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까이하기엔 멀고 멀기엔 너무 가까운 아줌마들의 관계
바야흐로 새 학기가 도래하였다. 개학과 입학을 앞둔 엄마들은 여로 모로 몸도 마음도 분주할 것이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도 제법 컸다고 작년과 달리 제법 의젓한 모습으로 등원 차량에 올라타는 아이를 보면 감회가 새롭긴 하다.
아이를 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아니 더 이르게는 문화센터처럼 아이를 데리고 사회적인 공간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이제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닌 내 아이의 ‘엄마’로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인간관계를 맺는 대상 또한 ‘누군가의 엄마’ 일 것이다.
사실 나는 이전 문화센터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내 아이 친구의 엄마를 꼭 사귀고 싶었다. 그때는 정말 외로움에 사무치던 시기인지라 남편 아닌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고 이 외로움을, 이 힘듦을 공유하고 싶었다. ‘아이’의 친구이지만 사실 ‘나’의 친구를 만들고 싶었던 셈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런저런 기관을 거치면서, (고작 어린이집과 유치원이지만) 어쩌면 그런 사이는, 그러니까 아이 친구 엄마이지만 나의 친구이기도 한 그런 애매모호한 관계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말이다.
이야기에 앞서 이것은 그저 나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인 생각이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어이구, 이래서 집에서 애만 키우는 엄마들은 쓸모가 없다니까.’와 같은 생각은 지양해 주길 바란다.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무시받을 사람은 없으니까.
일단, 처음엔 모든 아이 친구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외로웠고 아이도 외동으로 가족계획을 세웠던지라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놀이터에 가면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노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가기 전까지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면서 근처 아이 또래의 친구가 나타나면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럼 여기서부터 엄마의 성향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일단 오픈 마인드이고 나처럼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스타일의 사람은 나의 인사를 받은 뒤 간단한 인적사항을 물으며 (주로 아이에 대한 내용)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시기에는 아이에 대한 모든 것들이 처음이니 서로 궁금한 것도 많고 듣고 싶은 정보도 많다.
특히 아이들끼리 잘 놀기 시작하면 금상첨화. 그렇게 종종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게 되다 보면 어느새 말하지 않아도 놀이터에서 기다리는 사이가 된다. 그러다가 함께 어린이집을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른 반응은 내가 그렇게 먼저 질문을 하였을 때 (주로 “몇 개월이에요?”가 첫 질문이다) 대답을 해준 뒤 나에게 전혀 질문을 하지 않고 멀뚱히 아이만 보는 경우다. 생각보다 그런 경우가 아주 많은데 돌이켜 보면 그들은 둘째 엄마라서 이미 이 관계의 불확실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거나 원래부터 성격이 조용한 경우도 있다. 처음엔 이런 분들과의 만남이 상처로 다가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였고, 나 또한 그렇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놀이터에서 가끔씩 이어지는 관계는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면서 주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관계로 발전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마다 매일 얼굴을 마주치게 되니 자연스레 인사를 하게 되고 또 같은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끼리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놀게 되면 “혹시 여기 어린이집 다니세요?” 물으며 말을 트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점점 친해지게 되면 이런저런 신변잡기 적인 이야기들을 하게 되면서 수줍게 번호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조금씩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저 놀이터에서만 잠시 만나서 스몰토크만 하고 헤어지던 사이에서 전화번호를 묻고 개인정보를 아는 사이가 됐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가끔 만나는 아이 친구 엄마’ 수준을 벗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서로 번호를 주고받은 뒤 상대방의 카톡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려고 할 것이다. 아이 엄마 한 명과 번호를 나누는 것은 심플하고 깔끔하다. 먼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카톡 하면 상대방이 거기에 어떻게 응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인원이 3~4명일 경우에는 관계가 좀 복잡해진다.
일단 누군가가 주도적으로 단톡방부터 만들 것이다. 처음엔 서로 예의를 차리기 때문에 카톡방이 생각보다 점잖고 (?) 조용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물꼬를 트기 시작하면 조금씩 농담을 던지기 시작하고, 이야기의 주제는 이제 ‘아이’에서 벗어나 조금씩 ‘나’에게로 옮겨갈 것이다. 몇 년 동안 ‘아이 엄마’에서만 머물렀던 나의 존재가 나와 비슷한 존재를 만나 다시 ‘나’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단톡방은 이야기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척 재밌다. 아이의 이야기만 하던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저 아이 엄마로만 알고 있던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니 그저 신기하고 흥미롭다. 간간히 예의를 차리며 시작한 카톡은 조금씩 늘어나게 되고 분명 방금 전까지 어린이집 마치고 놀이터에서 아이들 놀리면서 수다를 왕창 떨었는데도 할 말이 많이 남아서 자기 직전까지 카톡방을 떠나지 못하게 된다.
나중에는 아이를 데리고 만나는 것보다 그냥 엄마들끼리만 만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사실 모두가 기다리고 또 원하던 만남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기 위해 전화번호를 공유하였을 것이니까. 나 또한 그런 만남을 무척 기대하였고 실제로 엄마들끼리만의 모임을 가졌을 때의 두근거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단순히 아이엄마의 친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관계가 시작이 된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의 성격과 성향이 다 다르듯이 모든 엄마들의 성격과 성향이 다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는 사실 그저 아이로 이어진 관계이기에 너무나 쉽게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처럼 얕고 가볍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