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은 꼭 오는 가정의 달이 돌아왔다. 바로 5월.
결혼 안 한 아가씨 시절에는 5월이 그냥 꽃 보러 다니고 데이트 다니기 좋은. 그저 바람 살랑살랑 부는 따뜻한 봄날의 여유와 같았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지금은 5월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돈을 점점 빨아들이는 커다란 블랙홀처럼 느껴진다.
5월 돈 나가는 첫 번째 구멍으로는 일단 어린이날이 있다. 사실 아이가 4살까지만 해도 어린이날이 무엇인지, 뭐 하는 날인지 전혀 모르는 시기이다 보니 대충 우리가 사주고 싶은 저렴한 장난감 하나 사주며 치워버렸는데 5살이 넘어가면서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게 정확해지다 보니 점점 씀씀이가 커지게 되었다.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하는 장난감을 보면 싼 거는 4만 원에서 비싼 거는 10만 원까지 넘어가는데 기본적으로 4만 원 이상은 모두 넘으니 가격을 볼 때마다 나는 과연 이 금액이 맞는지 눈을 몇 번이나 끔뻑거린다. 솔직히 말해서 장난감이 그 정도의 퀄리티를 갖고 있다면 그래, 어쩔 수 없지 하고 사줄 수 있으나 어른의 입장으로 봤을 땐 가격 대비 너무나도 조잡해 보이고, 무엇보다 이 장난감을 가진다고 해서 아이가 몇 달을 놀지도 않을 걸 뻔히 알고 있으니 (몇 달이 뭐야 며칠 갖고 놀 것이다) 사주면서도 솔직히 돈이 너무너무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저렴하게 중고 장난감 몇 개를 구매해서 아이에게 안겨줬는데 이게 장난감이 오래되다 보니 아이가 잘 갖고 놀다가 로봇 팔 하나가 덜렁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거나 장난감 박스 그림에는 분명 칼이 있는데 막상 안을 열어보니 칼 하나가 없는 상황이 더러 발생하니 이게 참.
어쩔 수 없이 어린이날에는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는데 참 웃긴 게 막상 장난감을 살 때는 돈이 아깝다가도 아이가 장난감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또 ‘그래, 이거 하나 사주는 게 뭐 어렵다고.’ 생각하며 흐뭇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얄팍해진 지갑은 외면한 체.
그렇게 어린이날이 지나자마자 다가오는 것이 바로 어버이날.
그래, 우리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을 위해 하루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어버이날만 되면 이렇게 용돈을 드리는 날로 변한 건지. 양가 부모님들께 사이좋게 용돈 드리고 카네이션 사드리고 식사까지 챙기다 보면 정말 하루에만 쓰는 돈이 족히 100만 원은 넘을 것이다.
분명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맞는데 부모님들께 용돈 드리고 난 뒤 더욱 홀쭉해진 주머니를 보면 왜 이렇게 내 기분이 씁쓸해지는 것일까.
다행히 부모님들께서 누구네 집 딸은 얼마를 줬다더라, 뭘 사줬다더라.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지만.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인 시댁 형님들과 어디 여행을 다녀오셨다든지. 얼마를 용돈으로 받았다고 말씀을 나에게 넌지시 하실 때마다 일하지 않는 전업 며느리의 고개는 절로 숙여지게 된다.
그렇게 구멍이 숭숭 난 지갑을 조금 채우려고 하면 또 스승의 날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다행히 아이가 스승의 날에 선물을 받지 않는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이제는 홀가분하게 스승의 날을 맞이하였지만 일반 어린이집에 보낼 때에는 스승의 날만 되면 꼭 상품권이나 빵, 케이크와 같은 간식을 부랴부랴 사서 선생님께 보냈었다.
말이 느리고 행동이 부산스러운 아들 둔 엄마로서 나와 함께 아이를 돌봐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함께 은근한 미안함, 잘 부탁드린다는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 선물이었다.
이렇게 마지막 5월 15일까지 보내고 나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조잡한 장난감 하나와 구멍이 숭숭 뚫린 지갑뿐이다. 사실 가정의 달을 만든 이유는 바쁜 현대 사회 속 가족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는 좋은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5월은 그저 아이에게 선물을 사주고 부모님께 용돈 드리는 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진정한 가정의 달의 의미는 이게 아닐 텐데 말이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고공행진을 하는 요즘. 답도 안 나오는 가계부를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며 묻는다.
5월, 당신의 지갑은 안녕하신가요?