’ 소릴 들으니 일이 일찍 끝나도 20분에서 40분 정도 늦게 퇴근하며, 자주는 아니라지만 야근 수당 없이 새벽까지 야근도 한단다.
주말에도 업무전화를 받을 때가 많고, 지난 7년 동안 이직할 때 일주일과 가족상을 치렀을 때 빼고 단 한 번도 3일 이상 붙여서 휴가를 쓴 적이 없다고 한다.
친구가 속한 사업본부가 겉보기엔 우아하지만 사양산업에 속해 그런가, 정규직이 나가면 인력 보충을 최대한 미루고, 그럭저럭 돌아가면 뽑지 않는 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세 명분 일을 한 명에서 해야 하는 구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는 차라리 그게 낫다며, 힘들어하면서도 그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
그 친구의 이전 회사는 개인 사장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이었는데 브랜드 자체는 어지간한 그 업계 큰 회사들만큼 알려진 곳이라 신입을 뽑을 때 경쟁률이 높았다고 한다.
그걸 뚫고 힘들게 입사했는데 초봉은 2천만 원 후반대였고, 알고 보니 신입을 정부 지원금으로 뽑아놓고 지원금 보조 기간이 끝나면 갈아치우는 게 다반사인 회사인데다, 그렇게 뽑아놓은 신입이 좀 의욕 있고 능력이 보인다 싶으면 고인 물들이 자기 자리를 뺏길까 봐 악착같이 물고 뜯어 물리적인 폭력만 쓰지 않을 뿐 사람을 반 죽여 놓는 악명 높은 회사라고 했다.
너무 들어가기 힘든 회사였기에 정부 지원 기간인 1년이 지나고도 2년을 더 물고 뜯기며 버텼지만 나올 때쯤엔 이미 정신 상태가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 후로 지금 회사에서 3년이 지났지만, 이 친구는 아직까지 밤에 소리를 지르며 분노하다 깨는 야경증에 시달린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답답하지만 그래도 전 회사와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없기에 참고 다닌다고 한다.
“다른 곳에 갔다가 전 회사처럼, 더 나쁜 곳을 만날까 봐 두려워.
다닐 수 있는 데까지 일단 여길 다녀보려고.
솔직히, 전 회사에서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져서 다른 더 좋은 일을 찾아볼 용기도 여유도 없는 것 같아.
어쨌든 매달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냥 다니는 거지 뭐.”
이렇게 말하는 이 친구가 학창 시절 남들보다 노력을 덜 했던 것도 아니다.
배치 고사 1등으로 중학교에 입학해 내내 전교 1등을 하다 특목고에 진학했고, 거기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인 서울에 관련 전공으로 가장 전통 깊은 학과로 진학했다.
하고 싶은 전공을 찾았다지만 입시 준비는 다른 특목고 학생들과 똑같이 힘들게 했다.
새벽에 일어나 이르면 11시 반까지 공부하다 취침, 시험 기간엔 새벽 3시까지 공부하고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3년 내내 했다.
이 시대에 사무직으로 취업하는 대다수의 젊은이가 그러하듯 토익점수는 900점 대며, 취업을 위한 교육과정 이수와 대외활동으로 스펙을 쌓았다.
그 후 취업도 그 친구 딴에는 최선의 정석 코스를 밟았다.
그 학과와 연관이 깊은 업계라 어느 회사든 높은 자리에 같은 과 선배가 한두 명은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까진 놀았다 치더라도 초등학교 3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초년은 놀았다 치고 취업 준비하는 3, 4학년 기간만 단순히 계산해도 11년이다.
첫 취업할 때를 기준으로 보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새벽잠 줄여가며 공부해 미래에 투자한 셈이다.
기억도 나지 않을 유년기를 제하면 그 친구 인생에 순수하게 여유를 즐겼던 때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2년 정도였을 거다. 내가 좀 극단적인 예시를 든 걸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스펙을 쌓고, 취업을 위해 성적을 잘 받으려고 대학 전공과목 인강을 듣고, 학원 다녀가며 공부한다고 들었다.
친구는 본인은 모아놓은 돈이 겨우 6천만 원 초반대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30줄에 접어들어 앞으로 내쳐질 위험 없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봤자 15년인데, 1년에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은 아무리 허리띠를 조여봐야 1700만 원 정도이며, 보수적으로 계산했을 때 3억 좀 넘는 돈을 가지고 40대 중반에 은퇴를 해야 한다.
그 사이 모든 물가는 오를 것이며, 그 돈으로는 서울 아파트는 꿈도 못 꾸는데, 최소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지방에 집을 산다고 해도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으니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노인이 지나치게 많은 역삼각형으로 변하고 있는 대한민국 인구 그래프를 떠올리면 더욱 막막하다.
지금 겨우 3500을 벌면서도 20% 가까이를 국민연금과 세금으로 떼이는데 국민연금은 내 나이 또래 중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앞으로 부양할 노인이 더욱 많아지니 월급에서 제하는 금액도 더 커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평생을 쉬지 않고, 어른들 말 잘 들으며 하라는 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자칫 삐끗하면 빈곤 노인이 되게 생겼으니 청년 입장에선 답이 없는 세상이다.
나는 이 친구처럼 살아오지 않았기에 그의 고민을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그 심정이 이해는 갔다.
미래가 나아질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면 삶이 얼마나 답답할까?
어떻게 생각하면 나같이 제멋대로 사는 놈은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되어도 다들 놀라지 않고, 길거리에 나앉아도 동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애초에 어른들 말을 듣지 않았고 정해진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스템 안에서 정해진 길을 잘 밟아온 사람들은 다르다.
어쩌면 그들은 보물섬으로 모험을 떠나는 삶이 아닌, 물려받은 농지를 잘 가꾸어 때가 되면 곡식을 수확하는 안정적인 삶을 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나 같은 이상한 놈도 어딘가 쓸데가 있겠지만 내 친구같이 규칙을 잘 따르는 친구들도 꼭 필요하다.
만약 그들이 선택한 안정적인 미래를 얻을 수 없는 세상이라면, 무언가 뿌리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가령 입시 문제부터 노동시장 구조 문제, 사회적 인식개선 문제 등 이 지면에 다 쓰지 못할 수많은 문제들 말이다. 어떻게 삶을 개척해나가든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택배기사로서 내 일을 사랑하지만, 모든 택배기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